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병헌 기자] 맹자(孟子) 이루(離婁)편을 보면 중국 문헌에 최초의 세습 왕조로 기록된 하(夏)나라의 태조이자 요순(堯舜) 뒤를 이어 왕이 된 하우(夏禹)와, 신농(神農)씨에 이어 사람들에게 농사를 가르쳤던 후직(后稷),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 3사람의 인성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하우는 물에 빠진 백성이 있으면 자신이 물 관리를 잘못해 그들을 빠지게 하였다고 여겼고. 후직은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이 농정을 잘못해 백성을 굶주리게 했다고 믿었다고 한다. 공자의 제자 안회는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도(道)를 추구했던 사람이다. 맹자는 "이들은 서로 처지를 바꾸어도 똑같이 했을 사람들(禹稷顔子易地則皆然(우직안자역지즉개연)"이라고 했다.
사망 156명, 부상 187명의 희생자를 낸 이태원 참사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발생 이틀 뒤인 지난 1일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서울시장으로서 이번 사고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느끼며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윤석열 대통령도 늦은 감이 있지만 7일 공식 회의석상에서 사과를 했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 모두발언’에서 "아들과 딸을 잃은 부모의 심경에 비할 수 없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마음이 무겁다"며 "다시 한번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께 위로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피해자 가족들이나 국민들 눈높이에 어떻게 비쳤을까 무척 궁금하다. 확인 불가능이지만 역지즉개연의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참사가 일어난 선진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고 서울의 시장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제4조)을 보면 ‘국가와 지자체는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할 책무를 지고’, ‘각종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헌법(제7조)에도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밝히고도 있어 당연히 그래야 한다.
물론 '사죄'와 '책임 통감'이 이태원 참사에 대한 무조건적 면죄부는 아니다. 실정법상 책임이 없다고 해도 정치적 책임이나 지휘 책임. 도의적 책임은 별개의 문제다. 그래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윤희근 경찰청장,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국민의 재난 및 안전관리의 직접적인 책임에 맞닿아 있어 실정법상으로도 자유롭지 않아보인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책임기관들의 부실 대응 의혹을 수사 중에 있고 8일 오전에는 경찰청과 서울청, 용산경찰서, 용산구청, 서울소방재난본부, 용산소방서, 서울교통공사 등 7개 기관 55곳에 수사관 84명을 투입해 전방위적 압수수색을 진행한 상황이다. 특히 지난 2일 첫 압수수색 때 제외됐던 윤 청장과 김광호 서울청장의 집무실도 포함했다. 아울러 윤 청장과 김 청장을 비롯해 류미진 전 서울청 인사교육과장(당직 상황관리관),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등의 휴대전화 45개도 압수했다.
전날 윤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와 함께 "엄정히 책임을 묻겠다"고 하면서 경찰 수뇌부까지 수사 대상에 포함 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이 전 서장 등 참사와 관련해 입건한 이들과 윤 청장, 김 서울청장 등에 대한 소환 조사도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윤 경찰청장과 김 서울청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하고 있지만 향후 입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다. 현재까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7명이 입건됐다.
경찰의 전방위적 수사 착수에도 뒷말이 끊이질 않는다. 경찰의 '셀프 수사'라는 점도 문제지만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장관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책임은 누구보다 크기 때문이다. 참사 당일 그의 행적도 피해자 가족들과 국민들은 궁금해한다. 경찰의 책임만 부각하는 것처럼 비치는 여권의 태도도 부적절해보인다. 정부의 진상규명 의지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경찰의 대응은 물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차원의 대처, 입법 과제, 더 나아가 시민적 자세까지 하나하나 짚어봐야 할 게 너무나도 많다. 진정한 반면교사를 원하다면 대통령실까지 예외없이 성역없는 수사를 해야한다.
여야도 이를 모를리 없다. 국가애도 기간이 끝나자마자 진상조사와 책임규명을 외치며 상호 정치공세에 나선다. 하지만 잘 포장된 정국 주도권을 위한 노림수로만 비치는 게 극히 개인적인 혼자만의 생각일까?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국정조사’로 압박하며 공세의 칼끝을 윤석열 대통령을 겨눈다.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전면적인 국정쇄신 △국무총리 경질과 행정안전부 장관·경찰청장·서울경찰청장 파면 △국민의힘의 국정조사 수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 등 여권은 참사의 책임을 '경찰 부실 대응'으로 선을 그으면서 방어막을 쌓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민주당이 통과시킨 검수완박법으로 검찰이 이태원 참사를 수사할 수 없고 수사권도 없는 국정조사로 진실을 밝히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맞서지만 조금은 궁색해 보인다. 이처럼 진상 조사부터 "‘문재인 정권이었다면 이런 참사가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 집단'과, '주무장관·지자체장이 져야할 지휘 책임마저 부정하는 집단‘의 이전투구(泥田鬪狗) 양상은 개탄할 일이다. 정쟁이 진실을 드러내기보다 더욱 어지럽게 한다.
'일차적 책임은 무조건 정부·여당에 있다'는 원죄에 대한 부담감이라도 있었다면,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책임지는 모습이라도 제대로 보였다면 정쟁의 소지가 줄었을 것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무책임한 언행이나 경찰 수뇌부의 한심한 행태와 시스템 미비 변명 등이 두둔으로 보였고 결국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민주당의 대응은 더욱 실망스럽다. 국가 애도기간에는 정쟁과 거리를 두는 듯하더니 이후 일부지만 ‘정권 퇴진’을 입에 올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촛불집회를 주도하려다 취소했는가 하면, 민주당 성향 인사들은 주말 촛불집회에서 "윤석열을 끌어내리자"는 구호까지 외친다. 6개월 전에도 국민의힘이 집권당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국민 안전시스템은 물론이고 참사의 일부 실질적 책임자가 문재인 정권 당시 임명된 인사라는 사실을 외면한 것이다. 정치권 공동의 책임인데 참 염치없는 일이다. 대선 결과 불복으로 비칠 수도 있다. 참사를 왜곡하는 행위는 대상이 누구든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