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교육부의 교과서 5‧18 지우기 파문을 보며 두 가지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 5‧18의 진실을 관통하는 무슨 대단한 담론도 아니다. 지난 송년 모임과 얼마 전 신년모임에서 지인에게 들었던 얘기다.
그녀는 5‧18 항쟁에 참여했다. 최후의 항쟁 거점인 옛 도청에서 일찌감치 빠져나왔기에 진압군에 체포되지 않았다. 얼마 후 전남의 어느 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하던 중 학교를 찾아온 형사들에 의해 검거됐다.
그녀는 유치된 광산경찰서와 계엄사를 오가며 조사를 받았다. 담당 형사가 항상 동행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형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 후 그녀의 삶은 어둠에 갇혔고 온전하지 못했다. 폭행의 가해자는 고령의 나이로 지금까지 눈 빤히 뜨고 살고 있다.
후배의 아내가 최근 모두가 철 밥통이라 부러워하는 공직을 그만 뒀다. 그녀는 5‧18 성폭행 피해를 조사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너무 괴로워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다는 게 그녀의 사퇴 이유였다.
폭력이 가해한 혐오스런 상처들이 피해 여성들의 삶을 망가뜨린 실태가 너무 참혹했다고 말했다. 그 상처들을 오히려 범죄인 양 감추고 어둠 속으로 숨어들려고만 하는 피해 여성들의 자기혐오를 지켜보는 일은 조사관인 그녀에겐 더 괴로운 일이었다. 기자는 ‘아내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후배를 위로했다.
이 얘기들은 단순히 1980년 5‧18에 대한 아픈 서사가 아닌, 국가폭력의 맨얼굴이다. 폭력의 상처는 피해자의 전 삶을 통해 그렇게 이어진다. 가해자의 폭력도 이어진다. 최근 교육부 장관이 5‧18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는 그것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이미 5‧18을 정당화 했다. 국립 5‧18 민주묘지가 조성되고, 광주 학살 진압의 주범인 전두환 또한 법의 심판을 받았다. 5‧18 기념일도 제정됐다. 보훈처는 또한 항쟁 참여자들을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했다. 그런데도 법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야 할 대한민국의 각료들이 회색인의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폭력의 심층을 해부한 ‘대한민국 잔혹사’를 펴낸 김동춘 교수는 그 까닭을 이렇게 해석한다. 폭력의 문제점이나 비윤리성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 그러나 각료들이 폭력을 거부하는 보편적인 법정신, 사회적 가치가 아니라 권력의 최상위에 있는 임명권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행동할 때 국가폭력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결국 권력을 운용하는 하부 구조 책임자들의 이러한 심리적 관행이 고쳐지지 않는 한 국가폭력은 이어지거나 언제든지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다고 김 교수는 경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제왕적 대통령제를 통치체제로 삼고 있는 국가들에서 대통령과 권력 상층부의 의중은 법이나 보편적 가치를 넘어서는 상위에 존재한다. 이들의 의중이 반체제 세력을 무도한 ‘빨갱이’로 규정하면 그들은 빨갱이였기에 어떤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 존재로 전락해버린다. 국가폭력의 파시즘은 그렇게 작동된다.
지금의 20대, 30대, 그리고 청소년들은 국가폭력에 낯설다. 국가폭력의 가공할 위협이 자신들의 곁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과거사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기에 국가폭력의 작동 과정에 대해 무지하다. 오히려 이들은 국가폭력이 아닌,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권위에 저항하거나 굴복하는 편이다.
우리 헌법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또한 이 규정은 국민이 올바른 주인의식을 갖지 않으면 민주공화국의 발전은 없다는 정의로 환치될 수 있을 것이다. 도산 안창호는 ‘참여하는 사람은 주인이고 그러지 않는 사람은 손님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18세 이상에 선거권이 주어지면서 우리 청소년들은 이미 올바른 주권을 행사해야 할 정치참여의 주역이 됐다. 이들에게 학교는 정치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 장소일 수밖에 없다. 학교 안 정치교육의 중요성은 그만큼 막중하다.
이런 의미에서라도 국가폭력의 기록은 청소년 교과서에서 지워져선 안 된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국의 정체(政體)는 정권의 수명보다 더 오래도록 무한 영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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