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이재명을 '배신'해야 민주당이 산다면...


'배반'의 정당성은 신뢰의 가치 넘는 소신있는 명분 필요...
‘더불어민주당 낙선명단’ 살생부, 반민주 행위로 즉각 제재해야

이 재명 더불어민주당대표의 검찰 소환과 구속영장 논란이 이어지면서 국회에서는 여·야의 갈등이 고조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남윤호 기자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 "브루투스, 너도? 그러면 시저여, 쓰러져라!" 로마의 영웅 융리우스 카이사르(줄리어스 시저)는 브루투스가 자신을 찔렀을 때 이렇게 외치며 숨졌다. 총애한 브루투스가 배반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죽는 순간까지 뼈아파했다고 전해진다. "시저에 대한 사랑이 덜한 것이 아니라 로마에 대한 사랑이 더했다는 것이오. 시저가 살고 여러분은 노예로 죽기를 원하오? 시저가 죽고 자유민이 되기를 원하오?"

그는 시저가 죽은 후 로마의 평민들 앞에서 벌어진 시저의 후계자 안토니우스와의 맞짱 연설에서 "누구보다도 시저를 사랑했다"고 말하면서 소신있는 배반의 명분을 이렇게 내세운다.

#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조폭인 하정우는 할아버지뻘 일족(一族) 최민식이 호텔 나이트 클럽을 장악하기 위해 과거 동료였던 조진웅을 쳐달라고 부탁하자 여기도 명분이 필요했다. "명분이 없어요. 명분이..."

최민식은 일부러 조진웅을 자극, 얻어맞고, 하정우는 집안 할아버지를 때렸다는 명분으로 조진웅의 조직을 친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크고 작은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른바 '배반' '배신'이다. 각자 다르지만 나름 신뢰의 가치를 넘는 소신있는 명분을 내세운다. 명분은 최민식처럼 타당성이 없는 자기 합리화에 불과한 경우도 있지만 브루투스와 같이 후세의 역사의 흐름에 의해 설득력을 가지기도 한다. 가족과 친구를 배신하는 개인적인 배신부터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 로마군에 투항한 갈릴리 지휘관 요세푸스, 12사도 중 한 명인 유다, 그리스 트로이 목마 등 역사와 문화 종교 정치를 넘나들며 배신은 다양하다.

특히 정치적 소신으로 당의 방침과 다르게 행동하거나 당적마저 바꾸는 모습도 배신으로 보고 비판하기도 하나 반면 뒤늦게나마 소신을 펼치는 내부 고발자와 같은 부류로 평가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정치적 문제라면 국민을 먼저 생각하면 브루투스처럼 정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혹자들은 대의라고도 일컫는다. 물론 ‘은폐의 대가’로서 비용은 치러야 하지만 가치는 충분히 있다.

일부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 표를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비명계 의원들을 낙선 명단으로 만들어 인터넷상에 공유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개딸’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일부 강성 지지층이 지난달 27일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 때 찬성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들의 색출에 나선 이래 체포동의안 파장은 계속되고 있다. 일부는 의원 명단을 임의로 만들어 조리돌림까지 하고 있는 형국이다. 당시 본회의 표결은 무기명으로 이뤄져 개별적인 명단 확인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명확한 근거 없이 이른바 ‘살생부’를 작성해 퍼뜨리고 있다. ‘재명이네 마을’ 등 이 대표 지지 커뮤니티에는 비명계를 일컫는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 의심 의원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답변을 받았는지 여부를 인증하는 글들도 속속 올라오고 있다. 단순한 정치적 의사표시를 넘어 반민주적 행동이나 다름없다.

‘더불어민주당 낙선명단’이란 이름이 붙은 살생부의 존재는 ‘친명계’ 최강욱 의원이 먼저 언급했다. 최 의원은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을 색출하려는 일부 당원들의 움직임에 대해 "(명단은) 완벽하게 확인할 수 없고, (색출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일부 보도를 통해 공개된 명단에는 실제로 40명 남짓한 민주당 의원의 이름과 사진, 지역구 등이 실려 있다. 이면에는 색출과 경고를 더욱 부추기는 측면이 더욱 강해보인다. 역시 '친명계' 김남국 의원은 ‘무더기 이탈표’의 조직적인 움직임을 확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애초 이 대표와 지도부가 체포동의안의 압도적 부결을 자신했기에 무더기 이탈표의 충격은 컸을 것이다. 지난 16일 검찰의 영장 청구 이후 10여일간 지도부가 표 단속에 몰두했음에도 최소 31표 이상의 이탈표가 나왔다. 이 대표에 대한 ‘정치적 탄핵’으로도 해석된다. 그렇다면 그 이유와 원인부터 찬찬히 따져보는 것이 순리이자 먼저다. 결과가 기대치와 달랐다고 해서 확인되지도 않은 의원들을 살생부에 올리고 총선 공천 때 손보겠다고 벼르는 것은 공당의 당원들이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 대표나 민주당을 돕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

이 대표와 민주당은 먼저 이런 반민주적 움직임과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즉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부정적인 여론의 흐름을 거스르는 과격한 언행은 민심과의 이반을 디욱 재촉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의 출석 요구가 계속되면서 진보 성향의 지지자들이 이 대표의 검찰 수사를 반대하고 나섰다. 이 대표의 두 번째 검찰 출석날인 지난달 28일 피켓을 든 지지자들이 이 대표를 응원하고 있다. /박헌우 기자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이번 체포동의안 부결로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검찰의 추가 영장 청구나 기소는 잇따를 전망이다. 이 대표는 3일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섰다.이달만 해도 3차례 법정에 출두해야한다.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2021년 12월22일 방송 인터뷰 등에서 고(故)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에 대해 "시장 재직 때는 알지 못했다"고 말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를 받는다.

문제의 무더기 이탈표는 당내 ‘방탄 피로증’의 실체를 드러난 시작에 불과하다. 언제까지 부결로 맞설 것이냐는 의문도 민주당내 팽배해지고 있다. 재판에서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는 다들 어쩔건지도 궁금하다. 오히려 이번 배반이 순리로 여겨진다. 이 대표와 당 지도부가 내세운 "정치 탄압" "보복 수사" 주장이 당내에서도 설득력이 없다는 반증이다. 총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 ‘이재명 방탄당’으로 비치면 참패가 필연적이라는 의원들의 위기감도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이 대표 개인 범죄 혐의를 감싸는 ‘사당(私黨)’ 이미지가 고착되면서 민주당이 국민 신뢰를 잃어가는 조짐도 보인다. 최근 여론조사가 이를 말해준다.

표결 전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 수사=야당 탄압’이란 주장은 국민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이 대표 체포를 바라는 여론이 더 높았다. 이탈표는 국민 여론과 상식에 따른 양심의 선택이란 측면이 적지 않은데, 이를 "배신"으로 모는 분위기는 경악스럽다. '친명계' 의원들은 '비명계'를 향해 "함께할 수 없다. 당을 나가 달라"고 말하고, 이 대표의 지지 그룹인 ‘개딸’들의 전화·문자 폭탄 돌리기는 더욱 맹렬해진다. 해당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이낙연 전 대표에 영구 제명 청원은 게시 이틀만에 5만명 이상의 권리당원이 동의했다. 비명계는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다음 번 이 대표 체포동의안이 넘어오면 100% 가결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당의 분열조짐마저 가시화 되고 있는 것이다.이런 상황이라면 민주당내 ‘브루투스’들이 나오지 않는 다는게 더 이상하다.

이 대표와 친위 그룹에는 충격적인 얘기겠지만, 이제라도 이 대표가 물러서야 이 대표와 민주당이 살 수 있다. 그 첫 단추는 이 대표의 사퇴와 불체포특권 폐지 실천일 될 것이다. 사견이지만 민주당의 사활이 여기서 결정되고, 내년 4월 총선은 최종 확인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bien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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