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감독 10명 중 4명이 '현대 유니콘스' 출신인 이유 [김대호의 야구생각]


염경엽 이숭용 설종진 박진만 등 4명 현대 출신
팀 해체 19년 지났지만 전통 이어져
'합리적 리더십' 현대 출신 지도자 특징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단체 사진. 2007시즌을 앞두고 선수단이 한 자리에 모였다. 현대는 2007시즌 뒤 히체됐다. /뉴시스

[더팩트 | 김대호 전문기자] 2007시즌을 끝으로 ‘사라진 왕조’ 현대 유니콘스가 새삼 화제에 오르고 있다. 현대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던 선수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는 내용이다. ‘마지막 현대맨’으로 남아있던 황재균이 지난해 12월19일 은퇴를 선언하면서 맥이 완전히 끊기는 듯 싶었다. 2025시즌에만 오재일(10월 은퇴) 정훈(12월 은퇴)에 이어 황재균까지 현대 명맥을 이어오던 3명이 줄줄이 유니폼을 벗었다.

다행히 지난해 11월 한화 이글스에서 방출된 투수 장시환이 12월22일 극적으로 LG 트윈스와 계약하면서 ‘현대의 유산’을 간직하게 됐다. 2007년 현대에 입단한 장시환은 1년 만에 팀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다. 현대는 1996년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한 뒤 2007년까지 12시즌 동안 한국시리즈 4회 우승의 불꽃 같은 역사를 뒤로하고 사라졌다. 2026년 새해 첫날엔 현대 전성기를 이끈 투수 전준호의 안타까운 부음까지 전해져 가슴을 시리게 했다.

박진만 삼성 라이온즈 감독은 현대 유니콘스의 1호 프랜차이스 스타다. 인천고를 졸업하고 현대에 입단한 박 감독은 2005년 삼성으로 이적할 때까지 붙박이 유격수로 활약했다. 삼성 감독으로 부임해 2년 연속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다.

비록 현대 출신 현역 선수는 모습을 감췄지만 아직도 그라운드엔 그 위용이 그대로 남아있다. 프로야구 10개 구단 감독 가운데 무려 4명이 현대 출신이다. 압도적이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팀 LG 염경엽 감독을 비롯해 삼성 라이온즈 박진만 감독, SSG 랜더스 이숭용 감독, 키움 히어로즈 설종진 감독이 현대와 청춘을 함께 보냈다. 현대가 공중 분해된 지 19년이 지났는데도 전체 감독의 40%를 차지하고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염경엽 LG 감독은 1991년 태평양에 입단해 1996년부터 2001년까지 현대 유니폼을 입었다. 그 뒤 프런트로 전환해 운영팀 과장을 하다가 2006년 수비 코치까지 11년 동안 현대에 몸담았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1996년 현대 창단 멤버로 합류해 2005년 삼성으로 이적할 때까지 9년 동안 붙박이 유격수로 활약했다. 박재홍과 함께 현대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이숭용 SSG 감독은 1994년 데뷔한 뒤 현대가 해체한 2007년까지 한 팀에서만 뛰었다. 2011년 넥센 히어로즈에서 은퇴했다. 설종진 키움 신임 감독은 1996년 현대 창단과 함께 입단했지만 부상으로 2001년 은퇴한 뒤 매니저 등 현대에서 궂은일을 도맡은 산 증인이다. 설 감독은 현대의 해체 과정을 함께한 ‘순장조’다.

이숭용 SSG 랜더스 감독이 2007년 현대 유니콘스 해단식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현대 출신들이 지도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현대는 1996년 태평양을 인수한 뒤 엄청난 물량 공세를 퍼부었다. 재계 라이벌 삼성과의 경쟁 의식과 스포츠계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결합해 과감한 투자를 망설이지 않았다. 당시엔 FA 제도가 없던 시절(1999년부터 시행)이라 현금 트레이드로 우수 선수를 사들였다. 이 때문에 프로야구 질서를 교란시킨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전력 강화를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항변한다.

현대 프런트 수뇌부엔 철칙이 있었다. 선수 수급과 트레이드 등에선 권한을 행사했지만 현장엔 절대 간섭을 하지 않았다. 김재박 현대 초대 감독이 안정적으로 팀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프런트의 든든한 보호를 받았기에 가능했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삼성 LG 등 다른 재벌 팀들이 프런트의 지나친 입김으로 팀 전력을 한데 모으지 못한 것과 비교가 됐다.

염경엽 감독은 "현대에서 선수와 프런트로 생활하면서 프로스포츠의 운영 방식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염 감독을 비롯한 현대 출신 감독들의 특징이 있다. 의사 결정이 합리적이고 프런트와 마찰이 없다는 점이다. 선수 시절부터 몸으로 터득한 습관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현대 출신 지도자는 지금도 여러 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현대 유니콘스는 없어진 지 오래됐지만 그 유산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다.

daeho902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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