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선 경선 논란 '접입가경'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스티븐 브랜드배리라는 호주의 쇼트트랙 선수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벌써 20년 전인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1000m 금메달리스트로 호주에서는 동계 스포츠의 영웅이다. 조국에 첫 동계 올림픽 금메달을 안겼고 남반구 최초의 동계올림픽 금메달 리스트가 된 인물이다.
그의 쇼트트랙 주행 실력은 세계 최정상급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모자랐다. 행운(?)도 실력이고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한 만큼 모자란 금메달리스트는 결코 아니다. 그는 당시 준준결승에서 4명 중 3위로 통과, 탈락 위기였으나 앞에서 1명이 실격당해 2위로 통과한다. 준결승은 더 극적이다. 5명 중 5위로 달리다 마지막 바퀴에서 앞서간 선수 3명이 넘어져서 2위로 통과했는데 1위도 실격당한다.
결승에서의 행운은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5명 중 5위로 달리다 앞선 4명이 마지막 바퀴에서 죄다 넘어진다. 준결승과 결승에서 경기 도중 우승후보들이 서로 지나치게 견제하다 넘어지거나 실격당해 길을 열어줬다. 그들은 누가 우승해도 인정받을 최정상급 선수들이었다. 한국의 김동성 안현수, 미국의 안톤 오노, 중국의 리자쥔 등.
브래드배리의 입장에서는 로또의 확률에 버금가는 어부지리(漁父之利)가 아닐수 없었다. 적들의 실수와 과욕이, 서로에 대한 총질이 제3의 경쟁자에게는 행운을 가져다준 셈이다. 흘러간 올림픽 애기가 뜬금 없을 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제1야당인 국민의힘 돌아가는 꼴이 브래드배리를 떠올리게 한다.
여느 시기보다 정권교체에 꿈은 더욱 크게 부풀리면서도 당 대표는 허구한 날 유력 대선주자 측과 싸움을 벌이고, 다른 대선주자들도 뒤질세라 그 싸움판에 뛰어 서로 물어 뜯고 있다.
그동안 민주당의 치열해보이는 경선 경쟁에 대해 일각에서 상호비방이라며 우려하지만 국민의힘과 비교하면 족탈불급(足脫不及)이다. 싸움 수준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 상대방 말꼬리나 잡으며 조롱에다 인격 살인 수준의 치명적인 비아냥거림까지 난무한다.
접입가경(漸入佳境)을 넘어섰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윤석열 후보는 곧 정리된다’라는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를 놓고 국민의힘이 발칵 뒤집어진데 원희룡 후보가 불을 지폈다. 원 후보는 17일에 이어 18일에는 ‘분명 그런 뜻으로 들었다’고 주장해 논란이 더욱 커졌다.
원 후보는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이 대표가 ‘윤석열 후보는 곧 정리된다’라는 말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원 후보는 "지난 10일, 이 대표와 18분여 동안 통화했다"면서 "당대표는 경선에 너무 아이디어를 내거나 관여를 하면 안 된다. 공정성 시비가 붙고 최후의 보루로서 남아 있어야 된다, 이런 얘기를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대표의 말에 실려 있는 감정이라든지 어투라든지, 대화 전체 흐름이나 표현되는 감정이나 뉘앙스 이런 걸 보면 (저거 곧 정리된다)는 그것은 갈등이 정리된다는 얘기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면서 "윤(석열) 캠프에서 얼마나 이 대표에 대해서 나쁘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거기에 대해 분노한 감정을 한참 표현하다가 ‘정리된다’고 표현했기에 당연히(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원 후보는 당 대표가 너무 불공정해서 발언했다고 하지만 진위여부를 떠나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원 후보는 경선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병수 의원을 향해서도 "이 대표의 아이디어가 주입된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이 대표는 며칠 전 SNS에 "(예비후보 토론회는) 돌고래를 누르는 게 아니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윤 후보측 정진석 의원이 "돌고래와 멸치, 고등어는 성장 조건이 다르다"며 윤 후보를 돌고래, 다른 주자들을 멸치와 고등어에 비유한 것을 인용하며 반박했다. 정 의원의 비유도 부적절하지만 이 대표 처신도 의도가 왜곡됐더라도 너무 가볍고 수준낮아 보인다.
지금 당 대표의 가장 큰 책임은 후보 경선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관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정도에서 벗어났다. 당 대표가 특정 대선후보 측과 대놓고 각을 세우는 상황도 납득하기 어렵다. 공정과는 거리가 먼 건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윤석열 후보도 그렇다. 기습 입당과 당내 행사 불참에 이어 이 대표의 예비후보 토론회를 굳이 ‘떼 토론회’로 폄훼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특히 본인의 발언이 아니라도 ‘탄핵’까지 끌고 나온 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여기에 하태경 후보가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희룡 후보는 대선 경선 후보를 즉각 사퇴해야 한다"며 "대통령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 점도 긁어 부스럼이다. 하 후보는 "어제 '저거 정리된다'는 표현을 '당 대표가 윤석열이 금방 정리된다고 했다'며 허위사실로 사적 통화내용을 폭로해 당을 뿌리째 흔들었다"고 주장했다. 봉합 수순을 밟던 당내 갈등을 원 후보가 증폭시켰다는 주장이다. 보기에는 도진개진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사태의 발단은 윤석열 전 총장과 이준석 대표의 갈등이다. 우선 이 대표는 후보들이 제기하는 의혹부터 깨끗이 해소시키고 전혀 관여하지 않았어야 한다. 좀 박하게 점수를 주자면 초등학교 반장 선거 수준보다 못 한 선거 관리로 보인다.
정당 지지율에서 여당보다 오히려 앞서 나간다는 제 1야당의 민낯을 보여줬다. 여당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 것이다. 지지층들은 어떨까? '국민의힘이 왜이러냐고 이 대표가 왜이러냐고' 테스형에게라도 물어봐야 할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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