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재의 왜들 그러시죠?] 5월 광주의 산화(散華) 의미를 모르는 자, 오지 마라

옛 전남도청에서 특전사 진압군에 맞서 최후 항전을 벌인 시민군들의 비장한 죽음을 주제로 한 뮤지컬 광주 출연진들이 15일 오후 공연을 끝내고 커튼콜에 나선 모습./광주=박호재 기자

 5‧18 41주기 앞두고 또 정치인 붐비는 광주, 형식적 행사가 무슨 의미인가

[더팩트ㅣ광주=박호재 기자] 다시 5월이다. 봄과 여름 사이 5월은 한 해 중 가장 쾌적한 절기이다. 또한 어버이날, 어린이날, 스승의 날과 같은 따뜻한 기념일들이 몰려있는 은혜로운 절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광주의 5월은 이 찬란한 계절을 온전히 만끽할 수 없는 수심의 절기가 됐다. 5‧18이라는 참혹한 상흔 때문이다. 41년의 세월이 흘러 상처는 아물어가고 있을지 모르지만 새살은 채워지지 않는다. 여전히 의문에 쌓이거나 정리되지 않은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출범 후 1년 동안의 조사활동 결과 보고를 했다. 광주에 투입된 공수여단이 기관총과 소총으로 시민을 향해 조준 사격했다는 진술, 13차례 이상의 민간인 차량 피격, 택시 피격으로 숨진 신혼부부 사건 등 계엄군에 의한 비무장 민간인 학살이 실제로 자행됐음이 드러났다. 북한 특수부대 진입설도 전혀 근거가 없는 사실로 밝혀졌다.

하지만 광주의 5월을 향한 일부 극우세력들의 불신은 끊이지가 않는다. 광주인들 입장에서 이 불신은 상처보다 더 아프다. 진정성을 의심받는 아픔이기에 가슴을 찢어놓는 통증으로 다가선다. 그리고 이 불신은 쿠데타 세력의 선동 선전에서 시작돼 80년 5월 이후 전두환 정권이 지속적으로 주도한 악의적 왜곡에서 더욱 심화된 게 사실이다.

5‧18 직후 외무부가 재외 공관을 통해 국제사회에 신군부의 권력 찬탈 정당성을 선전한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진실 왜곡이 정부기관 주도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가공할 일이 아닐 수 없다. 5‧18 당시 폭도로 변한 시민들을 불가피하게 무력 진압했다는 신군부의 선전 선동은 언론의 야합으로 확장되고, 이후 전두환 쿠데타 정권의 진실 가리기 역사 왜곡으로 이어지면서 5월 광주를 고립시키는 장벽으로 뿌리내린 셈이다.

무장시민군을 이끌고 옛 전남도청에서 최후 항전을 벌이다 산화한 윤상원 열사의 삶을 기록한 ‘윤상원 평전’을 최근 펴낸 김상집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평범한 한 인간의 마음으로 되돌아보라. 어떻게 죽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결사항전이라는 초인적 결단을 내릴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생사의 결단이 대한민국 민주화 여정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되새겨봐야 하지 않는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일부 극우세력들의 역사왜곡과 발포 명령자조차 아직 밝혀내지 못하는 현실을, 그래서 광주의 5월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김상집은 그렇게 추궁하고 있다.

최근 개막된 ‘뮤지컬 광주’의 대사 한 대목이 문득 떠오른다. 끝내 총을 버리지 않고 결사항전을 하겠다며 도청으로 들어가는 시민군을 향해 그를 사랑하는 여인이 이렇게 간절하게 되묻는다. '조금 비겁해지면 안 되나요? 조금 치사해지면 안 되나요?' 그들은 사랑하는 이들의 간절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왜 죽음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 비장한 길을 멈추지 못했을까. 왜 피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우리가 광주의 5월을 역사적 시간으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죽은 자든 산 자든, 그해 5월 수많은 광주 시민이 그렇듯 쿠데타 세력에 맞서 10일간의 생사 항쟁을 벌이고 있었음에도 정권찬탈세력의 폭력과 그들이 펼쳐 보인 권력의 달콤한 과육에 무릎을 꿇은 정치인들이 광주를 버렸으며, 언론이 광주를 버렸으며, 지식인들이 광주를 버렸으며, 미국이 또한 광주를 버렸다. 광주는 그렇게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었다.

결국 쿠데타 세력은 그렇게 아무도 지켜줄 이 없이 섬처럼 고립된 광주를 짓밟고 넘어서서 정권을 찬탈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광주의 5월을 넘었을까. 고령의 육신을 끌고 재판정에 불려 다니는 전두환의 초라한 지금의 모습을 보라. 그리고 그를 추종하며 권력의 단 꿀을 나눠먹은 신군부 일당들의 동굴 속 박쥐와 같은 세월을 보라.

오히려 그들은 치욕의 섬에 갇혀 남은 생을 마감할 것이며, 5월 광주는 이제 그 어떤 폭력도 넘어서지 못할 민주주의의 철벽이 됐다.

5‧18 41주기…수많은 정치인들이 광주로 떼를 지어 몰려 온다. 방명록에 글을 남기고, 헌화하고, 분향하고, 또 누구는 비석을 닦는다. 다 좋다. 그러나 불의와 폭력에 결코 굴하지 않겠다며 도청을 향해, 죽음을 향해 걸어 들어간 그 산화(散華)의 의미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정신이 그들 정치의 심장이 되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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