[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지난달 2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통령 시정연설이나 교섭단체대표 연설 도중 상대에게 야유를 보내거나, 본회의·상임위 동안 손팻말을 들지 않기로 이른바 '신사협정'을 맺었다. 정치권의 관심은 자연스레 지난달 31일 윤석열 대통령의 202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 쏠렸다. 과연 '신사협정'은 지켜질 것인가가 또 다른 관심사였다. 하지만 이날 하루 현장에서 시정연설을 직접 지켜본 결과 여야의 신사협정은 사실상 깨졌다고 봐야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일부 야당 의원들이 보여준 모습은 국회의 '신사'(紳士, 사람됨이나 몸가짐이 점잖고 교양이 있으며 예의 바른 남자)답지 못했다.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했을 땐 의원들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악수하는 게 '관례'라고 한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은 윤 대통령을 향해 불편한 기색을 감출 생각이 없었다.
윤 대통령은 입·퇴장 시에 의석을 돌며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가 악수를 건넸다. 이때 민주당 지도부(천준호 비서실장)는 악수는커녕 윤 대통령과 시선 교환도 안 했다. 또, 친명계인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의석에 앉아 마지못해 윤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이었다. 김 의원은 본회의가 끝나자마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제 그만두셔야죠' 시정연설 후 대통령이 악수를 청하길래 이렇게 화답했다"며 '악수 후기'도 남겼다. 고성만 안 지른다고, 야유만 안 보낸다고 예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야당 의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시정연설을 지켜보던 한 여당 보좌진은 기자에게 "하다못해 이재명 대표도 일어나서 윤 대통령과 악수하는데, 야당 의원들 태도가 저게 뭔가"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민주당이 시정연설 전 국회 로텐더홀에서 '장외 침묵시위'에 나선 것도 비신사적인 태도였다. 본회의장 밖은 의원들 개개인이 표현의 자유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신사협정 위반'은 아니라는 게 민주당의 논리였으나,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말장난'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눈에 밟힌 광경은 또 있었다. 민주당 의원들이 손피켓을 들고 침묵 시위를 하기 위해 윤 대통령의 본청 입장을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의원들은 윤 대통령 동선에 자신들이 있어야 한다며 시야를 가릴 만한 방해물들을 열심히 치웠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은 "보좌진 비켜" "보좌진 저리로 빠져라"라며 윽박에 가까운 고성을 연신 외쳤다. 이들이 말한 보좌진 대부분은 의원의 피케팅 하는 모습을 찍기 위해, 혹은 의원을 의전하기 위해 함께한 '민주당 보좌진들'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을 위해 일하는 보좌진들에게 비키라며 소리 지르는 의원들을 바라보니, 그들의 손에는 '민생이 우선이다', '국정 기조 전환', '국민을 두려워하라'라는 손피켓이 들려 있었다. 보좌진도 '국민'이다. 하물며 의원들의 일을 돕는 보좌진을 향해 소리치는 민주당 의원들의 모습은 '인지 부조화'(사람들이 자신의 태도와 행동 따위가 서로 모순되어 양립할 수 없다고 느끼는 불균형 상태) 상태가 아닌가 싶다.
의원들이 보좌진들을 치워(?)가며 피켓을 열심히 들었으나 정작 윤 대통령은 앞만 보며 본회의장으로 직진했다. 심지어 일부 의원들이 '침묵시위'인 것을 잊은 듯 "대통령님 여기 한 번 보고 가라"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사실상 신사협정 위반 아닌가'라는 비판을 감안하고서라도 진행한 것 치고는 취지도 의미도 무색했던 시위였다. 게다가 일부 의원들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입장할 때 "우~우~"하고 야유를 보낼 때는 유치함까지 더해졌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시정연설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피켓 시위에 관해 "여야가 협의했던 신사협정의 틀을 넘어서지 않는 범위"라며 변명에 나섰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도 회의장 밖에서 (시위를) 할 수 있다고 말했고, 윤 원내대표도 이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여야 원내대표들이 합의한 거라면 할 말은 없다. '민생 직진'을 위해 '과도한 정쟁'은 않겠다던 여야의 약속은 그저 국민들 눈을 속이기 위해 '꼼수를 숨긴' 계약에 불과했던 것일까. 실망감이 드는 건 '그래도 약속은 지키겠지'하는 정치권에 건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니, 그 뒷맛이 더 씁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