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병헌 기자] 각자도생(各自圖生). 각자가 스스로 제 살길을 도모한다. 좌절하고 절망하며 실망했을 때 생존법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봐도 전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거나 흉년, 대기근 등 민심이 매우 흉흉한 시기 민초의 입장에서는 각자도생이 최선책이었을 것이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이 적지 않았던 조선시대만 해도 국운이 위기에 달했을 때마다 각자도생이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등 2번의 난리통과 조선 중·후기 대흉년 때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백성이 고통을 받던 때 등 4차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도탄에 빠진 나라를 책임져야 할 조정은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고, 누구도 믿을 수 없었던 백성은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렸다.
지금은 예전처럼 그리 힘들진 않더라도 시절이 각박해진 탓일까? 지금도 혼밥, 혼술, 졸혼, 황혼이혼 등 ‘각자도생’의 실행적 의미를 담은 유행어가 대한민국을 지배한다. 국민들은 원해서라기보다는 내몰린 측면이 커 보인다. 그리스 철학자 크세노폰은 플라톤 국가론의 핵심인 '철인통치'에 반론을 제기하며 아무리 지혜로운 통치자라도 사익과 권력을 위해 일하면 이처럼 정글과 같은 세상이 펼쳐지게 된다고 했다. 지금의 우리 모습이 그런 꼴이다.
공당이 아닌 파당의 이익을 추구하는 진영 정치는 외교, 안보, 경제, 민생 등 국정의 모든 영역을 파행으로 이끄는 주범이다. 조선 시대 붕당 정치와 진배없는 후견주의, 소모적 정쟁, 정치 보복의 근원이다. 최악의 각자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만 잘 살겠다고 아우성치고, 제 밥그릇을 챙기고, 상대에 불법도 서슴지 않는다면 그 끝에는 공멸밖에 없다. 이기적인 존재인 인간은 학습을 통해 이타심과 공공성 등을 갖추게 되나 위기에 봉착하거나 시스템이 무너졌다고 느끼면 본성으로 돌아가게 되는 법이다.
'트라이브(Tribe·부족)'라는 책을 쓴 작가 서배스천 영거는 이같은 살벌한 삶의 방식을 깨기 위해서는 부족 공동체 생활의 핵심이었던 연대, 소속감 등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고전적이고 유기적인 관계 맺기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현대사회의 정신적인 황폐화를 막을 방도가 없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공동체와 네트워크 회복은 강력한 리더십 없이는 불가능하다. 제대로 된 리더가 각자도생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의원이 당 대표 출마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잠행을 끝내고 조만간 등판을 공식화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친이재명(친명)계는 친문재인(친문)·이낙연계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 지도체제 요구에 반박하면서 ‘이재명 위기론’에 대해서도 적극 반박하고 있다. '이 의원이 당 대표가 되면 분당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가능성이) 0.01%도 없으며 정치적 자멸 행위"라며 강도 높게 비판한다. 친문계 전해철 의원과 홍영표 의원의 잇딴 불출마 선언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 듯 하다. .
이 의원의 잠행 속 질주도 거침없다. 자신이 책임을 오롯이 진 6.1 지방선거는 완패하면서 잠시 숨을 돌릴 법도 하나 전혀 그럴 기색이 없다. 민주당 전직 국회의장들을 비롯해 당 원로 5명 가운데 4명이 당 대표 출마를 만류했지만 대답을 아꼈다. 이해찬 전 대표 정도가 예외다. 민주당 의원들도 반대가 훨씬 더 많다. 당원들은 출마를 찬성하는 쪽이 많기는 하지만. 구주류인 친문(친문재인)계에 이어 당 원로그룹마저 당 대표 불출마를 권했지만 흔들림이 없다.
출마 선언은 전당대회 규칙이 확정되는 7월 초,중순께가 될 것 같다고 한다. 8월 28일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시간이 충분한 만큼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판단으로 여겨진다. 친명계외 민주당 의원들 중에서도 출마 포기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이들은 없다.
이 의원의 출마 강행 ‘논리’에 특별하거나 절박한 뭔가가 있는지 궁금해보이나 결론은 '없다'다. 그 흔한 출마의 변 이상 이하도 아니다.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하는 당 안팎의 요구가 많다’ ‘이번 기회에 당을 혁신하지 못하면 2년 뒤 총선에서 당세가 급격히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핵심적인 출마 강행의 논리다. 친명계 한 의원은 "불출마 압박이 커질수록 당원들의 출마 요구도 거세져 오히려 이 의원이 고심할 여지가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이 대목도 ‘술 마시면 취한다’는 논리의 수준에 그친다. 오히려 2년 뒤 총선 결과의 책임을 고스란히 져야 한다는 위험부담이 더 크다는 분석에 눈길이 간다.
이 의원이 반드시 출마하려는 이유는 뭘까. 출마가 이 의원의 운명에 어떻게 작용할까? 현재로는 뭐라고 말할수 없다. 정면교사일 수도 반면교사일 수도 있다는 얘기로는 부족하다. 대선주자급이라면 누구든 해당되는 예측이다. 당 대표가 된다는 가정 아래 비교해볼 수 있는 대상은 1987년 대선 이후 역대 대통령과 대선주자들이다. 우선 재수에 성공한 대통령 중 3당 합당으로 야당에서 여당이 된 김영삼 대통령을 제외한 김대중·박근혜·문재인 대통령과 비교는 가능해 보인다.
김대중 대통령은 점진적으로 표를 늘려갔지만 연거푸 두차례 낙선하고 정계를 은퇴했다가 1997년 대선에서 1000만표를 받아 당선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석패한 뒤 물러나 있다가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해 당이 위기에 처하자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불려 나와 총선과 대선을 잇달아 이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국회의원으로 조용히 지내다가 2015년 2월 대표가 되면서 대선주자의 길을 다시 걸어 2년 뒤 대통령에 올랐다. 이 의원의 행보와는 사뭇 달라 보인다.
반대로 친문계가 이 의원의 당대표 출마를 유독 반대하는 이유도 궁금해진다. ‘책임론’ 보다는 친명계가 당을 장악할 경우 퇴임한 문 대통령의 안전을 제대로 보장받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지나친 정치적 상상처럼 들린다. 이미 대선을 전후해 다수의 친문계가 이미 친명계로 넘어갔다. 친명계에 합류하지 못한 친문계와 이낙연계가 각자도생에 나선데 따른, 문 대통령의 퇴임 후 안전과는 상관없는 새로운 계파 갈등 서막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러면 해답은 명료해진다. 민주당은 대선과 지선등 잇단 패배로 위기이고 쇄신이 필요하다. 이 의원의 경우도 대장동,성남FC 후원금, 변호사비 대납, 백현동 의혹 등의 수사가 전방위적으로 시작된 지금 내세우는 출마 명분은 희석될 수밖에 없다. 친문계의 '출마 불가론' 역시 각자도생의 실천적 범주에서 머무는 수준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특히 이 의원은 인천 계양 출마가 각자도생의 출발이었다면 대표 출마는 완결편이라는 일부 비판에도 완전히 자유로울수 없다
8.28 민주당 전당대회가 국민적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문제를 알면서도 해법을 찾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달 사이에 또 어떤 드라마가 펼쳐질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