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민주당 경선 승패가 가려지고 후보 공천이 속속 확정되면서 광주의 선거 열기는 급냉하고 있다. 이른 저녁시간에 이미 대다수 후보들 캠프 사무실에 불이 꺼질 정도다. 민주당 텃밭 광주의 슬픈 자화상이다.
공천이 확정된 후보들이 자신의 지역구 선거운동을 팽개치고 송영길 서울시장 유세 지원을 유람하듯 다녀왔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을 덧붙이겠는가. 전라도 방언에 ‘싸목싸목’이라는 말이 있다. 표준어 ‘천천히’의 사투리다.
경선 고비도 넘겼고 공천 받았으니 이제 뒷짐 지고 싸목싸목 시간 때우자는 식이다. 호남에서는 ‘민주당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정치세태를 전형적으로 드러내준 행태다. 어쩌면 후보들 탓할 일도 아니다. 기록 경기도 아닌 바에야 혼자 달리는 레이스를 누군들 열심히 하겠는가. 야구경기에서 홈런을 터뜨린 타자가 전력을 다해 주루 플레이를 하지 않는 이치와 다를 바가 없다.
결국은 광주의 유권자들이 만들어 준 기형적인 풍토다. 그 결과는 허허롭기 짝이 없다. 경선이 끝나면 시민 유권자는 바로 찬밥 신세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이제 그 찬밥을 앞에 두고 6‧1 지방선거전을 동원된 관객처럼 아무런 감응도 없이 관전해야 한다. 반찬 투정은 언감생심이다.
이 때문에 오는 6‧1지방선거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관심은 광역의회와 기초의회에 도전장을 내민 소수정당 후보들이 얼마나 선전을 하느냐에 모아지고 있다. 그 결과가 바로 민주당 독과점 정치구조를 타파하는, 광주 정치개혁의 시작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 정의당과 진보당 등 진보정치권을 중심으로 콘텐츠가 충실한 후보들이 대거 나서고 있기도 하다. 이미 기초의회에서 구 의원을 지낸 경륜을 지닌 후보들도 적지 않다. 그만큼 탄탄한 지역기반을 갖추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수월한 상황은 아니다. 지난 4‧15 여야 입법합의에 따라 광주는 기초의회 중대선거구 시행 시범 선거구로 확정됐다. 광주광역시 의회가 지난달 27일 자치구의원 지역구의 명칭·구역 및 의원정수 확정 안에 따르면 광주는 오는 6·1 지방선거에서 4인 선거구 1곳, 3인 선거구 18곳, 2인 선거구 1곳 등 총 60명의 기초의원을 선출한다.
우선 다당제 기초의회 구성이라는 개혁 취지에 비췄을 때 외견상으로 광주는 매우 모범적이다. 광주광역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을 3인 이상 뽑는 선거구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20곳 중 95.0%인 19곳이 3인~4인 선거구로 확정됐기 때문이다. 2인 선거구는 한 곳에 불과하다.
그러나 민주당의 행보는 여기까지다. 민주당 광주시당이 20곳 선거구 60명 정수 100%를 채우는 후보 공천을 하면서 시민들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당 일당 독식 의회는 지금껏 많은 문제점을 낳았다. 집행부 견제라는 의회 본연의 의무를 팽개친 사례가 허다했다. 심지어는 현역 시의원이 임기 중에 집행부 출연기관의 장으로 옮겨가는, 지방의회 역사에 유례 없는 상식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집행부 견제의무를 망각한 의회의 왜곡된 행태는 고스란히 시민 피해로 남겨진다. 혈세는 새고 의회의 시선을 전혀 개의치 않는 집행부는 ‘제멋대로 행정’으로 시민의 삶을 해친다. 여러 정치세력이 참여해 ‘패거리 이권정치’에 제동을 거는, 지방의회의 정치적 다양성은 그만큼 중요한 명제다.
최영태 전남대 명예교수는 SNS 게시 글을 통해 가을철 감을 수확할 때 감나무에 꼭 두세 개의 감을 남겨 다른 존재들의 생존을 생각하는 ‘까치밥 미덕’조차 민주당이 팽개쳤다며 날을 세웠다. 중대선거구 정수 전원공천으로 싹쓸이 욕심을 유감없이 드러낸 민주당을 맹폭한 것이다.
민주당이 하지 않으면 깨어있는 시민이 하면 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드러날 소수정당의 지방의회 진출 성과는 곧 광주정치 개혁의 출발점이자 정치 선진도시 광주의 정체성을 만방에 자랑스럽게 알릴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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