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병헌 기자]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했고, 과도한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혔고, 논리적 확증편향(確證偏向·Confirmation bias)에 빠졌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은 지난해 1월 22일 당시 자신이 제기했던 ‘검찰의 재단 계좌 열람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었다고 판단한다"고 사과하며 자성의 글을 발표했다. 대표적 진보 논객으로 신뢰를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던 유 이사장이 확증편향의 함정에 빠져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음을 시인한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자신의 목적이나 이익에 직결되는 자극이나 정보에만 주의를 집중하고 거기에 매몰되어 행동으로 옮기는 ‘확증편향’은 최고의 지성인도 아차 하면 빠질수밖에 없는 것처럼 피해가기 쉽지 않다. 한편으로는 민주사회에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고 불통과 극단으로 흐를수 있는 매우 위험한 요소여서 항상 조심해야 한다.
관련 학자들은 2019년 ‘조국 사태’ 때부터 우리사회도 본격적인 확증편향에 물들기 시작했으며 위헌 수위에 와있다고 진단한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갈라졌던 진영 간의 갈등이 단초를 제공했다는 게 정설이다. ‘무조건 내 편은 옳고, 네 편은 틀렸다’로 귀결되는 상황이라 옳고 그름의 판단은 의미도 없다. 그러다 보니 잘못된 정보가 버젓이 사실로 치부된다.
이후 대선을 앞두고 여야의 경쟁이 진영논리에 매몰되면서 ‘확증편향’은 선거 프레임으로 녹아들어 본격화됐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특히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표가 국민의힘으로부터 대장동 의혹 등에 대해 전방위적 공세를 받기 시작하자 대응전략의 일환으로 활용하면서 고착화됐다고 본다면 너무 앞서간 개인만의 논리일까? 민주당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뒤에도 당시 가장 열을 올렸던 ‘김건희 여사 저격’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거의 올인하다시피 하는 이유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치의 본령에서 벗어나 있는 대통령 부인, 또는 그 일가의 움직임이나 장신구, 심지어 강아지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 ‘기-승-전-김건희’로 의혹으로 키우는 것은 조금은 좀스럽고 억지스러워 보인다. 왜일까? 김 여사의 행동거지나 대응이 서투른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젊은 영부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주목도가 높다. 특히 진영논리에 매몰된 지지자들의 관심도는 지금도 부정적인 측면으로는 하늘을 찌른다. 윤 대통령의 제일 약한 고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관련 특혜 의혹 등의 제기는 지지자들이 동일한 확증편향에 편승하면서 확산 속도도 엄청 빠르다.
김 여사 공격 사례들을 보면 명제가 자신의 판단 작용을 거쳐 설정되었거나 자신의 기대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이라면 그러한 경향은 훨씬 심해졌다는 점이 여실히 확인된다. 심리학자들은 대중들도 자신의 기대나 판단과 일치하는 정보에 대해서는 더 무게를 두면서도 기존의 신념과 상충될 때에는 아무리 객관적인 증거라도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당사자 사이에 나타나는 ‘확증편향’을 극복하기란 어려운 부분도 이 때문이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교류하면서 자신들의 신념을 뒷받침할 이유들만을 쌓아나갈 뿐 어떤 반대증거도 진지하게 검토할 의사가 없다. 지금 여야의 대치상황이 이를 더욱 부추기는 것 같다.
최근 ‘서울-양평 고속도로 의혹’이 대표적이다. 김건희 여사 일가에 특혜를 주려고 고속도로 노선을 변경했다는 민주당의 의혹 제기는 순식간에 국내 최고 이슈가 됐다. 여야가 쏟아내는 주장의 진위 여부를 가리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무엇이 맞는지 잘 모른다. 분명한 것은 김 여사와 관련은 적어 보인다. 윤 대통령과 여당 압박은 고사하고 민주당에 독배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않다. 노선 변경과 관련해서 드러나는 사안들을 종합해 볼 때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에 가깝다. 양평 군민만 새우 등 터지게 생겼다.
대통령 관저를 옮기는 과정에 ‘김여사 관련 역술인 개입 의혹’이나 캄보디아 심장병 어린이 방문 시 ‘빈곤 포르노’ 의혹도 마찬가지다. 수사 중이니 실체는 머지않아 드러날 것이다. 최근 리투아니아에서 김건희 여사가 에코백 안에 명품백을 넣었다는 의혹 제기는 정말 코미디나 다름 없다.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 당직자가 제발 저렸는지 아니라고 정정했다.
그래도 이들은 부끄러운줄 모른다.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정치 체계에서 진실을 찾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 말이 이들을 두고 한 말인 듯 하다. 오로지 소속 진영의 정치적 편익을 노릴 뿐이기 때문이다.
‘확증편향’은 모든 ‘인지오류의 아버지’로 불린다. 진화론으로 유명한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확증편향’에 휘둘리지 않기 위한 의식적 노력들을 주요한 연구방법론으로 채택해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나라 정치권에 유독 환자가 많은 ‘확증편향’이라는 고질병에 특효약은 없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