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헌의 체인지] 정부가 고 손정민 사건을 신속히 해결해야 하는 이유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고속터미널역 인근에서 반포한강사건진실을찾는사람들 주최로 열린 고 손정민 군 사건의 목격자 찾기 집회가 열린 가운데 시민들이 목격자를 찾는 내용의 전단을 나눠주고 있다./남윤호 기자

국민 관심은 가짜뉴스를, 가짜뉴스는 사회불안을 부른다

[더팩트ㅣ김병헌 기자] 중국 전한(前漢)시대 한영(韓嬰)이 집필한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보면 "백골은 상아와 비슷하며, 물고기 눈알은 구슬과 흡사하다(백골유상 어목사주/白骨類象 魚目似珠)"는 구절이 나온다. 가짜와 진짜가 뒤섞여 있여 구분이 어렵다는 의미다. 아무리 비슷해 보여도 백골이 상아가 될 수 없고 물고기 눈알이 진주는 아니라는 사실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당사자로서는 가짜를 진짜라고 한다면 속이 뒤집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요즘 세태를 보면 정확한 정보 전달에 시간이 걸리고 어려웠던 옛날이 오히려 울화가 덜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보고 듣는 새로운 정보량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 쏟아지는 요즘에는 그 정보로 인해 울화가 치미는 일이 더하기 때문이다.

정보의 옥석가리기가 일반인들의 한계를 넘어선 것 아니냐는 자조도 나온다. 가짜(뉴스)가 진실을 가리는 일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의도를 담아 만든 가짜가 텍스트와 동영상으로 빠르게 공유되는 시대, 인공지능(AI)과 딥러닝, 로봇 저널리즘과 같은 첨단기술이 악용되면서 가짜는 무서울 정도로 교묘해지고 있다.

2019년 3월 10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볼레 국제공항을 이륙하여 케냐 나이로비 조모 케냐타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에티오피아항공 여객기가 이륙 6분 만에 추락했다. 타고있던 157명이 모두 사망한 사고다. 직후 유튜브에는 ‘추락 영상’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도로를 달리던 차가 찍은 추락하는 여객기, 기내에서 충격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 등등은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알고보니 영상들은 ‘가짜’였다.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표정과 말투를 본뜬 가짜영상이 등장했었고, 중국에서 사람과 똑같은 AI 앵커가 나오기도 했다. ‘딥페이크’,이른바 동영상 분야의 가짜 기술은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보다 더 빠르다. 올해 초 위키피디아 창립자 지미 웨일스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짜뉴스의 폐해를 지적하고 ‘가짜와의 전쟁’을 언급했다.

한강공원에서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의대생 고(故) 손정민씨의 친구 A씨 측이 최근 떠도는 의혹들을 두고 재반박에 나섰다. 사진은 고(故) 손정민 씨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고인을 애도하는 모습. /뉴시스

고(故) 손정민(22) 씨의 사망사건도 예외는 아니다. 경찰의 수사가 사건 발생 한 달이 넘도록 지지부진하면서 추측성 사건 관련 영상들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경찰의 대응이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못 하면서 이들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실제로 일부 유튜버는 가짜뉴스를 제작해 돈벌이를 했다는 보도도 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정민 씨 사건이 발생한 이래 약 한 달간 744만~3800만 원대(추정)의 수익을 올렸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경찰은 "가짜뉴스들은 이미 공개된 CCTV 영상 등을 재가공해서 추가 의혹을 재생산하는 형태"라며" 심한 경우에는 경찰이 내용을 이미 확인한 CCTV를 공개되지 않은 것으로 둔갑시키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전경찰청장이 사건 수사팀을 비판하고 있다는 내용의 가짜 영상도 온라인상으로 퍼져 화제가 됐다. 데이터의 오류는 바로잡을 수 있지만 세간의 지나친 관심에 편승,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낸 가짜뉴스는 더 큰 문제를 만들 수 있다

손정민 씨의 사건도 가짜뉴스의 범람으로 옥석구분이 힘든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는 경찰의 초동수사 미숙이 화를 불렀다.

직장인 A(32)씨는 "유튜버가 CCTV 영상을 확대해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하는 걸 보면 진짜인 것 같은 착각이 들어 계속 보게 된다"며 "경찰과 기성언론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때문에 유튜브를 찾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경찰이 사실을 은폐하려 한다거나, 관련 정보를 최초로 공개한다면 현혹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고 손정민 씨의 고별 및 발인 모습. /이선화 기자

손정민 씨 죽음에 의혹을 가진 시민들이 31일 경찰과 SBS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을 강하게 비판한 일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반포한강공원 진실을 찾는 사람들(반진사)’ 회원들은 이날 오후 손 씨 추모 현장에 모여 방송을 인정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정 사건에 관심있는 이들은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뉴스를 보면 가짜뉴스라도 자기 믿음을 확인시켜 주는 확증편향에 빠지기 쉬워진다. ‘그알’방송은 반대의 경우로 여겨진다. 언론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팩트체크’라는 사실 확인보다 뉴스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의혹 제기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언론도 눈치를 보는 지경에 이른 듯하다.

냉정히 말하면 환경미화원이 습득해 지난달 30일 경찰에 넘긴 정민 씨의 친구 A 씨 휴대전화가 뒤늦게 발견되어 관심을 끌고 있지만 수사 진전에 도움은 크게 주지 못할 것으로 여겨진다.

아직 휴대전화에 대한 지문, 혈흔, 유전자 감식 등의 결과는 나오지 않았으나 지금까지 밝혀진 습득과정이나 휴대전화의 작동여부, 전화의 동선 등으로 미루어 사건의 스모킹 건이 될 확률은 극히 낮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가짜뉴스는 진짜뉴스보다 훨씬 더 빨리, 멀리, 널리 전파된다고 한다. 가짜뉴스가 진짜뉴스보다 더 새로운 것으로 보이는 탓이다. 기우일지는 모르나 정민 씨 사건은 수사와는 별개로 가짜뉴스 때문에 정치적 이슈가 아닌 데도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다.

정부의 보다 적극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찰에만 사건을 맡기지 말고 정부차원에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수사와 가짜뉴스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단지 한 사람의 사망사건으로 치부한다면 그 하나가 정부와 공권력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모든 부분에서 전방위적으로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가 필요해 보인다. 지금처럼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우를 또 다시 범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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