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병헌 기자] 공정과 정의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거의 같은 의미다. 공정은 ‘경쟁의 기회와 조건을 같게 함’을 강조하는 뜻이다. 과정의 정당성이나 결과의 형평성을 ‘평가할 때’ 사용되는 개념이다. 법률이나 사회적 관례, 그리고 상식 등 어떤 기준을 전제로 한다. 이런 ‘공정’의 가치는 현 세대를 관통하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직전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도 공정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기회는 균등해야 하고 과정은 공정해야 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회 균등은 공평사회를 지향하고 과정의 공정은 공정사회를 지향한다. 이른바 공정과 공평을 함수로 한 정의를 말했다.
지난 5년의 문재인 정부는 공정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지만 임기 내내 불공정 시비를 야기했고 많은 국민들도 이러한 지적에 공감한다. 5년 만에 정권이 민주당에서 국민의 힘으로 넘어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대표적인 것이 정부·여당의 조국사태에 대한 대응이다. 이어 윤미향 사태, 박원순 사태, 라임 옵티머스 관련 사건, 대장동과 백현동 관련 비리 사건 등의 처리 과정은 불공정의 ‘내로남불’을 보여줬다. 여기에 편 가르기로 공정의 가치도 보편성을 잃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 국민의힘이 문재인 정부와 같은 공정의 기치를 내걸고도 정권 교체에 성공한 대목도 연장선상에 있다. 공정을 끊임없이 강조했던 흘러간 5년의 결과와 평가를 떠나 앞으로 5년의 중요한 사회적 가치도 지난 정부에서 너무 아쉬웠던 탓일까?
공정이 다시 주요 사회적 가치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사회가 공정에 관심이 많은 것은 그만큼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지금도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100일도 채 되지 않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시작부터 불거진 인사문제 논란이 권성동 여당인 국민의힘 대표직무대행및 원내대표의 발언을 계기로 ‘사적 채용’, 즉 불공정 논란에 휩싸인다.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은 가볍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윤 대통령 부부의 스페인 방문에 동행해 사적 수행 논란을 빚었던 이원모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의 배우자가 한때 대통령실에 출근하며 채용 절차를 밟은 게 드러나 비판을 받은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최근엔 윤 대통령의 외가 6촌과 극우 유튜버 안 모 씨의 누나 등이 대통령실에 채용돼 논란이 된다. 이번엔 윤 대통령의 강원도 지인이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의 추천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에선 "대선 승리에 공헌했다"고 해명하지만 ‘지인 찬스’로 보이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전 정권이나 현 정권 모두 도긴개긴이다. 경쟁 절차에 조금의 오염도 개입되어서는 안 되며 투명한 경쟁 절차를 거쳐 소정의 성과를 얻은 것이 정당해야하는 공정의 기준이다. 이 기준에서 본다면 ‘사적 채용’ 논란도 '조국 사태'와 사건의 성격에서는 크게 다를 바 없다. 양 사안 모두 공정을 경쟁과 기회 평등적 시각에서만 보는 이른바 경쟁적 공정에서의 흠결 때문에 불공정이라는 주장이 나오기 때문이다. 경쟁적 의미의 공정은 다소 좁은 의미이나 20·30 세대는 매우 민감하다
물론 ‘공정’ 또는 ‘불공정’ 을 인식하는 흐름을 보면 생각은 각자 태도와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일련의 과정은 비슷하게 흘러갔다. 진영논리에 우선한 정치집단의 공격적 문제 제기에 이은 정치 공세와 프레임 씌우기로 흘러간다. 맘대로 재단한 뒤 열렬 지지층의 여론몰이가 이어진다. 공격을 받은 진영은 온갖 방어논리를 동원해 나서고 역시 지지층들을 끌어들이며 반격의 기회를 찾는다. 이건 공정과 거리가 너무 멀지 않는가?
공정은 공동체의 대다수 구성원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상식과 결부된다. 사람들은 상식에 어긋나지 않아야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상식에 적합한 일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공정이 지나치게 좁은 의미로 제한되게 해석되고 있는 측면이 있고 국민들 일부가 다소 헷갈려 한다해도 상식에 적합한 면이 많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20일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대통령실 채용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그래도 집권 여당답다는 생각이 든다. 다소 늦은감이 있지만 바람직한 행동으로 윤석열 정부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다시 되살리게 한다.
권성동 대행은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대통령실 채용과 관련한 저의 발언에 대해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특히 청년 여러분께 상처를 주었다면 사과드린다"며 "사적채용 논란에 대해 국민께 제대로 설명드리는 것이 우선이었음에도 저의 표현으로 논란이 커진 것은 전적으로 저의 불찰"이라고 밝혔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도 권 대행이 ‘사적채용’ 논란을 사과한 데 대해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싶다"고 거들었다.
상식이 제도화 되고 그것이 국가적 기준으로 확보되고 지켜지는 것이 법치라 할 수 있다. 정치인들은 정략적 술수가 먹히지 않아 달갑지 않아도 이는 최대 다수의 국민들이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권 대행의 사과를 계기로 윤석열 정부가 추진할 공정과 상식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될 수 있도록 보편성을 갖기를 바란다. ‘조국(민주당)의 불공정’보다 ‘권성동(국민의힘)의 불공정’이 보다 발전적이고 한결 전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