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악어는 먹이를 잡아먹을 때 눈물을 흘린다. 눈물이 입안에 수분을 보충, 먹이를 삼키기 좋게 해주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잡아먹히는 동물이 불쌍해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인다. 위선적 모습을 ‘악어의 눈물’이라 일컫는 이유도 다름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24일 민생·개혁입법 추진간담회에서 모두 발언 도중 '사죄의 절'을 했다. 그러면서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고 또 앞으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변화되고 혁신된 새로운 민주당으로 거듭나겠다는 의미로 제가 사죄의 절을 한번 드리도록 하겠다"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크게 절을 한 뒤 한 번 더 깊게 허리를 숙였다.
"변화와 혁신이라는 기대를 충족할 수 있도록 선대위 구성도 잘 정리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한다.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서 지금까지 우리의 민첩하지 못함, 그리고 국민들의 아픈 마음을, 그 어려움들을 더 예민하게, 더 신속하게 책임지지 못한 점에 대해서 제가 다시 한 번 사과드리도록 하겠다"고 밝힌다. 매우 절실해보이기도 한다
최근 이 후보의 발언이나 표현에는 ‘사죄’ ‘사과’ ‘반성’이 매우 많아졌다. 예전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악어의 눈물'이라고 폄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군중연설에 능한 달변가이자 과단성과 실천력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 후보이지만 '대장동 의혹' 등과 관련한 그의 발언과 해명이 시간을 두고 조금씩 바뀌어온 점 때문이다.
나름의 피치 못할 이유야 있겠지만 모두가 이해가 되는 계제는 아니다. 다만 이 후보와 민주당의 변화가 최근 들어 나타나면서 국민들은 주시하고 있다. 국민들의 요구와 바람을 앞세워 많은 변화를 꾀하고 있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윤관석 전 사무총장은 이 후보가 ‘사죄’의 무릎을 꿇은 날 당사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희 민주당 주요 정무직 당직 의원들은 비장한 각오로 새로운 민주당을 만들기 위해 선당후사의 마음으로 일괄 사퇴의 뜻을 함께 모았다"고 밝힌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국민들께서는 민주당이 더 많은 혁신을 통해서 새 민주당으로 거듭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국민과 지지자들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민주당 선대위도 이미 쇄신과 전면 개편을 결의하고 실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직후 실제로 민주당의 주요 정무직 의원들은 일괄 사퇴했다. 정무직 당직을 사퇴한 의원들은 윤 총장을 비롯해 박완주 정책위의장, 유동수 정책위 부의장, 고용진 수석대변인, 서삼석 수석사무부총장, 송갑석 전략기획위원장, 민병덕 조직사무부총장 등이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21일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선대위와 당 전면 쇄신에 동의하는 차원에서 이 후보에게 선대위 쇄신 등 전권을 위임했다. 이 후보는 현재 당내 의견을 수렴해 선대위 쇄신 인사 작업을 진행 중이다. 상임선대위원장인 송영길 대표를 포함해 모든 의원이 대선 승리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는 의지도 모은 상황이다. 기존 민주당 색깔 대신 '이재명의 민주당'을 내세워 절반이 넘는 정권교체 여론을 흡수하는 위한 고육지책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후보는 지난달 10일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됐다. 하지만 후보 확정 후 한 달도 월씬 넘기면서 지지부진하다 뒤늦게(?) 혁명수준의 쇄신과 혁신을 진행 중이다. 이 후보의 평소 성품으로 볼 때 왜 진작에 하지 못했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지지도가 오차범위를 벗어난 상황으로 밀리면서 당내 위기감이 팽배했을 때도 없었던 ‘혁명적 조치’다. 당은 손놓고 선대위는 보이지 않는 위기 속에 ‘나 홀로 선거운동’을 해오던 중 지지율이 반등할 낌새를 보이자 선거모드를 '국민과 민생'으로 재조정하면서 취한 후속조치로 여겨진다. 이른바 승부수다.
지난 20일을 전환점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바닥 민심의 변화를 감지한 이 후보는 그날 시장 유세에서 "권력, 지위, 직책 다 던지고 오로지 실력과 국민을 위한 충정, 열정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시작하겠다"고 강조한다. 당과 선대위 쇄신 의지도 밝힌 것이다.
이처럼 지지율 반등을 위해 선대위 전면 혁신과 당 쇄신에 나서며 위기감을 고조시킨 결과는 지지층 결집으로 이어졌다. 지난 22~23일 조사해 24~25일에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이 후보는 일부 조사에서는 2주 전과는 달리 오차 범위 내 접전으로 그 외 조사에서도 윤 후보를 오차범위 밖이지만 열세의 간격을 크게 좁힌 것으로 나타난다. 국민의힘이 앞서가던 정당 지지율도 다시 오차범위 내로 좁혀졌다.
윤 후보가 경선 직후 '컨벤션 효과'를 이어가지 못하고 상승 추세가 꺾인 덕도 봤다. 또 윤 후보가 대선 후보 확정 이후 선대위 구성 줄다리기로 에너지 소모가 커지면서 이 후보의 '대장동 특검' 역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종합부동산세 등 중도층이 민감해하는 부동산 이슈가 우선 순위에서 밀려난 대목도 주요원인으로 지적된다.
공자는 인(仁)을 선(善)의 근원이자 행(行)의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대상이 백성이고 국민이라면, 정치인과 정당의 가치이자 덕목으로 여겨진다. 논어(論語) 자장(子張)편에는 액션플랜을 간결하게 설명한다. "(백성을 위해)간절히 묻고 가까운 것부터 생각하면 인은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절문이근사 인재기중의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
허황되게 생각하지 말고 진정성을 담아 가까이서 생각하면 해답이 있다는 의미다. 우리 대선 현실에서 이 후보와 민주당에는 주창과 실행에 앞서 큰 걸림돌이 있다. 바로 진정성이다. 그 이유는 국민들이 더 잘알고 있다. 이 후보가 1주일째 ‘사과’와 ‘사죄’를 읍소하고 다니지만 무엇에 대한 사죄 사과인지도 아직은 구체적이지 않다. '진정성'과 '악어의 눈물'은 백지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그 실체를 확인한 민심의 향배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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