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박순규 기자]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 땅은/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한국어 교가를 부르는 전교생 160명의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여름 고시엔(甲子園)’으로 불리는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개교 77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하며 기적의 역사를 썼다.
재일교포들이 민족 교육을 위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1947년 설립한 교토국제고는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고시엔구장에서 열린 간토다이이치고와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결승전에서 연장 10회 접전 끝에 2-1로 승리했다.
교토국제고는 정규이닝인 9회까지 0-0의 팽팽한 승부를 이어간 뒤 연장 10회 승부치기에서 2점을 선취하며 우승했다. 연장 10회 초 무사 1, 2루에 주자를 두고 공격하는 승부치기에서 교토국제고는 안타와 볼넷, 외야 뜬공 등을 묶어 2점을 냈다. 이어 10회 말 간토다이이치고의 공격에서 1점만 내주면서 감격의 한국어 교가를 다시 한번 불렀다.
이날 교토국제고는 선발 나카자키 루이가 9이닝 동안 104구를 던지며 4피안타 3사사구 5탈삼진 무실점으로 상대 타선을 잘 틀어막고 나카자키와 원투펀치를 이룬 니시무라 이키가 10회 말 무사 만루를 잘 막아내며 우승기를 가져왔다.
이날 경기에서도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승리 직후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大和·야마토)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라는 한국어 교가를 부르는 모습이 일본 공영방송 NHK를 통해 일본 전국에 생중계됐다. 고시엔에서는 출전학교 교가가 연주되며 NHK는 모든 경기를 방송한다.
고시엔은 일본 고교 야구선수들이 단 한 번이라도 본선에 진출하기를 희망하는 ‘꿈의 무대’다. 본선에 오른 선수들이 대회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갈 때는 기념으로 간직하기 위해 야구장의 흙을 담아 가져갈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최고 권위의 대회로 각광을 받고 있다.
고시엔 대회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4년 갑자년에 처음 개장해 갑자(甲子)를 일본식으로 읽은 ‘고시(甲子)’와 장소를 뜻하는 ‘원(園, 일본어 음독 ‘엔’)’이 합쳐져 고시엔이라는 이름이 됐다. 고시엔 구장에서 열리는 고교야구대회는 봄과 여름에 한 번씩 있는데, 직전 해의 추계대회 성적과 ‘21세기 전형’ 등 특별 전형으로 대진이 짜이는 봄 대회와 달리 여름 대회는 일본 국내 47개 도도부현에서 토너먼트로 선출된 단 한 팀씩만 출전할 수 있다. 그리고 각 현에서 단 한 팀에만 출전권이 쥐어지는 여름 대회가, ‘고시엔’이다.
올해는 일본 전역 3715개 학교(3441개 팀)가 참가해 49개 학교가 본선에 올랐다. 교토국제고는 앞서 2021년 처음 여름 고시엔 본선에 진출해 4강에 올랐으나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2022년 여름 고시엔에도 본선에 나갔으나 1차전에서 석패했고, 지난해는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1947년 교토조선중학으로 개교한 교토국제고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산하 교토한국학원에서 운영하고 있다. 일본에 있는 학교임에도 "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도(야마토·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이라는 한국어 가사가 있는 교가를 고시엔 무대에서 부르며 화제가 됐다.
1999년 줄어드는 학생 수를 늘리기 위해 야구부를 창단한 교토국제고는 2021년 봄 고시엔에서 처음으로 전국무대에 데뷔한 이후 같은 해 여름 고시엔에서는 무려 4강에 모르는 기적을 만들었다. 이번 여름 고시엔에서는 8강에서 지벤학원을 4-0으로 꺾었고, 준결승에서는 올 봄 고시엔에서 자신들에게 패배를 안겼던 아오모리 야마다 고교를 3-2로 누르고 창단 후 처음으로 결승전에 진출했다.
교토국제고는 현재 중학생 22명, 고등학생 138명이 재학 중인 전교생 160명의 작은 학교지만 야구부원만 60명일 정도로 야구에 대한 관심이 높고, 선수들은 모두 수업에 참가해 한국역사와 무용, 태권도 등을 배우고 있다.
교토국제고의 백승환 교장은 23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한국어 교가를 고시엔구장에서 듣는 모든 재일교포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감동하고 있다. 결승전에는 무려 2700여 명이 현장 응원을 희망해 예산 적자가 우려될 정도다"며 일본 열도를 뒤흔든 한국계 학교의 고시엔 돌풍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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