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연루 부자 및 9명 교수 전원 실형 선고…학부모 고발에도 대학당국 2년 동안 사태 외면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고려 시대 문벌 귀족에게 주어진 정치적 특권인 음서제(蔭敍制)가 있었다. 5품 이상 관리의 자제들은 부모의 음덕을 통해 무시험으로 관리가 될 수 있는 제도로, 국가가 고위 관리에게 지급된 토지는 상속을 가능케 한 공음전(功蔭田) 제도와 함께 고려 사회를 귀족 사회로 인식하는 근거가 되었다.
고려 성종 때 확립된 음서제는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다. 조선조의 음서제는 2품 이상 관리의 자제에게 무시험 자격을 부여했다. 능력 위주의 과거제도를 더 선호했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이다.
상식을 지닌 이들은 모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당시의 제도를 비웃을 수 있겠지만, 21세기 개명 천지에도 이 음서제의 검은 그림자가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현상을 우리는 곳곳에서 확인하고 있다. ‘아빠 찬스’, ‘엄마 찬스’라는 신조어들이 뉴스 보도의 키워드로 여전히 우리들 주변을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 파장도 심각하다. 최순실 ‘엄마 찬스’ 정유라 사건에 이은 곽상도 ‘아빠찬스’ 곽병채 사건은 2030 세대의 울분을 자극하며 국정을 뒤흔들고 있는 상황이다. 내 집 마련도, 취업도 어려운 현실에 불공정 특혜까지 적나라하게 민낯을 드러낸 터라 2030 세대의 상대적 박탈감이 극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곽상도 아들로 못 태어난 게 죄다" 는 한탄은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온라인 커뮤니티에 흔히 볼 수 있는 글이다. 결코 곽상도가 될 수 없는 부모들의 자멸감도 사무쳤을 게 불을 보듯 빤하다.
지난 9월 30일 광주지법 404호 법정에서 상아탑의 양심에 조종을 울린 서글픈 재판이 열렸다. 아들에게 특혜를 주고 부정하게 조선대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한 공과대학 이 모 교수 부자와 동료 교수 9명이 고개를 숙이고 피고석에 섰다. 이날 법원은 이들 모두에게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 모 교수 부자가 연출한 학위부정 사건에 9명의 교수가 공조한 초유의 충격적인 사태가 결말에 이른 것이다.
이 모 교수 아들이 쓴 섬유강화 고분자 복합재료에 관한 연구 논문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조선대 대학원 기계시스템공학과에 재학중인 아들 이씨는 이 논문으로 지난 2018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이 씨가 대학원에 입학한 지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아빠 찬스'가 작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씨는 학과장인 아버지의 수업을 세 과목 들으면서 출석도 거의 하지 않고도 최고 학점을 받았다. 다른 교수 9명의 수업을 듣는 7학기 동안에도 20여 과목의 출석과 과제 제출에서 특혜를 받았다.
법원은 아버지인 이 모 교수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아들 이 씨에게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또 학사 운영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동료 교수 9명에는 각각 3백에서 1천만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이날 재판장은 선고에 앞서 "공학박사 학위의 가치를 저하시켰으며, 다른 대학원생들의 기회·노력·업적을 격하했고 상대적 불평등을 초래했다"며 "부끄러운 줄 알아야 된다"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선고 후 처벌이 지나치게 가볍다고 항의하는 학부모들에 대해 죄질은 무겁지만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른 양형규정의 한계를 이해해달라고 했을 정도다.
사필귀정에 이르렀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이 사건이 학부모들에 의해 고발된 지 2년 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동안 대학당국은 무엇을 했느냐는 점이다. 법인 이사장도, 총장도 명백하게 드러난 학위부정 사태를 바로잡을 노력도 전혀 하지 않았으며 학사 범죄로 재판에 회부됐을 시에 일단 직위해제를 해야 하는 학칙도 외면했다.
대학당국이 사태를 깔아뭉갠 이 와중에 고발에 나선 학부모들은 기소유예 처분에 항고하고 고등검찰의 수사 재기명령을 어렵게 받아내는 등 외롭게 투쟁했다. 이날 재판 결과는 조선대학이 아닌, 학부모들이 갖은 고초 끝에 이끌어낸 사회정의인 것이다.
많이 때늦은 감이 있지만 조선대학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 된다"는 피고들을 향한 재판장의 꾸짖음을 온전히 대학 당국을 향한 질책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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