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오동나무에 걸린 달을 보고 개들이 짖었다, 한 마리가 짖자 두 마리가 짖고 떼를 지어 따라 짖는다. 문밖에 나가보니 달이 오동나무 제일 높은 가지에 고즈넉하게 걸려 개들을 밝게 비추고 있을 뿐이다. 조선후기 화가 김득신((金得臣)이 자신이 그린 출문간월도(出門看月圖)를 손수 설명한 글이지만 그 행간에는 개들의 눈에 달도 낯설고 불편해 보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해나 달, 눈 등은 개를 위협하거나 불편을 주지 않는다. 달을 보고 짖는다는 촉나라의 개(촉견폐월/蜀犬吠月)나 흰눈을 보고 짖어대는 월나라의 개(월견폐설/越犬吠雪)가 이상해보일 뿐이다. 소리나 존재에 대해 분별 없이 짖는 개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것은 근거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처럼 ‘무조건 따라 짖는 개’를 ‘속 좁은 인간’, 즉 본뜻의 인지여부에 상관없이 쓸데없이 고민하거나 맹목적으로 고집부리는 인간’으로 비유했다. 상황 판단력과 이해력 부족이거나 막무가내일 것이다. 이들은 생트집으로 다른 이의 온당한 입장이나 주장을 비난하거나 비방하기 일쑤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은 지난 24일 6·1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번 지방선거에 기회를 주신다면 제가 책임지고 민주당을 바꿔나가겠다"고 호소했다. 특히 "다음 전당대회에서 당헌·당규를 체계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고쳐야겠다"도 밝혔다. 청년 정치인 양성 시스템을 제도화하고 팬덤 정치와도 결별하겠다고 약속했다.
'586(50대·80학번·60년대생)세대' 용퇴와 관련해서도 "젊은 민주당으로 나가기 위한 그림을 그려 나가는 과정에서 기득권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야 민주당이 반성과 쇄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 같다" 고 쓴소리를 했다. "맹목적인 지지에 갇히지 않겠다. 민주당을 팬덤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으로 만들겠다"고도 강조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뒤에도 변화가 없는 민주당의 ‘반성과 쇄신에 대한 약속’으로 여겨진다. ‘내부 총질'이 아니고 자기 정치도 아니라는 게 대다수 국민들의 반응으로 읽힌다.
민주당과 강성 지지자들은 달랐다. 힘을 합쳐 지방선거에서 잘해보자는 취지인데 ‘개가 달이나 해를 보고 짖듯’ 일사불란(一絲不亂)이 무색할 정도로 비판하고 나섰다.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은 박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로 도배됐다. "박지현 제발 나가라", "지선을 망치려고 (국민의힘에서) 보낸 트로이 목마냐", "왜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자꾸 내부의 문제를 키우나"는 등 강하게 비판했다.
이재명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극렬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은 한술 더 뜬다.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는 박 위원장을 비난하는 글들로 뒤덮였다. "오만방자한 박지현, 민주당이 추방시켜야 한다" "언제까지 박지현의 자폭을 봐야 하냐"는 등 거세게 비난했다. 이재명 위원장은 "민주당의 반성과 쇄신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라며 "그밖의 확대해석은 경계한다"고 선을 그었다.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개인 차원의 입장 발표" 라고 의미를 축소한다.
반면 당 밖을 벗어나보면 청년 정치인의 쇄신 의지라는 평가도 의외로 많다. 민주당 청년 당원도 "당에서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은 박지현 위원장뿐이다.사과할 짓을 안 해야 사과를 안 할 것"이라며 박 위원장 행보에 대한 지지도 만만찮다.
박 위원장은 이튿날인 25일 공개회의에서 '586용퇴론'을 거듭 주장했다. "잘못된 팬덤 정치를 끊어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회의는 문밖으로 고성이 들릴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다고 한다.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박홍근 원내대표 등이 "여기가 개인으로 있는 자리가 아니지 않냐. 지도부와 상의하고 공개 발언하라"고 하자, 박 위원장이 "그럼 저를 왜 뽑아서 여기다 앉혀놓으셨냐"고 했다고 한다. 윤 위원장은 책상을 손으로 강하게 내리친 뒤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것으로 알려진다.
민주당은 지금 위기다. 개인적으로도 개혁과 쇄신이 매우 절실해 보인다. 최근 일주일새 민주당 지지율은 여러 여론조사에서 하락세다. 5월 초 40% 안팎이던 지지율이 일부 조사에서는 20%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이 잘해서는 아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래 통상 새 정부 출범 후 여당의 기본 지지율 수준인 40%대 지지율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인사 청문회에서 제대로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법안 밀어붙이기에다 성 추문까지 연이어 터지면서 지지율이 급격히 빠진 것 같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한마디로 쇄신과 반성 없는 줄기찬 ‘내로남불’의 여파라는 지적인 셈이다. 민주당 온건파 의원들은 의원총회에서 강경파를 향해 "검수완박 하면 지지층 결집으로 지지율 올라간다더니 어떻게 된 거냐"고 항의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팬덤은 정치인이나 정당에 가장 중요한 무기다.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이 어떤 입장이 되든, 어떤 선택을 하든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추종하는 베이스 캠프 역할을 한다. 여론이 중요한 시대일수록 팬덤은 정치의 큰 동력으로 작용한다. 유권자 모두가 스마트폰이라는 ‘미디어’ 한 개씩을 운영하고 있는 지금 어떤 조직보다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자칫 팬덤이 극단적인 진영논리의 전진 기지가 되는 경우 법치와 민주주의의 훼손은 물론이고 자멸을 우려해야 한다.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등의 팬덤이 이어지는 민주당이 지금 그렇게 보인다. 위계 서열을 이루는 각 주체의 자발성과 책임의식은 기대하기 힘들고 합리적 의사결정은 ‘팬덤과 밀착도가 높은 하부로부터의 압력’에 취약해진 듯하다. 위기가 닥친 지금 아래로부터 불만의 역류를 막기 위해 무책임한 강성 여론에 편승해 즉흥적 비난과 잘못된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압승이 더욱 확실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