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울산광역시 가지산 석남사 극락전 벽에는 원숭이들이 나무에 매달려 달을 건지려는 불교 설화의 내용을 담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석남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다. 신라 헌덕왕 때 최초로 선(禪)을 도입한 도의(道義)가 호국기도도량으로 창건한 선찰(禪刹)이다.
그 벽화에 담긴 설화는 불교의 계율을 집대성한 4대 율장 중 하나인 '마하승기율' 경전에 유래한다. 설화는 옛날 인도 가시(伽尸)국 파라나(波羅奈)성 인근 숲에 살던 500마리 원숭이 떼 이야기로 전해진다. 보름날 원숭이들이 연못에서 물을 마시려는 순간 하늘에 있어야 할 달이 연못 속에 잠겨 있는 것을 보면서 시작된다.
원숭이들은 달이 없는 깜깜한 밤은 무서우니 자신들이 달이 물속에 가라 앉기 전에 건져내기로 한다. 묘안이라고 내세운 방법도 막무가내다. 500마리의 원숭이들이 줄줄이 나무에 올라가 호숫가로 늘어진 나뭇가지를 잡고 이어 매달려 달을 물속에서 건져 올리기로 한다. 하지만 많은 원숭이 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뭇가지는 부러지고 원숭이들은 모두 수장된다. 이들 500마리 원숭이가 사람으로 환생하여 500나한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중국 해록쇄사(海錄碎事)라는 문헌에도 '어리석은 원숭이가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한다'(치원착월/癡猿捉月)‘이라는 내용으로 전해진다. '무지하고 무모함을 경계하는 경구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예전부터 많은 불자들이 석가의 가르침을 뜻하는 불광(佛光)이 달빛과 닮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 설화처럼 불교의 가르침이 있는 곳에는 달이 곧잘 등장하는 이유와 연관이 있는 듯하다.
3일 오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안이 인수위 측과 국민의힘 검찰의 거센 저지 및 반대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과 청와대의 일사불란한 추진으로 통과, 공포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임기 마지막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검찰청법 개정안, 형사소송법 개정안으로 구성된 검수완박 법안의 공포를 의결했다.
문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오늘 국무회의는 시간을 조정해 개최했다.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 검찰개혁 관련 법안에 대해 우리 정부 임기 안에 책임있게 심의해 의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개혁 법안을 책임지고 매듭짓기 위해 이날 오전 본회의에서 해당 법안이 통과되고 정부로 이송되는 시간을 기다려 국무회의를 오후에 열었다는 설명이다.
"국민의 삶과 인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국무위원들은 부처 소관을 떠나 상식과 국민의 시각에서 격의 없이 토론하고 심의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해놓고 반나절 만에 해치운 셈이다. 그동안 이를 위해 ‘위장 탈당’ ‘회기 쪼개기’‘국무회의 연기’ 등 동원된 꼼수도 역대급이다.
74년간 유지돼 온 형사 사법 체계가 공청회 한 번 없이 하루아침에 바뀌게 됐다. 퇴임 엿새를 앞두고 이 정부에서 일어났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월성 원전 사건 등을 향한 검찰 수사를 무력화하는 사실상의 ‘문재인 정부 방탄 법안’에 직접 사인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 보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과 청와대는 ‘검찰 개혁의 완성’이라고 포장하겠지만 "잠재적 피의자가 벌이는 탈주극의 최종판"이란 일각의 비판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법안 내용도 국회 법사위의 소위, 안건조정위, 전체회의, 본회의를 거칠 때마다 달라져 이제 뭐가 뭔지 헷갈린다. 민주당 의원 172명 중에서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지 모르겠다. 변호사 단체와 헌법학자, 중도·진보 성향 변호사들까지 "적법 절차 위반" "입법 쿠데타" "헌법 정신 훼손"이라며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다름아니다. 국민의힘이 중재안 합의를 파기해 탓할수 있는 부분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걸로 희석이 되기 어려워 보인다.
일부 민주당 인사들은 "검찰로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를 지키려면 검수완박을 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해왔다. 역설적이게도 여당의 ‘입법 폭주’는 "지은 죄가 얼마나 많길래 저러느냐"라는 일각의 의심을 증폭시키기 충분하다.
국민의힘은 "죄는 지었지만 벌은 거부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집단적 도피 의식이 검수완박의 본질"이라고 비판했다. 대검찰청도 "법률 개정의 전 과정에서 헌법상 적법 절차 원칙이 준수되지 않아 참담할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돌이켜보면 청와대와 민주당은 2019년과 2020년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조정 법안을 처리하고 나서 정의로운 세상이 왔다는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공수처와 검경, 세 축으로 작동한 새로운 사정(司正) 시스템은 ‘정의’와 관련 관계가 있었는지 되묻고 싶다.
민주당은 공수처에 고위 공직자 범죄에 대한 우선수사권을 쥐여줬다.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광역단체장을 비롯해 3급 이상 공무원 비리가 공수처 수사 대상이다. 그러나 출범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공수처가 고소·고발 말고 독자적으로 수사한 고위 공직자는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뭐라고 설명할까? 불행하게도 민주당과 청와대의 검수완박법의 밀어붙히기와 공포의 당위성이 궁색하다는 사실에 더욱 힘을 실어 주는 대목이다.
초파일을 목전에 둔 지금 검수완박법의 공포를 보면서 석가가 경계한 ‘어리석은 원숭이들’이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굳이 언급할 필요조차 없어 보인다. 석가도 무지하고 무모한 어리석은 상당수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안심을 주고 희망을 보여주기보다는 절망과 체념을 안겨주고 있다고 판단하시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