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 정국이 출구를 찾지 못 하고 있다. 끝이 보이질 않는다. 여야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고, 국민의 피로감만 더해지고 있다.
이번 논란은 지난 21일(현지시간) 윤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최한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회의장을 빠져나오면서 한 발언으로 시작했다. MBC는 윤 대통령 발언에 비속어와 바이든 대통령이 언급됐다고 보도했고, 여야 모두 발칵 뒤집혔다. 대통령실은 15시간 만에 해명에 나섰지만, 논란만 더 키웠다.
윤 대통령이 순방에서 돌아왔지만, 비속어 논란이 가라앉기는커녕 더 확산일로다. 윤 대통령은 "사실과 다른 보도" "진상규명"에 방점을 찍었다. 그런데 며칠 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달 29일 "제가 대통령께 여쭤보니 본인은 잘 기억하기 어렵고"라고 했다.
애초 이 문제는 여기까지 올 일은 아니었다고 본다. MBC의 최초 보도 이후 수많은 언론이 같은 내용으로 문제를 제기했을 때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이 '유감'을 표명했으면 끝났을 사안으로 생각한다. 해명 과정에서부터 꼬였고, 이후에는 가짜뉴스, 왜곡, 편파방송, 정언유착 등으로 규정했다. 문제는 대통령실과 참모진이 해명할수록 일을 키우는 꼴이 됐다는 점이다.
지금 대통령실과 여당의 대응 기조는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를 나름대로 곰곰이 생각하다 윤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읽었다. 정답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는 대응 기조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 5월 10일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반지성주의'를 언급했다.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코로나19 방역 등을 '반지성주의'로 규정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정치는 이른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입니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입니다.
국가 간,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 우리가 처해있는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알 수 있듯이 대통령 본인과 대통령실, 그리고 국민의힘은 야당과 언론들의 주장을 '반지성주의'로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 XX들', '바이든' 'X팔려서' 등과 같은 발언도 애초 주변 소음 등으로 특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 실장 발언에서 이같이 판단한 이유를 알 수 있다.
김 실장은 지난달 29일 "그래서 처음에 뉴욕에서 대응이 15시간이 걸렸다고 할 때도 이게 진짜 그런가 해서 교수, 전문가에게 음성 분석도 요청했다. 그런데 잘 안 나왔다"고 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라고 한 대목과 가깝다.
대통령실과 여야의 진실공방으로 전 국민이 듣기평가를 하게 됐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그리고 여야는 한동안 이 문제를 놓고 공방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고 계속 이 문제를 끌고 가는 것도 윤 대통령이나 여당에는 부담이다.
그래서일까. 김 실장은 "지금 저희도 (논란을) 빨리 종식시키고 싶지만,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가르쳐 달라"고 취재진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러자 관련 기사 댓글에는 "간단하다. 사과하면 된다"가 대부분이다. 국민은 쉽게 끝날 일을 왜 이렇게 힘든 길을 선택했는지 의아할 것이다.
영화 '배테랑'에서 주인공 마도철(황정민)이 자수하러 온 최상무(유해진)에게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이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아? 그냥 '미안합니다' 한마디면 될 일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커질 수가 있지? 사회적으로 욕먹고 사는 거 당신네들 익숙하잖아. 근데 왜 이렇게 일을 벌려가며 막는거야?"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그리고 여당은 현재 논란을 반지성주의자들의 획책이라는 시각에서만 접근해선 안 된다. 정치는 대다수 국민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상식이어야 한다. 또, 지지 세력만을 위한 정치는 반대 세력을 키워줄 뿐이다. 야당도 이때다 싶어 공격에만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세금을 먹고 사는 정치인이라면 늘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를 자문해야 한다. 국가의 생존은 곧 국민의 생존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