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의 왜들 그러시죠?] 어느 16세 여학생의 죽음에 대한 ‘회한’


청소년 자살은 ‘사회적 타살’…교육청‧학교, 가슴에 손 얹고 뼈아프게 성찰해야

광주에 있는 한 여학교에서 16살 A양이 안타깝게 숨졌다. 이 여학생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학교와 주변에 여러차례 위기의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비극을 막지 못한 안타까움이 더해지고 있다./픽사베이 갈무리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얼마 전 광주의 한 여학교에 다니던 16세 A양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가슴 아픈 사건을 접하며 ‘무관심’이라는 우리사회의 아노미 증후군에 대해 새삼 깊은 생각에 빠졌다.

‘자살론’을 쓴 사회학자 에밀 뒤르캠은 자살은 개인의 정신병리학적 문제가 아닌 사회학의 과제라고 규정했다. 뒤르캠의 이론은 곧 가족의 본질성이 해체되고 공동체가 해체된 현대사회 속에서 서로가 타자와 타자로 격리되며 ‘고독한 섬’으로 존재하는 외로움이 과제의 중심에 도사리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자살률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최근 5년간 청소년 자살률은 55% 증가(2021년 통계)했다. 자살은 10대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로 부상했다. 인구절벽 시대에 가볍게 여길 사안이 결코 아니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자살을 시도하는 청소년들은 죽는 순간까지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한다고 말한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자살 의도를 직‧간접적으로 알리는 사례가 많으며, 그 구조신호를 주변에서 감지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 자살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A양도 여러 차례 주변에 위기의 시그널을 보냈다. 동료 학생에게 받았던 학교폭력 스트레스, 잦은 결석과 조퇴, 병원 치료 전력 등 위기의 고비를 가까스로 넘기고 있음을 심상찮게 드러냈다.

담임선생도, 상담교사도, 학교도, 가족도, 그 학생의 문제를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지만 죽음을 막지 못했다. 또한 그 여학생은 1차 자살기도라는 분명한 시그널을 보내기도 했다. 더더구나 어른들의 몰이해가 빚은 잔혹한 대목은 1차 자살기도가 발생한 다음 날에 열린 ‘학교위기관리위원회’에 A양을 출석시킨 점이다.

하루 전 자살을 시도한 16세 여학생이 어떤 심신의 상태로 그 회의에 참석했을까? 위로하고, 조언하고, 학생의 위기를 관리한답시고 모인 어른들의 시선에 둘러싸여 있던 A양은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미 죽은 이의 머릿속을 헤아릴 수는 없다. 어떻든 A양은 그 위원회에 참석한 며칠 후 다시 2차 자살을 기도하고 끝내 숨을 거뒀다. 위원회가 열린 다음 날 학교에 들려 자신의 책들을 회수해 가는, 신변정리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학교는 A양의 이 모습을 ‘위기를 넘긴, 문제해결의 징후’로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와 A양은 종국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구원의 접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걸어간 셈이다.

16세 여학생이 스스로 죽음으로 다가서는 그 며칠…그 미혹의 시간들을 결코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던 기자는 가만히 눈을 감고 A양의 그 며칠을 ‘다크 투어’를 하듯 고통스럽게 반추해보았다. 결론은 눈물겨웠다.

가르친 학생의 죽음 앞에서도 학교는 당당했다. 사건을 보도한 <더팩트> 취재진에게 ‘학교도 할 수 있는 일 다 했다’ ‘우리라고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 등등의 장문의 메시지를 수차례 보냈다. 사건이 보도된 당일 저녁, 취재기자는 모 교사의 이런 메시지에 속절없이 시달려야 했다. 실제로 학교는 기사에 의한 명예훼손 고발 건을 모 변호사와 상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가르치던 제자의 죽음 앞에서도 명예훼손 운운하는 학교 측에 대해 이 칼럼의 마지막 대목을 빌어 기자는 이렇게 정중하게 되돌려 준다. 가만히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얹고, 16세 여학생이 ‘스스로 죽음에 다가서는 그 며칠’을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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