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철영 기자] "과거는 직시하고 기억해야 하지만,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 (중략) 저는 우리 정부가 이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확신한다."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한일정성회담을 이같이 평가했다. 특히 윤 대통령 모두발언은 생중계로 국민에게 전달됐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의 비판과 부정 여론을 정면 돌파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윤 대통령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는 듯하다. 대통령실이 관계 복원 첫발을 내디뎠다는 자평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윤 대통령과 우리 정부가 내민 강제동원 제3자 변제 및 백색국가 목록(화이트리스트) 복원 선조치 등에 대한 화답 대신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를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지난 28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2024년도부터 쓰일 교과서 149종이 심사를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통과한 교과서 일부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징병에 관한 서술에서 강제성을 덜어내고, 독도에 대해 '일본 고유의 영토'·'한국이 불법 점거'라는 내용을 추가했다. 우리 정부 입장과 완전히 상반되는 내용으로 윤 대통령이나 우리 정부로서는 일본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격이 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29일 "굴욕적인 퍼주기 외교가 일본에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간도 쓸개도 다 내주고 뒤통수까지 맞고 있는 격"이라며 "정부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일본 도발에 맞서야 한다. 양국 관계를 3·16 외교참사 이전으로 원상복구 시키겠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여기에 더해 윤 대통령이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등 초당파 일본 의원들의 모임인 일한의원연맹 소속 의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방류에 대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하겠다"고 말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도 나왔다.
대통령실은 30일 논란 확산을 막기 위해 "후쿠시마산 수산물이 국내로 들어올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민이 온전히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과 일본 관계를 두고 쓰이는 표현이다. 일본 정부와 우익들의 잇따른 역사 왜곡 등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두 나라를 더 멀게 하고 있다. 우리 국민이 일본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인식하게 되는 이유기도 하다. 일본에 대한 불신은 독립 이후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한제국이 일본으로부터 주권을 박탈당하는 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고종 42년 1905년 11월 9일(음, 양력 12월 5일) 승정원일기를 보자.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곽종석은 상소를 통해 을사오적과 일본의 두 얼굴을 비판했다. 그는 상소에서 "저 일본이 속이고 맹세를 저버리고 신의를 배반하며 갖은 술수로 기만하고 희롱하는 것을 폐하께서는 실컷 겪어 보지 않으셨습니까. 저들의 오늘날의 감언은 바로 내일의 독이니 폐하께서는 깊이 살피소서"라고 호소했다.
송시열의 후손이자 문신 송병선 역시 상소에서 고종에게 을사늑약 파기를 요청하며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 伊藤博文)를 힐난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열사에 의해 사망한 인물이다.
송병선은 "일본 대사 이등박문이 겉으로는 유지한다는 명목을 빙자하면서 속으로는 통째로 집어삼킬 계책을 품고서 제멋대로 와서 꼬이기를 마치 어리석은 사람을 속이고 빈 고을에 들어서는 듯이 하였으며 심지어 군사들로 궁궐을 포위하고 협박하여 조약을 체결했다고 합니다. 무엄하고 무도한 짓이 어찌 이처럼 극도에 달할 수 있습니까"라며 일제의 겉과 속이 다름을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가 선의를 베풀면 일본도 호응할 것이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118년 전 을사늑약 체결 당시 이등박문의 야누스 얼굴을 보지 못했던 조선처럼 말이다. 일본이 보이고 있는 지금의 행태는 우리 국민과 윤 대통령에 대한 기만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보다 강경하고 단호한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만약 정부가 미적지근한 태도로 일관하거나, 일본에 끌려다닌다면 국민은 일본이 아닌 윤 대통령에게 기만당했다고 의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