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아시아나항공의 '고객·직원 모독', 산업은행도 책임 있다


경영진 ‘갑질 및 꼼수 경영’, 고객 공분과 직원 분열로 설상가상(雪上加霜)

아시아나항공이 자사 수익을 늘리기 위해 수시로 기종 변경과 빈 좌석을 채우기 위한 운항 일정 변경 등을 코로나에 덤터기 씌우고 불편은 고객에게 전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래 왼쪽 작은 사진은 정성권 아시아나항공 대표./더팩트 DB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그 당혹스러움이란 무방비 상태에서 성인물을 접한 아이의 심정이 그랬을 것 같다.

<더팩트>가 지난 4일과 10일 연달아 보도한 아시아나항공의 비정상적 경영 행태 관련 단독 기사를 읽고, 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페터 한트케가 1966년 처음 발표한 작품 ‘관객모독(Publikumsbeschimpfung)’ 연극을 본 기억의 편린을 더듬어 본다.

막이 오르고, 무대는 비어 있고 관객의 기대감도 무너진다. 부자지간 관객에게는 "왜 남이랑 연극 보러 왔냐"고 따진다. 행색이 남루하면 "가난하면 연극 볼 자유가 없다"고 혼낸다. 어처구니가 없다. 대사 수위는 하늘 높은 줄 모른다. 여성 관객에게 "바지 한 번 내릴까" "확 끄는데"라는 말도 서슴없이 날린다.

4명의 배우가 의자에 앉아서 한 명씩 돌아가며 부적절한 말을 쏟아낸다. ‘갑질’ ‘비하’ ‘무시’ ‘욕설’ ‘개념 상실’ ‘황당’ 등이 연극 전반의 흐름이다. 연극 시작 전에도 극단 관계자가 객석을 돌면서 정면 앞쪽 무대가 잘 보이는 자리에 있던 노약자들을 막무가내로 빼내 뒤로 보내기도 한다. 대신 그 자리로 간 사람은 정면 앞쪽 좌석을 받았으니 ‘웬 떡이냐’며 좋아하겠지만 막판에 물벼락을 맞는다. 모처럼 비싼 돈 주고 연극 보러 왔는데 내용도 없고 희한한 연극이다. 그래도 오늘날까지 꾸준하게 연극무대에 올려져 사랑받고 있다.

원작자는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연극을 즐기러 온 고객, 즉 관객을 비판하기 위해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평론가들도 ‘고객이여, 주체가 되어라. 안 그러면 물벼락 맞는 건 당신’이라는 메시지가 주효했다고 평가한다. 고객 호응과 고객 감동을 위한 ‘관객모독'이었던 것이다.

많은 기업들은 이익 창출을 위해 고객 감동을 내세운다. 그런데 그 ‘고객 감동’의 이면이 ‘고객모독’이라면? 국민적 공분은 자명하다. 코로나19 상황으로 모두가 고통을 받는 상황을 마케팅에 활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방법은 정당해야 한다. 그런데 아시아나항공은 자사 수익을 늘리기 위해 수시로 기종 변경과 빈 좌석을 채우기 위한 운항 일정 변경 등을 코로나에게 덤터기 씌우고 불편은 고객에게 전가했다는 사실이 아시아나 직원들의 많은 제보와 <더팩트> 취재 결과 드러났다(1일자-[단독] '고객 감동' 아시아나, 알고 보니 코로나 핑계 '고객 갑질'). 일일이 열거하기도 숨가쁠 정도다.

불공정한 휴직제도 운영과 상여금 꼼수 지급에 대한 비판은 사내 임직원 커뮤니티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사내 커뮤니티 중 2022년 경영 정상화를 대비한 직원들의 목소리 글 갈무리.

항공이라는 업종 특성상 코로나19 사태로 다른 업종에 비해 타격을 많이 입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감동은 고사하고 기업 윤리를 벗어난 고객 '기망'은 비난받아 백 번 마땅하다고 본다. 아시아나항공이 국적 항공사라 국민적 분노는 더 높다, 이 회사는 비즈니스 기종 일부를 여러 차례 특별한 이유 없이 변경하는가 하면 조금이라도 좌석이 비면 앞 뒤 시간 비행편을 합쳐서 운항했다. 인터넷으로 땡처리 티켓가격으로 팔아서 오버 부킹을 시킨 뒤 판매된 시간이 아닌 인근 비행편으로 이동시켜 비행기 좌석을 채웠다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사실이라면 '기망'을 넘어선 사기라고 생각한다.

이용자들은 갑자기 바뀐 일정에 혼란을 겪고 예약 여행 일정을 조정하는 불편뿐만 아니라 촉박한 일정 때문에 조기예약 할인 혜택 포기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객 갑질’ 에 ‘고객 모독’까지 하면서도 변경 사실을 코로나 등을 이유로 핑계댔다고 하니 경악스럽다. 이 회사 내부에서도 이 같은 저급한 상품 판매는 중단해야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도를 넘은 수익극대화 마케팅의 대원칙이 ‘고객 갑질’이자' 고객 모독'이었던 것이다. 최근 국가고객만족도(NCSI) 조사에서 항공 부문 2년 연속1위 실적을 앞세워 실시한 ‘고객 기망’이라니 더 황당할 뿐이다.

뿐만 아니다. 잦은 기종 변경 즉 ‘멋대로 운항’도 고객들의 원성을 샀다. 지난해 11월부터 도입한 비즈니스석 비행기에서 이후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항공기 출항전 비즈니스석을 포함한 기종 → 불포함 기종 → 포함 기종으로 변경된 형태다. 지난달 12일 김포발 제주 노선(OZ8972편) 항공권을 예약한 김 모 씨는 비행기를 탈 때까지 무려 두 차례의 기종 변경을 경험했다. 이에 김 씨는 기존 항공권을 환불하고 일반석으로 재구매했다. 재 구매할 때는 조기 예약할인 혜택을 포기해야 했다. 근데 막상 항공기를 타는 순간 기종이 또 바뀌어 비즈니스석이 있는 기종이었다.

김 씨를 비롯 항공권을 재구매한 고객들의 불만이 당연히 이어졌다. 회사 측은 2차례 기종이 변경된 경위는 물론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3차례나 기종이 변경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이는 고객들은 불편뿐만 아니라 사전 예매로 누려야 할 할인 혜택을 받지 못 하는 경제적 손실도 감수해야 한다. "사기당하고 있는 것 같다"는 고객들의 불평이 없으면 이상할 정도다. 경영진의 잘못으로 망해가는 회사에서 열심히 근무해온 일선 직원들이 경영진 몫인 국민의 분노와 비난을 직원들이 전부 감내하는 현실은 사원들의 근무 의욕을 떨어뜨리고 반발만 증폭시킨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아시아나항공이 비용 절감을 위해 불공정한 휴직제도를 통해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내부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더팩트DB

<더팩트>가 10일 보도한 [단독] 아시아나항공 무급 휴직 제도 '악용', 직원 갈등 '증폭' 기사는 아시아나항공의 비정상적 경영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경영진은 비용 절감을 위해 내부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부서별 무급 휴직제 마저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게 운영해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갈등만 부추긴다. 답답할 따름이다.

이 회사는 비상 경영을 이유로 현재 70% 임직원이 직무와 부서별 업무강도에 따라 유·무급 휴직을 진행하고 있다. 한 달 기준 8일 이내 휴직 시 무급, 8일 이상 휴직 시 유급으로 휴가를 진행한다. 휴직 정책이 상여를 줄이기 위한 '꼼수'로 악용되고 일부 부서에만 비밀리에 특혜를 준 정황까지 불거졌다.

박삼구 전회장의 오너리스크로 촉발된 위기는 코로나19에다 현 경영진의 ‘갑질과 꼼수경영’으로 고객의 공분과 내부 직원의 분열로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이대로라면 회생은 사치로 보인다. 항공업계에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입수가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한 것도 일부 관련이 있다. 합병 당사자들의 추진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상황인 데다 미국과 유럽 경쟁 당국이 양사의 합병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에 3조 3000억 원의 돈을 빌려준 채권단인 산업은행도 문제다. 비정상 경영을 방치한 '공범'이나 다름 없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 살려놔야 어떻게든 국민의 혈세를 회수할 수 있는 데도 소 닭보듯 하는 듯한 기미를 지울수 없다.

껍데기와 빚만 남은 아시아나항공은 이제 경영의 기본적 고객 윤리조차 갖추지 못한 듯 보인다.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도 없는듯 하다. 대한항공도 '깡통'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 보호와 산업은행의 투자만 믿고 참여한 상횡이라 개 닭 보듯 한 스탠스다.

그럼 산업은행이라도 적극 나서야 한다. 회사 안팎으로 갈수록 멍들어가는 이 기업을 전액 세금으로 살리든가, 부도 내고 매몰 비용을 안고 가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테이블에 올려놓든가 뭔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은 이 상황을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국민 모독’하고 ‘고객 모독’한 아시아나항공의 다음 '꼼수 경영'이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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