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지난 29일로 꼭 1년이 됐다. 159명의 안타까운 희생자가 발생한 비극은 경찰과 소방당국의 미흡한 현장 대응과 정부와 지자체의 부실 대응으로 인한 인재였다. 짐작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 살아갈 유가족들은 참사의 원인 규명하고 엄정하게 책임자를 처벌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더는 안전하지 못한 나라,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참담한 불안감은 지난 1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같은 배경에는 정치권이 크게 한몫한다. 참사 이후 1년간 정쟁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야권 주도로 안건조정위를 거쳐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본회의 직전 단계인 법제사법위원회에 묶여 있다. 재발 방지와 피해자 권리보장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대해 여당은 난색을 보인다. 대신 주최자 없는 행사의 안전 관리 책임을 지자체에 부여하는 내용의 재난안전법을 처리하자고 강조하고 있다. 이 법안도 계류 중이다.
다른 안전 관련 법안은 말할 것도 없다. 재난관리에 책임이 있는 기관장이 재난문자 발송 요청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강민국 국민의힘 의원 대표발의)과 재난안전법상 '사회재난' 예시 유형에 '다중밀집 인파사고'를 추가함으로써 정부의 재난 대응 책임을 보다 명확히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윤준병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 등 다수의 법안도 먼지만 쌓이고 있다. 꼭 대형 사고가 터져야 말로만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서는 정치권은 여전히 직무태만인 셈이다.
지난 29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도식도 뒷말이 많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 1주년을 맞아 정치 집회로 규정한 추도식 대신 서울의 한 교회 추도 예배에 참석했고, 여권에서는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과 혁신위원 등이 개인 자격으로 시민추모대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가족의 참석 요청을 뒤로한 것이 정부·여당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인지 묻고 싶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후 한껏 몸을 낮춘 태도는 어디 갔나 싶다.
야권도 참사를 정치적 쟁점화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지난해 11월 애도 기간이 끝난 뒤 장외 투쟁에 나서는 등 정부·여당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민주당 주도로 의결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헌법재판소에서 만장일치로 기각됐다. 재난·안전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이 장관의 책임이 없지 않지만, 국정 공백을 불러오는 무리한 탄핵 추진이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후 여야는 물론 대통령실까지 가세해 '네 탓'만 했던 정국이 눈에 선하다.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월까지 활동했던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도 마찬가지다. 특위 활동은 줄곧 여야 간 공방 위주로 전개됐고, 파행 사태까지 거듭됐다. 이 장관 해임 건의안 통과에 반발한 여당 국조위원 전원이 사퇴를 선언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독립적인 조사기구 설치 등 내용이 담긴 결과보고서도 끝내 여당 위원의 퇴장 속에 야권만이 채택했다.
여야는 늘 '뒷북 입법'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아왔다. 엄청난 금전적 피해가 발생한 전세 사기,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위축된 교권 강화, 아동 학대, 건축물 부실 공사, 묻지마 범죄 등 굵직한 사건·사고 이후 대책 마련에 나서는 식이다. 이마저도 정쟁의 틀에 갇혀 법제화가 늦어지거나 아예 묻히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태원 참사를 두고서도 정쟁에만 치우치다 보니, 지난 1년 동안 국회는 무얼 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점에서 미흡하거나 부재한 국가 시스템을 보완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국회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정부만 탓할 게 아니라 진영과 이념을 떠나 협치의 자세로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아는 일이다. 여야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쟁에만 열을 올리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국민을 기만하는 구태는 언제쯤 청산될 수 있을까. 기우이기를 바랐건만, 정쟁만 남은 이태원 참사 1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