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석방'은 반쪽에 불과...'공정'과 '촛불정신'의 기준은 '민심'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벌써 5년이 가까워 온다. 국민들은 서울 광화문광장 집회에 나가 촛불을 들었다. 권력을 위임한 이들은 나라 꼴을 엉망진창으로 만든 집권세력에게 책임을 묻고 싶어서였다. 이념성향·세대·지역 차이를 막론하고 광장에 나와 "이게 나라냐"고 외쳤던 국민들 모두 마찬가지 심정이었을 게다.
당시 광장은 ‘박근혜정권 퇴진’ 후 나라다운 나라가 만들어지길 염원하는 마음으로 꽉 채워졌다. 그런 간절함은 대한민국호를 문재인 정부에 맡기게 된다. 새 정부는 역대 정부들과 ‘완전히’ 달라야 했다. 상식이 통하는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 상대를 존중하고 약자를 보듬는 통합된 사회, 경제와 민주주의 체질이 건강한 사회의 기틀을 닦아야 했다. 그게 민심이었기 때문이다.
새 정부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멋들어진 약속도 했다. 이념·진영 논리와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국리민복을 위한 길로만 나아가겠다는 각오였다. 촛불민심에 대한 기본적 예의이니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이후 시간은 불행하게도 시행착오로 점철됐다.
나라를 둘로 갈라놓았던 ‘조국 사태’, 박원순·오거돈 성추문, LH 사태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매사가 ‘내로남불’이었고, 열혈 지지층만 보고 돌진했다. 촛불 민심은 이런 나라 꼴을 바랐던 게 아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까지 겪으면서 국가 경제, 특히 국민 경제는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그렇게 강조해온 ‘공정사회’는 구두선, 즉 ‘말로만’으로 변질되어가는 형국이다. '공정'이란 불편부당함을 말한다. 민심의 눈높이에서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치우쳐 유리함이나 불리함을 주는 일 없이, 같은 기준으로 모든 사람, 모든 문제를 처리할 때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13일 가석방한다고 발표한 조치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사실 글로벌 시장에서의 반도체 위기와 코로나 비상시국 아래 국내 경제상황을 고려한 조치라는 게 중론이지만 또 어정쩡한 '가석방'으로 '절반의 민심'만 선택했다.
이른바 ‘경제 살리기’ 선택이지만 '공정'에 반하는 ‘특혜’ 우려 탓에 모든 제약이 풀리는 대통령 권한인 ‘사면’이 아닌 법무부 장관 권한의 ‘가석방’이란 선택을 했다. 가석방으로 어떤 경제 살리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이 부회장은 오는 13일이면 풀려나지만 남은 형기 동안 법무부의 보호관찰을 받아야 한다. 취업제한 조치도 변함이 없다. 형 집행이 종료되는 내년 7월 이후 5년간 삼성전자 등에 재직할 수도 없다.
청와대는 그동안 이재용 부회장 사면이나 가석방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껴왔다. 뇌물·알선수재·알선수뢰·배임·횡령 등 '5대 중대 부패범죄'의 사면은 배제한다는 기존 원칙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재벌총수에 대한 사면을 임기 중 한 차례도 단행하지 않은 것과 맞닿아 있다. 다만 예전 열렬 지지층만 보고 달려왔던 공정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지나치게 열혈 지지층의 눈치를 본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5년 최태원 SK 회장의 가석방 논란 당시 "재벌 대기업의 총수나 임원들은 그동안 국가 경제에 기여해온 공로나 앞으로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 때문에 이미 법원에서 형량을 정할 때부터 엄청난 고려를 받고 있고, 국민들이 볼 때는 특혜를 받고 있다"고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도 9일 "사회 감정과 수용생활 태도 등 다양한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혀 가석방이 ‘경제 살리기’가 방점이 찍힌 점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문재인 정부의 이 부회장의 가석방에 대해 열렬 지지층을 비롯 비판적인 의견이 적지 않다. 그래도 대다수 국민여론은 긍정적인 반응으로 여겨진다. 정부가 추진 중인 핵심 경제정책에 삼성이 크게 기여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경제인 사면 논의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 살리기'가 국가적 중대 과제가 된 후로 활발해지면서 노무현 정부 이후 본격화된다. 지금까지 당시 정부의 정치적 성향과 크게 상관없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회장등 10명이 넘은 재벌 총수들이 영어의 몸이 됐다가 '경제살리기'라는 명분으로 사면조치 됐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한 국내경제의 침체, 백신 외교에 대한 중요성, 극심해지는 미중 반도체 전쟁등 글로벌 경제 상황을 놓고 볼 때 어쩌면 가석방은 예전에 비해 엄청 부족한 '절반의 경제살리기' 조치 수준이다.
경제 단체뿐 아니라 조계종 등 종교계와 성균관 등 유림과 대한노인회 등을 포함한 많은 단체나 조직이 선처를 호소한 사실을 차지하더라도 그렇다. 과거 재벌 총수의 사면 사례와 견주어 '경제 살리기'에 대한 국민적 여망이 최소한 비슷하거나 크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부족한 조치'라는 판단이다.
물론 적지 않은 국민들은 여전히 대기업 총수 일가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정의당 열린우리당 등도 '국정을 농단한 중대사범에 대한 사면은 절대 안 된다'고 주장한다. 촛불정신이나 공정에도 어긋나는 '특혜'라는 이유도 갖다붙인다. 아니라고 판단치 않지만 현실을 무시한 원론적 의미를 넘어서지 못한다고 생각된다.
공정의 가치든 촛불정신이든 그 주체는 당사자인 국민이다. 국민들의 생각을 도외시하는 공정의 가치와 촛불정신은 가치를 잃는다. 그들만의 '공정' '촛불정신'은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현명한 국민들의 눈높이, 즉 민심이 정답이다.
손발이 묶인 선수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이 부회장의 사면 주장이 공정 가치와는 동떨어진 지나친 요구일수도 있다. 그래도 이 부회장이 민심에 부합하는 공정을 향해 반성,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전제 아래 사면은 정부나 국민에게 공히 '남는 장사'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공정의 가치와 촛불정신의 구현은 어렵지만 멀리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민심이 바라는 게 '공정'이고 '촛불정신'이자 '촛불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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