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이 광주에 남다르듯 '백제'도 호남에 다를수 있어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이번엔 ‘백제발언'이 논란이다. 더불어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2강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백제 쪽이 주체가 돼 한반도를 통합한 적이 없었다"는 이 지사의 발언을 두고 다시 정면으로 맞붙었다. 각각 호남, 영남 출신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김두관 의원까지 가세하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 지사는 지난 23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한반도 5000년 역사에서 백제, 이쪽이 주체가 돼서 한반도 전체를 통합한 때가 한 번도 없었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성공했는데 절반의 성공이었다. 충청하고 손을 잡았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전당대회 당시 이 전 대표와의 면담 자리를 언급하며 "(이 전 대표) 이분이 나가서 (대선에서) 이길 수 있겠다. 이긴다면 이건 역사다, 그렇게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지사는 "지금은 우리(민주당)가 이기는 게 더 중요한 상황이 됐고, 제일 중요한 게 확장력"이라며 "전국에서 골고루 득표할 수 있는 후보, 그것도 좀 많이 받을 수 있는 게 저라는 생각이 일단 들었다"고 말하면서 상호공방으로 번졌다.
이재명·이낙연 후보간 공방이 격화되면서, 결국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가 나섰다. 경선이 양자 구도로 재편되면서 친노·친문 적통 논쟁, 고(故)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진실 공방에다 영호남 지역주의 논란으로 번지는등 갈수록 혼탁해지는 기미를 보이자 칼을 빼든 것이다.
이상민 당 선관위원장은 26일 국회에서 각 후보 캠프 총괄본부장을 불러 연석회의를 열고 "선을 넘은 볼썽사나운 상호공방을 즉각 멈춰달라"고 경고했다. "최근 상호 공방은 당 내외에서 매우 우려스럽다는 지적이 많다"며 "예컨대 지역주의(백제 논란) 관련이나 적통이라든가, 박정희 찬양이라든가, 탄핵이라든가 등은 그 경위가 어떠하든 간에 그 상호 공방 자체만으로도 매우 퇴행적이고 자해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회의에는 이 위원장과 윤관석 사무총장을 비롯해 이재명 캠프 조정식의원, 이낙연 캠프 박광온의원 등 본경선 후보 6인 캠프 대리인들이 참석했다. 민주당은 28일 오전 중앙당사에서 후보 6명과 함께 '공정 경선' 협약식까지 가질 예정이다.
하지만 양 후보 진영의 공방, 특히 '백제발언'으로 소환된 지역주의 논란은 경선이 끝나지 않는 한 계속될 전망이다. 호남이 경선 승리에 매우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총선 이후 지지율 하락세를 면치 못했던 이 전 대표는 호남 민심을 원동력으로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정세균 전 총리의 호남 지지층까지 흡수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까지 이 지역 여론조사에서 1위를 지켜왔던 이 지사도 마찬가지다.
이 전 대표는 각종 여론기관 후보적합도 조사의 다자간 대결에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이 지사 등과 확실한 3강으로 자리를 굳혔고 여당내 여론 조사에서도 이 지사에 버금갈 정도로 따라붙었다. 윤 전총장과의 양자 대결에서 경쟁력도 이 지사를 잎선다는 분석도 나오기 시작했다.
특유의 안정감을 통해 여성, 호남, 30대 지지층을 끌어들인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하지만 경선의 진검 승부는 지금부터라는게 중론이다. 그 중심에 호남민심이 있다. 호남은 이 전대표의 고향이지만 지역 특성상 전략적 투표를 하는 지역이다. 이 지사도 사활을 걸고 있다
자기 출생 지역의 지지를 얻어야 대권이 이루어지는 공식은 동서고금에 큰 차이는 없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트 전 대통령도 2016년 대선에서 승리했던 텃밭에서 패배하면서 재선에 고배를 들고 말았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W. 부시와 맞붙었던 앨 고어 후보는 전체 득표에서 이겼지만 선거인단 집계에서 단 몇 표가 모자라 무릎을 꿇었다. 고어 후보는 자기 고향인 테네시 주에서 패하면서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지난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문 대통령은 자기가 자란 부산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했다. 경남에서는 홍준표 후보가 최고 득표를 했지만 차이가 없었다. 울산도 문 대통령이 최다 득표자였다.
하지만 호남은 영남과 다르다. 전략적 투표 성향이 더해진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매번 전략적 투표를 해왔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호남 출신 김대중 후보를 선택했지만 2002년과 2017년 선거에서 영남 출신 노무현과 문재인 후보를 선택했다.
이번 선거는 선택의 갈림길이다. 호남 출신에 국무총리 경력까지 가진 이낙연을 선택할지, 아니면 영남 출신에 진보 성향이 충만한 이재명을 선택할지 아직까지 호남 민심은 확실히 결정되지 않았다.
호남 민심의 중요한 전략적 잣대는 당선 가능성이다. 문재인 정권의 교체가 아닌 정권 유지를 성공시킬 본선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지가 핵심 중의 핵심이다. 다음이 호남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킬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이 전 대표는 24일 페이스북에 "민주당의 후보께서 호남 출신 후보의 확장성을 문제 삼았다"며 "(이 지사의) ‘영남 역차별’ 발언을 잇는 중대한 실언"이라고 성토했다. 정세균 전 총리도 "도대체 경선판을 어디까지 진흙탕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냐"며 "가볍고 천박하며 부도덕하기까지 한 지역 이기주의 역사인식"이라고 비판했다. 정 전 총리는 전북이다.
사실 이 대목에서 이 지사는 억울할 수 있다.순수하게 내가 더 경쟁력 있다는 애기를 하려했을 것이라고 믿고싶다. 아직은 여론조사상 이 전 대표보다는 다소 우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제’를 소환한 것은 잘못이다. 그러지 않고 '확장력' 대목만 얘기했다면 이 전 대표도 이렇게 대응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역사적인 사실이라고 해도 나가도 너무 나갔다는 느낌이다. 국민의 힘 소속이지만 백제의 수도였던 충남 공주-부여를 지역구로 둔 정진석 의원도 이 지사를 향해 "대선 후보가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지역감정을 조장한 적이 있었던가"라고 비판한 점은 예사롭지 않다.
이 지사의 ‘백제발언’을 호남에서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른 지역과는 다소 다를수 있다. 5.18이 광주에게는 남 다르듯...선의로 한 말이 상대에게 희롱이나 폄훼 등 의도를 갖고 한 말로 자칫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지사가 몰랐다 해도 그렇다.
호남외 다른지역에서는 '별거 아닌걸로 왜들 그러지'라고 넘길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당의 유력 대통령 후보라면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은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문맥과 뉘앙스는 별개의 문제다. 어쨋든 ‘백제발언’은 이번 경선에서 '실언'이자 '불필요한 사족'에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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