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영의 정사신] '녹취록' 난무, '정치 관음증' 대선


여야, 정책보다 네거티브 공방 집중…승자 독식 정치 탓

대선 정국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왼쪽) 씨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녹취록 공개로 뜨겁다. 여야는 정책 선거보다는 상대방 녹취록을 놓고 연일 네거티브 설전을 벌이고 있다. 정책은 뒷전인 양상이다./남윤호 기자·국회사진취재단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바야흐로 녹취록 정국이다. 여야 유력 대선 후보 당사자와 부인의 통화 녹음이 대선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언론과 유튜브를 통해 일부가 공개되고, 또 이 내용인 다시 언론과 정가로 옮겨가면서 확산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는 지난해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 기자와 6개월 간 통화를 했다. 기자는 김 씨와 통화를 녹음했는데, 알려진 바로는 총 7시간 45분 분량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친형 부부와 통화 녹음이 공개됐다. 총 34내 파일에 시간은 약 160분이다.

여야는 두 녹취록 내용을 두고 설전 중이다. 개인적으로 김 씨와 이 후보 녹취 성격을 보자면, 지극히 사적이다. 다만, 두 사람이 공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녹취를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만들어졌고, 그렇게 일부가 공개되고 있다. 두 녹취가 후보를 선택하는 데 누군가에게는 판단 기준이 될 수도 있다.

아무리 사적 내용이라고 해도 두 사람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도 두 녹취록을 국민이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김 씨가 유튜브 채널 기자와 나눈 대화 중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내용도 분명히 있다. 이 역시 녹취록이 공개됐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이 후보의 녹취도 마찬가지다. 이 후보와 가족 간 나눈 사적 대화다. 가족의 내밀한 상황을 제3자가 무슨 권리로 알아야하는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그가 고인이 된 친형 그리고 형수와 대화 중 욕설을 주고받은 내용만으로 인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다.

따라서 대선 국면에서 두 녹취록은 여야의 네거티브를 위한 정치적 수단에 불과해 보인다. 물론 양강 구도를 형성한 두 후보나 각 정당에는 매우 중요할 수도 있다. 선거 국면이기에 어느 정도는 이해된다. 대통령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와 결이 다르다. 각 정당이 정치적 사활을 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선은 승리가 목적이고 목표일 수밖에 없다. 현재 제기되는 의혹들도 사실 따지고 보면 상대를 깎아내리는 정도일 뿐 진실을 밝히기는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그동안 선거에서 숱하게 보았던 장면들이다.

지난 2020년 7월 16일 문재인 대통령이 제21대 국회 개원식에서 개원 축하 연설을 하던 당시. /더팩트 DB

이렇다 보니 정책 승부나 페어플레이를 언급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 후보나 윤 후보나 하루가 멀다고 SNS를 통해 각각 '소확행 공약' '심쿵공약'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 공약 내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관심을 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 거론한 녹취록 등이 원인이다.

여야 모두 정책 선거를 이야기하면서도 서로의 녹취록을 부각하는 데 열을 올린 결과다. 왜 네거티브만 하냐고 서로를 비판하기도 민망한 상황이다. 여야 모두 '정치 관음증'에 빠져 국민의 귀만 피곤하게 하는 격이다.

성호(星湖) 이익은 조선의 정치에 대해 '붕당은 투쟁에서 나오고, 투쟁은 이해(利害)에서 나오며, 그 본질은 '밥그릇 싸움'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이익은 조선의 붕당정치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상대방을 흠집 내고 몰아내야 하는 정치로 본 것이다. 붕당 정치의 '밥그릇 싸움'이나 현재의 '승자 독식' 정치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녹취록 대선, 정치 관음증도 결국은 '승자 독식' 정당 정치가 본질에서 비롯했다. 대선이 이제 약 4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야는 이제라도 타 후보의 사적 활동을 몰래 엿보는 '정치 관음증' 조장은 멈추고 국민의 삶을 위한 정책 선거에 집중하길 바란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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