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겉으로 드러난 후보 단일화의 셈법은 사실 단순하다. 두 후보의 지지율을 합해 경쟁 후보를 물리치자는 전략이다. 그러나 역대 선거에서 드러난 단일화 결과는 더하기 셈법의 시너지를 고스란히 보여준 적이 별로 없다. 마치 변종 바이러스의 창궐처럼 또 다른 이질적인 투표심리가 작동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결렬 사태이다. 당시 두 후보의 단일화는 진보진영과 중도 또는 합리적 보수 진영의 결합으로 해석됐다. 이 때문에 정몽준의 이탈은 셈법대로라면 거의 절반의 지지세력이 빠져나가는 형국으로 노무현 캠프에 충격을 안겼지만, 결과는 노무현의 승리로 끝났다.
네티즌들의 손가락 혁명으로 하루 밤 사이에 판세를 뒤집었다는 분석이 있었지만, 좀 더 구조적으로 당시 상황을 들여다본다면 ‘노무현 당선에 정몽준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한 단일화 찬성자들이 급하게 다시 회군을 한 결과로 볼 수 있다.
2012년 치러진 18대 대선 때 문재인‧안철수 단일화가 이뤄졌지만 박근혜 후보에 패했다. 단일화의 역사는 이렇듯 명암을 지니고 있다.
지난 3일 전격적으로 이뤄진 윤‧안 단일화는 통합정부 구성 합의의 결과로 알려지고 있다. 윤 후보의 대선 승리 이후 내각 구성에 안 후보에게 상당한 지분을 할애한다는 내용의 합의였으리라고 어렵지 않게 유추해볼 수 있다. 합당 후 당 대표 설도 나돌지만, 이준석 현 대표의 단일화 합의 이후 언급들을 종합해보건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 며칠 전 이재명 후보도 김동연 후보와 단일화를 성사시키며 통합정부를 약속했다. 더구나 이 후보의 구상은 다당제, 개헌을 위한 대통령 임기 1년 단축 등 통합을 위한 제안들이 더 강렬하고 혁신적이다.
이러한 강도 차이 때문에 안 후보의 정치적 스탠스를 훨씬 더 튼튼하게 구축할 수 있는 이재명 후보와의 연대를 외면하고 윤 후보와의 단일화에 나섰는지는 사실 상식 밖이긴 하다. 피상적으로 해석해보자면 정권교체의 기치가 강한 이번 대선의 승기가 윤 후보에게 기울어져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라 볼 수 있다.
단일화에 따른 두 진영의 결기에서도 차이가 느껴진다. 이 후보 측 지지자들은 ‘위기의식’에 휩싸였고 윤 후보 측 지지자들은 ‘발뻗고 자게 됐다’는 안도감을 드러냈다.
지난 4일 시작된 사전 투표에서 광주‧전남의 투표소는 이른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투표행렬이 길게 줄을 이었다. 양 진영의 치열한 육탄전의 맨얼굴을 드러낸 전례 없는 사전 투표 열기였다. 이 뜨거운 투표행렬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는 오는 9일 밝혀질 것이다.
물론 사전투표의 열기에 대해 두 후보 캠프는 동상이몽의 해석을 했다. 이 후보 측은 "안철수 단일화에 자극받은 지지자들이 결집에 나섰다"고 밝혔으며 윤 후보 측은 "단일화로 호남 30% 득표 목표가 손에 잡힌 지지자들의 의지가 결집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전투표에서부터 격렬한 전운이 감도는 두 후보 진영의 승패의 결과가 미칠 극한 분열의 양상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벌써부터 많아지고 있을 정도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 또한 일면 보수와 진보 진영의 뿌리 깊은 반목과 불신이 초래한 결과이기도 하다. 박 정권을 독재의 후예로 여긴 민주화 세력의 반발은 세월호 참사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광화문 촛불시위로 번졌고, 결국 박 정권의 종말로 끝이 났다.
중도 층이 설자리가 없는 양당 독과점 정치구도는 선거 때만 되면 늘 이 진영 간 사활을 건 싸움으로 격화됐고, 승자독식의 대통령제 중심 권력 구조는 패자의 상처를 보듬지 못하면서 국민통합의 정치를 가로막았다. 반복되고 있는 폐해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정치의 수준을 높여간다. 3월 9일, 누가 승자가 되던 간에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체제 구축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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