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제2부속실 부활은 없다"는 대통령실, 누굴 위한 고집인가


올해 김건희 여사 공개 단독 일정 35건
순방 기간 개인 일정 논란에 '침묵' 부적절

김건희 여사가 최근 해외 순방 기간 명품 매장을 방문해 또 논란에 휩싸였다. 제2부속실을 재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지난 19일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네이비 클럽에서 한미 여군 장병들과 만나 환담을 하고 있는 김건희 여사. /대통령실 제공

[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정쟁의 소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특별히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를 찾은 김건희 여사가 지난 11일(현지시간) 명품 매장을 방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리투아니아 현지 매체에 따르면 여사는 경호원과 수행원 16명을 대동하고 명품점 등 매장 5곳을 둘러봤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북한 핵 위협 대응 등 국제안보 의제를 논의하기 위한 순방이었던 만큼 매장 방문이 적절했느냐는 비판이 거셌다.

해명은 논란에 불을 지폈다. 대통령실은 비공식적으로 "김 여사가 가게에 들어가서 구경 한 것은 맞고 안내 받았지만, 물건은 사지 않았다"며 매장의 호객 행위에 의도치 않게 방문하게 됐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나 이는 철저하게 짜여져야 할 여사의 일정과 동선이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방증이 되고 말았다.

결국 대통령실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기로 했다. 지난 17일 '여사 쇼핑 논란 관련해 현재까지 파악한 게 있나'라는 물음에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어떤 팩트(사실)를 갖고 얘기해도 그 자체가 정쟁의 소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더 정쟁의 소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야권이 윤 대통령 부부를 겨냥해 제기했던 '쥴리'와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예로 들었다.

하지만 김 여사의 명품 매장 방문은 단순한 의혹 제기와는 별개의 사안이다. 대통령 부부의 순방은 국민 혈세로 지원된다. 순방 기간 개인 일정이 논란의 소지가 있다면 대통령실은 분명하게 의혹을 해소해야 옳다.

리투아니아 매체 주모네스(Žmonės.lt)는 지난 12일(현지시각) 김건희 여사가 수도 빌뉴스의 명품 매장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주모네스 누리집 갈무리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김 여사는 '조용한 내조'를 공언한 것과 달리 광폭 행보를 보여왔다. 올해 들어 여사의 국내 단독 공개 일정만 35건이다. 이달에만 강릉 경포 해변 쓰레기 줍기, 강릉 중앙‧성남시장 방문, 2023 세계합창대회와 제2회 여성기업주간 개막식 참석, 제인 구달 박사 면담, 해군작전사령부 네이비 클럽 여군 장병과의 환담 등 6건의 일정을 소화했다.

찾는 현장도 다양해졌다. 통상적으로 역대 영부인이 맡아온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명예회장직을 비롯해 한국방문의해위원회 명예위원장, 여성기업인 명예 멘토까지 새로 위촉돼 이를 명분으로 여러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여사의 전문 분야인 문화 영역과 역대 영부인의 주된 역할이었던 사회적 약자 챙기기는 물론 최근에는 기후변화, 환경, 동물보호와 안보 분야에까지 직접적인 메시지를 내고 있다.

김 여사는 지난 7일 제인 구달 박사와 만나 "개식용 문화 종식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9일에는 해군작전사령부 네이비 클럽에서 한미 여군 장병들을 만나 "자랑스러운 국가의 딸"이라며 "조국과 평화를 위해 계속 최일선에서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지난 4월 납북자·억류자 가족들과의 만남에서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에 강하게 해야 한다"고 한 발언도 비선출직인 대통령 배우자가 정부 정책에 관여한 월권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대통령실의 과잉 홍보도 구설에 오르내렸다. 지난 3월 김 여사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개막식에 참석했는데 대통령실이 공개한 22장의 사진은 '공적 메시지'가 담기지 않아 '화보 사진 아니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대통령실은 또 지난달 베트남 순방 당시 김 여사 일정을 조명한 현지 언론 보도와 "여사님에게 반해버렸다"는 온라인 반응까지 직접 정리해 출입 기자단에 배포하기도 했다.

김건희 여사는 올해 들어서만 35건의 공개 단독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 4월 12일 납북자·억류자 가족 위로 만남(맨 위), 6월 9일 한산모시문화제(하단 왼쪽), 이달 3일 2023 세계합창대회(하단 오른쪽) 일정에 참석한 김 여사 모습. /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실은 사실상 여사 전담팀을 꾸려놓고도 여전히 "제2부속실 부활은 없다"며 눈 가리고 아웅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임기 초반 대통령실은 "앞으로 활동을 했을 때 (김 여사를) 보좌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한껏 조심스러워하더니, 다음 달 "부속실 내 여사 행사를 지원하는 인력이 2~3명 있다"고 인정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 4월 "대통령이 못 오면 영부인이라도 꼭 와줬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굉장히 많이 받는다"면서 일정이 불가피하게 늘어난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현재 부속실 내에는 4~5명의 김 여사 전담팀이 있다.

제2부속실은 여사 활동을 지원하는 곳이지만, 선출직인 대통령과 분리해 여사의 활동을 투명하고 철저하게 관리한다는 목적이 더 크다. 여사의 명품 매장 방문 논란에 "정쟁 소재를 만들지 않겠다"며 침묵하는 것은 지난 5월 "제2부속실이 있느냐 없느냐는 똑같다"고 했던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발언에 이어 국민 눈높이를 벗어난 무책임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사석에서 "개인적으론 지금이라도 제2부속실을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윗분들 생각은 다른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지난해 6월 김 여사의 '봉하마을 행사 지인 동행' 논란에 '제2부속실을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자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그렇게 쉽게 부활시키실까. 대통령이 고집이 좀 세시지 않나"라고 했다. 공약은 이미 파기된 마당에 누굴 위한 고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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