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돈 봉투' 송영길 검찰 자진 출석...'흥행은 글쎄'


제1야당 전 대표로 자숙...검찰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전략으로 보여주기 ‘정치 쇼’ 말아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자진 출석, 검찰 출입을 거부 당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뉴시스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더불어민주당의 2021년 전당대회 관련 ‘돈 봉투 의혹’의 핵심 당사자로 지목된 송영길 전 대표가 2일 검찰에 자진 출석했다. 검찰이 소환 통보를 한 것도 아닌데, 송 전 대표는 이날 오전 9시58분 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 나타난다. 한 시간 전부터 청사 주변은 지지·반대 세력이 몰려들어 아수라장이 됐다. 그는 몰려드는 인파를 뚫고 청사로 들어간다. 여기까지는 국민의 눈에 제법 익숙해진 장면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검찰 소환 때와 상당부분 오버랩된다.

이후 그는 출입 관리 직원에게 "검사님 면담 좀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고, 직원은 "현재 출입증 등록이 돼 있지 않다"며 들여보낼 수 없다고 답한다. 그는 담당 부장검사와 전화 연결을 부탁했지만 연결되지 않는다. 이미 예상됐던 장면이다. 검찰은 그가 출두의사를 밝힐 때 부터"조율된 바 없다"며 "조사할 단계가 아닌 만큼 돌려보낼 예정"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조사 대상자가 일방적으로 일정을 정해서 조사받겠다고 나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형사소송법 200조에 ‘수사에 필요한 때에는 피의자의 출석을 요구해 진술을 들을 수 있다’고 규정하는 만큼 수사기관이 먼저 요구한 뒤에 일정을 잡는 것이지 피의자가 마음대로 출석하게 돼 있진 않다. 이재명 대표는 검찰에 조사 날짜를 전달하고 출석했지만, 검찰이 출석을 요구한 상태에서 일정을 조율하다가 정한 것이어서 경우가 다르다.

그의 검찰출두 시도가 주장이나 밝히는 ‘정치쇼’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은 이전부터 나돌았다. 결국 송 전 대표는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빠져나온 후 기자회견을 갖는다. 불행하게도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자진 출두 의사를 검찰에 직접 전달하진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주위 사람을 괴롭히지 말고 자신을 구속시켜 달라"고 했다. 그런데 마치 구속하지말라고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 그는 "박희태 전 국회의장 '전당대회 금품수수사건'처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로 사건을 이첩해 공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해줄 것을 촉구한다"며 "주변 사람 대신 저 송영길을 구속시켜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 모임(더민초) 운영위원장(오른쪽)과 강민정 의원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송영길 전 대표의 귀국을 촉구하고 있다./남용희 기자

그를 그렇게 구속시킨다면 공정한 수사가 아니다. 특히 박희태 국회의장 전당대회 금품수수사건처럼 공안부로 이첩하라는 이유가 납득이 안 된다. 공안부에서 하면 민주당이 말하는 ‘정치 검찰’도 ‘야당탄압 검찰’도 공정해지는지 잘 모르겠다. 주변사람 대신 자신을 구속시켜라 말도 어불성설이다. 본인 스스로 주위 사람들을 위해 '정실수사' '불공정 수사'를 해달라는 격이다.

참고로 검찰 소환 요구가 없는데 정치인이 자진 출두한 사례는 과거에 몇 번 있었다. 2003년 12월 불법 대선자금 모금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은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는 핵심 측근들이 구속되자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대검찰청에 자진 출석해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고, 이후 불입건 처리됐다.

2012년 7월, 저축은행 비리 사건으로 박지원 당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현 민주당 고문)는 예고 없이 대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당시 세 차례 소환 통보에도 응하지 않다가 검찰이 체포영장을 청구하자 출두했다. 이후 불구속 기소됐다. 송 전 대표가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등에 대비해 ‘협조’를 강조해 불구속을 염두에 둔 행동이라는 일각의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또 "유일한 수사의 근거였던 이정근 씨의 신빙성 없는 녹취록은 증거능력도 부족하고 이후 재판과정에서 이정근 씨의 진술 번복으로 기소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며 "검찰이 증거를 조작하기 위해 갑자기 29일 아침 여섯 군데를 압수 수색을 했다"고 주장했다.

‘사법 리스크’로 가뜩이나 정신없는 이재명 대표를 끌어들이면서 정치적 기획 수사라는 주장도 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년 동안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3부는 이재명 대표 수사에 올인했다"면서 "별 효과도 없고 대미·대일 굴욕외교와 경제 무능으로 민심이 계속 나빠지자 반부패 수사2부가 일부 언론과 야합해 송영길을 표적 삼아 정치적 기획 수사에 올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현 당대표 대신 전 당대표로 표적을 바꿨다는 뉘앙스로 들린다.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 부총장이 지난해 9월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더팩트DB

이날 그의 행동이나 말을 종합하면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전략이라는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제1야당의 직전 대표로서 지지층에게 정치적 도의적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자기 주장의 진정성과 신뢰도도 한껏 높이기 위한 다목적용에 불과해 보인다.

이런 사건은 돈을 누가 어떻게 조성했고 어디로 흘러갔는지 규명한 다음 최종 수혜자를 소환조사하는 게 수사의 기본이다. 송 전 대표가 이를 모를리 없다. 그도 율사 출신 정치인이다. 검찰수사의 시작도 최측근인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휴대전화 녹음파일에서 시작됐다.

이 씨와 함께 사건에 연루된 강래구 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 윤관석 의원이 모두 송 전 대표와 가깝다. 게다가 3만 개에 이른다는 녹취록 중에서 송 전 대표가 직접 돈봉투 마련에 개입한 것은 아닌지를 의심케하는 정황도 있다. 경선캠프에서 회계업무를 맡았던 인사가 송 전 대표 귀국 전 프랑스 파리에 다녀왔다는 얘기도 나온다. 검찰은 그가 2015년 설립한 싱크탱크 ‘평화와 먹고사는 문제 연구소’의 기부금까지 경선 자금에 쓰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수색 영장에서 송 전 대표를 돈봉투 살포 혐의 공범으로 적시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돈으로 표를 사는 매표행위는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 범죄다. 혹여 "예전에는 관행이었는데, 국민들과 관계없는 우리끼리 당내 선거일 뿐인데…"라고 생각한다면 위험천만이다. 측근들이 돈봉투 살포 의혹에 연루된 것만으로도 할 말이 없다. 얄팍한 정치적 술수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할 게 아니다. 그러면 더욱 본인만 비참해질 뿐이다. 자숙하면서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 집권당 대표를 지낸 정치인이 지녀야할 마지막 미덕이자 국민에 대한 도리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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