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신진환 기자]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말부터 시작한 장마가 사실상 끝났다. 기상 역사에 남을 역대급 장마였다. 올해 장마 기간 전국 평균 강수량은 648.7mm로 전국 관측망이 확충된 1973년 이래 세 번째로 많았다. 연강수량의 3분의 1이 엿새 만에 쏟아지기도 한 이례적인 장마로도 기록됐다.
기록적인 폭우로 전국 곳곳에서 인명·재산 피해가 속출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27일 오전 6시 기준 호우 피해 사망자는 사망 47명, 실종 3명, 부상 35명이다. 1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충북 오송 궁평지하차도 참사와 경북 예천에서 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원 1명이 급류에 실종됐다 숨진 채 발견되는 등 안타까운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학교나 경로당, 마을회관, 민간숙박시설 등 임시주거시설에서 머무르는 구호자는 1319명이다. 사유시설 피해는 4370건, 공공시설 피해는 9514건으로 집계됐다. 주택 2247채가 침수되고 262채가 파손됐다. 상가와 공장 침수도 752건이나 된다. 도로·교량 피해는 1234건이다. 농경지와 비닐하우스 등 작물과 시설 등의 크고 작은 피해도 적지 않다.
여야는 수해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시차를 두고 비 피해가 심한 충남 일대와 전북 익산 등을 찾아 수재민을 위로하고, 수해 복구에 손을 보태는 등 재난 수습 행보에 주력했다. 호우 피해 지역구를 둔 의원들은 중요한 국회와 당 일정을 제외하면 거의 수해 현장에 있다는 전언도 들린다.
여야는 뒤늦게 수해 예방 관련 법안들을 처리했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국가가 집중호우 피해가 큰 지방하천의 공사를 시행해 홍수로부터 조속한 안전을 확보하려는 내용의 '하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21년 12월과 지난해 9월 발의된 비슷한 내용의 법안들을 묶어 처리한 것인데, 그동안 묵혀두고 있다가 부랴부랴 속도를 낸 국회의 고질적인 '뒷북 입법'이다.
수해는 매년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서울 등 수도권의 집중호우로 도심 곳곳이 침수되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 여야는 늘 안타까운 사고가 터져야 앞다퉈 재난 대비 입법에 나서겠다고 한목소리를 내면서도 흐지부지 넘겨왔다. 꼭 상대 당을 탓하는 것은 이제는 '공식'이 됐다. 여야는 국민적 공분을 빗겨나가기 위한 면피성 입법에 익숙해진 듯하다.
지난 4월 서울·인천 등에서 전세 사기 피해자가 속출하자 여야가 뒤늦게 전세 사기 재발방치책 입법에 나선 것만 봐도 그렇다. 지난해 9월 이른바 '빌라왕' 사태 이후 여야는 앞다퉈 후속 대책 법안을 쏟아냈지만, 입법화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법안 심사가 지지부진한 사이 몇몇 전세 사기 피해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후 16개월의 입양 아동이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사건으로 국민적 분노가 거세지자, 국회는 지난 1월 이른바 '정인이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아동학대 발생 즉시 가해자와 피해 아동을 분리하고 아동학대 신고 시 즉각적인 수사 착수를 의무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계류된 아동학대 방지 관련 법안 처리에 손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제도를 개선했다.
이처럼 정치권은 비슷한 패턴을 보여왔다. 여야는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이슈에 대한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데 급급하다. 반복되는 입법, 건수를 올리려는 마구잡이식 법안 발의는 계속되고 있다. 국회는 입법부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책무를 망각한 듯한 정치권을 바라보면, 마치 찜통더위처럼 불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