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정치는 4류' 입증한 與野의 '공허한 반성문'


박홍근 "저부터 성찰" 한다면서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
주호영 "국민들께 죄송" 하다며 "민주당 정권 5년 전체가 내로남불"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왼쪽)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정치권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결국 이재명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을 비난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이새롬·남윤호 기자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투표하지 않는 40%와 무조건 상대를 찍는 30%는 빼고, 나머지 30%만을 바라보는 정치, 다수 국민과는 등지며 지지층의 표심만 얻기 위해 극한 대결로 치닫는 한국 정치를 저부터 성찰하며, 실천가능한 대안을 말씀드릴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中

"이십여 년 전 어느 대기업 회장이 한국 정치는 4류라고 하여 큰 파문이 인 적이 있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도 우리 정치가 여전히 4류임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중략) 국민들께 죄송하고, 서글프고 참담한 심정입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中

13일과 14일 양일간 국회에서 있었던 여야 원내대표의 발언이다. 두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 전문을 다시 읽으며 인상적 내용을 발췌했다. 두 사람의 연설 전문의 시작은 그동안 국회가 얼마나 잘못했는지에 대한 절절한 반성으로 시작한다. 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정치가 민생을 위하지 못하고 정쟁으로 치닫는 지점을 지적하며 개선 또는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고물가와 생활고 속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국민을 위해 정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미안하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와 국회 잘못에 대한 이들의 반성은 딱 여기까지였다. 박 원내대표와 주 원내대표는 각각 1만575자, 1만1953자 속에는 정치의 위기와 경제위기, 기후위기, 안보위기, 인구위기 등을 담았는데, 결국 모든 문제를 네 탓으로 돌렸다.

여기엔 여야 모두 벗어날 수 없는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의 늪이 있음을 다시 한 번 여실히 보여줬다. 두 사람은 반성문을 쓰면서도 정작 모든 책임을 '네 탓'의 행태를 그대로 이어간 것이다. 상대를 비판하기 위한 연설이라면 구태여 국회 본회의장에서 목을 축이며 생방송으로 할 이유가 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성명서로 대신해도 충분할 내용을 말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성남FC, 대장동, 변호사비 대납 등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 여당으로부터 방탄 비판을 받고 있으며, 윤석열 대통령은 소통을 내세우면서도 정작 야당과 대화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 도마에 올랐다. /이동률·남용희 기자

'기-승-전-네탓'이란 요즘 정치 공식이 그대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내 탓'이라더니 '그런데' '하지만'이라며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문재인 전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라고, 역시 '네 탓'이라고 했다. 1만 자가 넘는 이들의 연설문은 결국 현재 각 당이 처한 상황에 대한 항변과 끝내 본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여겨진다.

또, 기후위기와 관련 '녹색기술 패권 경쟁' '탄소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대전환' 등을 언급하며 실천계획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을 포함한 국회의원 전체가 실천의지가 있는지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회를 방문할 때마다 의원회관과 본관에 주정차 된 국회의원 차량 대부분이 짧게는 몇 분 길게는 수십 분간 공회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탄소중립을 말하고 있지만, 탄소중립을 실제로 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라는 주 원내대표의 말 그대로다. 의원들 스스로 실천하지 못하면서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을 만든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위대한 국민" "우리 국민은 위기를 극복하는 위대한 DNA를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왜 국민만 위기를 극복하는 데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할까. 이들의 말처럼 우리 국민은 위대하다. 숱한 위기도 극복했다. 그렇다면 국민의 세금을 받는 4년 계약직 또는 5년 계약직 정치인들은 위기 극복보다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위기를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고 자부할 수 있을까.

지난 13일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앞두고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인사하는 모습. /남윤호 기자

얼마 전 부서 내 후배로부터 한 권의 책을 추천받아 읽었다. 박지리 작가의 '합★체'라는 책이다. 난쟁이 아버지를 둔 일란성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다. 키가 작은 사춘기 형제 중 '체'가 한 도인으로부터 키가 클 수 있는 비기를 전해 듣고 계룡산으로 가 수련하는 내용이다. 성격도 생각도 성적도 전혀 다른 쌍둥이 형제 '합'과 '체'가 '합체'하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워 금세 읽었다.

문득 이 책이 떠오른 건 국가로 치면 여야 역시 일란성 쌍둥이나 다름없고, 지금 우리 정치에 필요한 것이 만병통치약처럼 처방하는 '네탓'이 아니라 여야의 '합체'가 필요한 까닭에서다.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이 공허한 메아리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여야를 떠나 국민을 위해 진정으로 힘을 모으는 '합체'를 보여줘야 한다. 그나마 '4류 정치'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말이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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