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의 왜들 그러시죠] '전범기업' 편든 외교부, 대한민국 외교부 맞나?


미쓰비시 자산 매각 통한 배상 결정 보류 의견서 제출…대법원 최종 판결 ‘주목’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노동력 부족이 심각해진 일본은 미쓰비시 등 군수공장 근로정신대로 조선에서 5만~7만명에 달하는 여성들을 강제 동원했다./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더팩트 ㅣ 광주=박호재 기자] 아시아 제 국가들에 참혹한 피해를 입힌 전범 국가이면서도 일본은 여전히 반성하지 않는다. 이 뻔뻔함의 책임에서 미국 또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아니 어쩌면 그 책임의 8할이 미국에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2차 대전 후 승전 4개국이 기소 처벌권을 갖고 수행한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나치 A급 전범 피고 24명 중 12명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특히 소련은 자비가 없었다. 당시 재판장인 소련의 이오나 니키첸코 장군은 군인에게 총살형이 아닌 교수형은 치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지만 교수형을 강력하게 주장해 관철했다.

독일은 뉘른베르크 재판을 역사적 교훈으로 미래 세대에 남기기 위해 당시 법정을 복원해 박물관으로 꾸미고 관람객들에게 상세한 재판 기록을 공개하고 있다. 히틀러가 몹시 사랑했던 도시 뉘른베르크는 이제 히틀러의 악행을 전 인류에 고발하는 증언의 장소로 자리매김 됐다.

일본의 전범행위를 심판하는 법정도 1946년에 도쿄에서 열렸다. 그러나 재판의 전개양상은 뉘른베르크와는 사뭇 달랐다. 도쿄 전범재판은 11개국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한국은 배제되었다. 왜 승전국인 미국이 이런 결정을 했는지는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뿐만 아니다. 전범 중 0순위로 이름을 올려야 할 일왕은 아예 기소자 명단에서 빠지는 등 알맹이 없는 재판이 진행됐다. 일본의 괴뢰정부 만주국의 실질적 경영자였던 A급 전범혐의 기시 노부스케도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기시 노부스케는 얼마 전에 죽은 아베 신조의 외조부다. 이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이 아베를 조문하자 북 매체는 ‘역도, 구역질나는 추태’ 라고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전후 처리 주도권을 쥐고 있었으면서도 일제 강점 하 한국의 피해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일본에 지나치게 관대했던 미국의 처신은 이후 일본이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견지해가는 데 일조를 했다.

지금도 일본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범국 책임을 거론할 때마다 동맹국의 이름으로 미국의 등 뒤에 숨는 외교 전략을 구사한다. 미국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아시아 국가들의 약점을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태도는 이후 반공 친미 정권의 한일 외교 기조로 자리 잡으며 ‘친일 청산’이라는 역사심판을 가로막았다. 한국 현대사의 슬픈 자화상이다.

미쓰비시 국내자산을 매각을 통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앞둔 대법원에 외교부가 보낸 판결 보류 취지의 의견서가 공개되며 파문이 일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제 강점기에 자신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전범기업 미쓰비시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의 결정을 대법원으로부터 받아낸 지 10년이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딴청을 부리는 미쓰비시를 상대로 국내 자산 강제매각을 통한 배상 소송이 진행되는 와중에 외교부가 매각에 불복하고 재항고에 나선 미쓰비시 편을 들고 나선 셈이다. 외교부의 의견서가 힘을 발휘한 탓인지 대법원은 지난 19일 예정된 결정을 미뤘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돕는 시민사회단체들은 "대한민국 외교부는 도대체 어느 나라 외교부냐?"며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비난의 화살은 윤석열 정권의 저자세 한일외교 행태까지 겨눴다. ‘굴욕 외교’도 정도껏 하라는 비판이다.

윤 대통령은 강제 징용 배상과 관련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면서 상대국 주권 문제를 고려 사항으로 언급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또한 망언이라 규정하며 반발하고 있다. ‘강제징용은 없었기에 반성할 일도 배상할 이유도 없다’는 뻔뻔한 가해국의 외교적 주권을 왜 피해국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고려해야 하느냐고 날을 세웠다.

식민지 조선의 소녀로 끌려가 배고픔을 참으며 전쟁물자 생산에 동원됐던 이들은 이제 대다수 생을 마감했거나 죽음을 목전에 둔 고령의 할머니들이 됐다. 그리고 마지막 안간 힘을 다해 가해국 일본을 향해 외치고 있다.

"괜한 돈 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일본 정부는 사과하라. 그리고 미쓰비시가 착취한 내 노동에 대해 정당한 배상을 하라!"

미쓰비시 자산 매각을 통한 일제강제동원 배상은 이제 대법원의 시간으로 넘겨졌다. 윤석열 정부의 개입이 대법원 판결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삼권분립 헌법정신에 입각한 대법원의 현명한 판결을 기대해 본다.
forthetrue@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