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에 긍정적 에너지로 작용하기를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초반 충청지역에서 완패를 당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의원직 사퇴'라는 초강수를 두며 배수진을 쳤다. 반(反)이재명 및 중도 성향의 국민·일반당원들을 적극적으로 경선 투표장으로 이끌어 반전을 꾀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11일부터 시작되는 ‘1차 슈퍼위크’를 비롯한 향후 경선 과정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될지 여부가 주목된다.
이 전 대표의 사퇴 결정 배경에는 이재명 지사로는 결국 본선에서 패배가 불가피하다고 캠프 내에서 분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캠프 소속 한 의원은 "도덕성에서의 강점이 민주당의 전통인데, 이 지사가 출전했을 때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나 홍준표 의원과 차별성이 전혀 없다"며 "수신제가(修身齊家)도 제대로 못하는 후보가 민주당 선수로 나서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강하다"고 말했다.
도덕성(도덕)은 인간 사회에서 올바른 행동거지로 도리나 바람직한 행동을 말한다. 공자(孔子)의 말에 의하면 정치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도덕이자 정의이다. 정치인 한 사람의 잘못된 윤리관이 공익을 해친다는 중요한 사실을 정치인은 물론 국민이 방관해서는 안 된다
이탈리아 정치학자 가에타노 모스카(Gaetano mosca)는 "어떠한 가치도 도덕에 의해 지지(支持)되지 않는 한 불안정함을 면치 못한다."라고 했다. 민주주의나 개혁도 도덕적 원리에 기초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법은 처벌이 무섭지만 도덕은 별것 아니라는 생각도 있으나, 사실 도덕이 법보다 우선한다. 도덕을 근간으로 그 위에 법을 세웠기 때문이다. 또한, 법과 제도도 결국 그것을 적용하고 운용하는 인간의 문제로 귀결된다.
한 빅데이터 업체가 정치기사 관련 댓글을 분석한 결과 이번 대선 키워드는 개혁성, 도덕성 등이었다고 한다. 지난 선거에서 경제정책, 서민이라는 키워드와 비교해 볼 때 국민들의 기대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확연히 알 수 있다. 도덕성은 양심, 정의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며, 키워드는 도덕적 리더와 투명한 공직사회를 바라는 국민적 열망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청렴은 목민관의 본질적 임무이다"라고 말했고,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청렴보다 더 신성한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도덕성이 공직자의 주요 덕목으로 꼽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낙연 전 대표가 나름 이 지사나 국민의힘 대선경선에서 1~2위를 다투는 윤석열 후보나 홍준표 후보보다는 경쟁 우위에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객관적 사실여부의 확인이나 검증을 떠나 ‘나 만의’ 경선 전략으로 내놓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당원이나 국민들의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지가 관건이다. 지금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전체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나 양자 대결에서도 이 지사에 밀리는 형편을 감안하면 사정은 녹록지 않다는 애기인 셈이다.
물론 캠프 내부에선 이 전 대표가 "결기를 보여줬다"고 평가를 하며 향후 경선 구도 변화도 기대하고 있다. 한 의원은 "이 전 대표가 그동안에는 결정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는데 이번 건을 통해 그게 아니라는 것이 입증돼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긍정적인 변화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진정성이 담보되고 이를 국민이 공감해야 한다. 진정성(Authenticity)이라는 에토스((Ethos:말하는 이의 고유 성품))는 18세기 이후 근대적 개인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 고유한 진심을 가진 도덕적 개인이 진실되지 않은 사회와 대면하면서 그 사회를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의미했다. 그래서 진정성은 흔히 사회 진보를 염원하는 청년들로도 표상된다.
진정성의 의미는 ‘眞情性’이 아닌 ‘眞正性’이다. ‘眞正’이라는 한자어는 참되고 올바른 성질이나 성정을 말한다. 진정한 친구, 진정한 리더, 진정한 나라, 진정한 자유 등과 같은 말를 표현하기 위해서 쓰는 단어로 도덕성을 수반한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완전히 식상해지고 설득력이 많이 사라진 게 현실이다. 정치인들은 자신이 진정성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속마음을 알아달라고 간청할 때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후 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도 커지면서 정치인의 '진정성'은 힘을 잃었다.이 전 대표 캠프 측은 "(의원직 사퇴가) 민주정권 재창출의 절박함과 절실함을 보여주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말한 대목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인지 이 전 대표는 의원직 사퇴 선언 다음 날인 9일 전격적으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방을 비웠다. 사무실 내부 짐을 빼고 보좌진 면직 처리 절차에 들어가는 등 사퇴 후속 조치를 속도있게 진행했다. 사퇴의 '진정성'에 동력을 더해 줄 보다 강한 보여주기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의원직 사퇴서는 (입장발표 후) 어제 바로 제출했다"며 "지방 일정을 수행하는 보좌진들이 있어 면직 처리는 다음 주에 일괄 진행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송영길 대표와 윤호중 원내대표는 의원직 사퇴를 만류하는 입장이다. 원팀으로 본선을 치르기 위해서라는 이유는 대외적인 명분으로 보인다. 민주당 지도부도 뜻밖의 '배수진'에 적지 않게 당황한 기색이다.
전문가들은 이 전 대표에게 충격을 안겨준 충청 경선결과에 대해 도덕성과 자질을 평가하기보다는 본선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에게 전략적인 투표를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전 대표 캠프의 분석과는 결이 다르다. 하지만 어느 쪽 분석이 정확한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살다 보면 쓰러지는 날도 있고 물러날 때도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조급함은 성취를 망친다. 잘 준비되지 않으면 또 넘어진다.
염일방일(拈一放一)만이 나도 살리고 모두를 살린다. 말 그대로 하나를 잡으려면 다른 하나를 놓아야 산다. 북송(北宋)의 대학자이자 개혁가였던 사마광(司馬光)이 어렸을 때 뛰어난 재치로 독에 빠진 아이를 구한 파옹구아(破甕救兒)와 궤를 같이 한다.
사마광이 일곱 살 때 친구들과 놀다가 한 친구가 뜰에 있던 큰 물독에 빠졌다. 사마광은 큰 돌을 가져와 독을 깨뜨렸고 물이 구멍으로 쏟아져 나와 친구는 죽지 않고 살아났다. 꼬마가 해 낸 일을 어른들은 왜 생각지못했을까. "사다리를 가져오라, 밧줄을 구해오라" 서두르기만 했지 비싼 독을 깬다는 생각은 뇌리에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페이스북에 올린 내용의 핵심도 ‘파홍구아’였다. "이것저것 따지다 정작 생명을 잃는다면 돌로 깨부숴야 할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었었다.
달아오르는 민주당 경선의 흐름도 정권 재창출을 위한 후보의 경쟁력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배수진을 친 이 전 대표의 의도대로 흐름이 바뀔지, 이 지사의 뜻대로 그대로 갈지는 아직 모른다.
경선의 결과를 떠나 이 전 대표의 의원직 사퇴가 민주당에 긍정적 에너지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이 전 대표도 그럴 것이다. 그의 도덕성은 ‘경쟁은 경쟁이고 원팀은 원팀’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bienns@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