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후 6개월…부실 관리・감독 구청은 기소조차 안 돼, 더딘 재판에 유가족만 ‘냉가슴’
[더팩트 | 광주=박호재 기자] 한 해의 끝이 눈앞이다. 이 무렵이면 누구나 아쉬웠던 일들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매듭짓지 못한 일 때문에 개운찮은 느낌이 가슴 한 구석에 그늘을 드리우기도 한다.
연말이 되면 지역사회라는 공동체도 이런 회한의 공감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광주 지역민들에게 가장 찝찝한 뒤끝을 남긴 사안은 무엇일까? 저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겠지만 기자는 부실시공으로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학동 재개발 철거 참사라 생각한다.
물론 법적 책임을 묻는 과정이 진행되고 있긴 하다. 불법 하도급 비리에 관여한 브로커와 하도급 업자, 공사 감독이 구속 수감되고, 유가족들과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이 배상을 두고 다툼을 벌이고 있다.
시민사회에 충격을 안긴 엄청난 참사에 비한다면 결자해지를 해야 할 법정은 지켜보는 이들이 답답하리만치 더디기만 하다. 사고가 터졌을 때 시장, 구청장, 국회의원 등 말깨나 하는 모든 이들이 나서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쳤지만 그 모든 언급들이 지금은 공허한 메아리로 맴돌 뿐이다.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사고 직후 6개월이 지났는데, 재판은 책임 떠넘기기 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내 소중한 가족이 사라졌는데 잘못을 저지른 책임자가 없는 걸 어떻게 이해하란 말이냐"고 울분을 토했다.
더더구나 사태가 괴이하게 변질되고 있는 것은 재개발 사업 진행의 관리‧감독 의무를 지닌 지자체의 행정 책임은 시간이 지나며 어디론가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어느 공직자 하나 다친 이가 없다. 심지어 사고 현장의 관할 구청은 적지 않은 부실 관리‧감독의 사례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기소 대상에서조차 제외됐다.
지난 6일 광주시의회의 재난안전에 대한 시민인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광주 학동 재개발 철거현장 붕괴사고에 대한 최종 책임자를 묻는 질문에 시민들은 현대산업개발 51.5%, 동구청 26.1%, 하도급 철거업체 16.6%, 재개발조합 5.8% 순으로 답했다.
광주시 안전 개선의 장애요인에 대한 질문에도 행정관청의 관리 감독·점검 부실 38.4%, 안전불감증·안전의식 부족 31.2%, 안전교육 미흡 15.4%, 관련법령 및 제도 미비 15%로 답변했다.
재난 안전사고의 원인에 대해서는 국가나 지자체의 사전대처 미흡 38.7%, 안전교육이나 체험 부족 30.1%, 사고를 당한 사람의 부주의와 안전 불감증 28.1%, 119나 경찰의 늦은 대응 3% 순으로 나타났다.
어느 모로 보나 지자체의 행정책임이 막중하다는 이 같은 시민사회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관할 지자체는 학동 참사가 ‘딴 나라’ 일이 된 것인 양 자유로워졌다.
시민들은 정부와 지방정부에 국세와 지방세라는 명목으로 돈을 낸다. 생명과 재산, 그리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존엄을 보장받는, 일상의 안위를 영위하기 위해서다. 이 약속을 담보로 정치권력을 부여받은 국가나 지자체는 강제력을 행사한다. 시민들 또한 이러한 사회적 계약에 따라 때로는 불편한 강제력을 감수한다.
최소한 학동 철거참사를 두고 볼 때 이 계약은 파기된 바나 다를 바 없다. 지자체는 시민사회가 부여한 강제력조차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시민의 안위를 지켜주지 못했으며, 생명을 잃는 위해를 안겼음에도 위약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있다.
시민을 위한 조항을 강화시키는 재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그 재계약서에 날인을 하는 날은 내년 지방선거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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