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대통령실에서는 체감할 수 있는 경제 분야 일정을 '따뜻한 경제 일정'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앞으로 '따뜻한 경제 일정'의 좀 더 구체적인 방향을 소개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추석을 낀 6일간의 연휴가 끝나는 지난 3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올해 4분기 국정운영 방향의 중점을 수출과 투자를 비롯한 경제 활성화, 민생 안전, 외교·안보 강화 쪽에 두겠다고 강조하면서다.
대통령실이 언급한 '따뜻한 경제'는 작명만큼이나 모호하게 들린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윤 대통령이 주도하는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그동안 반도체, 이차전지, 인공지능 AI 등 산업구조나 거시 지표 등을 주로 다뤄왔는데 앞으로는 물가와 부동산 등 국민 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경제 분야도 잘 챙기겠다는 내용 정도다. 구체적인 목표와 이행방안이 없어 이름만 먼저 던져본 느낌이다.
취임 후 510일이 넘도록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을 뜻하는 Y노믹스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을 보면 뜻밖의 일도 아니다. Y노믹스는 정부 규제와 간섭을 최소화해 경제 주체들이 경쟁하고 창의를 발휘하도록 자유시장 경제 체제를 활성화시키고, 동시에 과학기술과 혁신을 촉진해 자연스럽게 성장과 복지가 공정하게 선순환하는 경제체제를 지향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 윤 정부는 출범 후 처음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에서 법인세 최고 세율을 25%에서 문재인 정부 이전 수준인 22%로 낮추는 등 감세 정책을 밝힌 바 있다. 여기에는 세금 부담이 줄면 기업이 더 많은 투자에 나서고 일자리가 생겨 결과적으로 국민이 혜택을 누린다는 '낙수효과'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민간 주도 혁신 성장'은 과거 보수 정권에서 추진해온 것과 다르지 않다. 정책의 근간이 되는 '낙수효과'를 둘러싼 논쟁도 경제계에선 의견이 팽팽하다. 야당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실패했던 정책의 재탕", "MB시즌2·박근혜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의 화려한 복귀" "철 지난 신자유주의 정책들"이라고 비판을 쏟아내는 이유다.
세종시 건설을 핵심으로 한 노무현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4대강 정비사업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감세와 규제혁신을 바탕으로 하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가계소득을 높여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등 그동안 보수 진보를 떠나 역대 정권은 대통령의 경제정책 철학을 알기 쉽게 간명하게 담은 경제 정책 슬로건을 내세웠다. 윤 정부에선 이전 정권과의 차별성을 보여줄 플러스알파(+α)가 보이지 않는다.
경제 비전을 작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정부가 핵심으로 추구하는 경제 기조와 지향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은 문제다. 윤 정부가 차별성 있게 내세운 국정운영 과제는 이른바 3대 개혁(노동·연금·교육)을 통해 한국의 경제 구조와 사회 체질을 바꾸겠다는 것인데, 현재 개혁 추진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명확한 경제 기조가 보이지 않으니 정책 추진 과정에서 디테일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인세 인하로 역대 최대 규모의 세수 공백이 발생하자 이를 메우기 위해 환율 방어 목적으로 존재하는 외국환평형기금을 투입하거나, 과학기술과 혁신의 기반이 되는 기초과학연구 R&D 예산을 대폭 구조조정 하는 모순적인 정책 추진이 대표적이다.
이런 가운데, 윤 정부 성패를 좌우할 내년 총선을 6개월 앞둔 상황에서 서민 경제는 고물가에 직면했다. 당장 오는 7일부터 수도권 지하철 기본운임이 현행 1250원에서 1400원으로 오른다. 우유도 리터당 88원(8.8%) 인상된 것은 물론 설탕과 맥주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그야말로 온몸으로 '체감되는' 경제다. 대통령실이 부랴부랴 이름마저 모호한 '따뜻한 경제'를 언급하고 나선 것도 이 같은 위기의식이 반영된 셈이다. 윤 대통령이 자신만의 경제 정책 기조를 채워나갈지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