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프로야구 정규시즌 MVP 선정과 관련해 논쟁거리가 두 개 있다. 하나는 투수가 타자와 동등한 자격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팀 성적을 고려해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투수가 MVP로 뽑히는 일이 드물다. 야수들이 매 경기에 나서는데 비해 투수는 불펜이 아니라면 며칠에 한 번씩 등판한다. 또 투수들에게는 그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사이 영 상이 있다. 그래서 사이 영 상과 MVP를 휩쓴 투수가 나오면 정말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고 볼 수 있다.
KBO리그의 경우에도 전체 36회의 MVP 시상에서 투수가 선정된 것은 14번(1985년 투타에 걸쳐 활약한 김성한을 야수로 볼 경우)뿐이다. 그러나 이는 홈런을 가장 중요한 지표로 여기는 일반적인 관념, 그리고 홈런과 타점, 장타율의 연관 관계 때문에 다관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원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MVP는 개인에 대한 시상이지만 실제로는 팀 성적이 결코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성적이 비슷하다면 팀 성적을 고려한다는 것인데 이는 애매한 면이 있다. '비슷하다'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야가 달라 비교하기 힘든 투수와 타자가 유력한 후보라면 더욱 그렇다. 실제로는 '가산점' 이상으로 작용한다. 일본의 경우는 한국보다 더 심해서 센트럴리그는 1950년부터 2016년까지 67시즌 동안 비 우승팀에서 단 3명의 MVP만 나왔다. 사실 꼴찌 팀의 선수가 개인 타이틀을 휩쓸었을 경우 그에게 MVP를 주기도 쉽지 않다.
6일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 시상식'에서 KIA 투수 양현종이 정규시즌 MVP의 영예를 안았다. 이날 공개된 프로야구 취재기자단 투표 결과에서 양현종은 856점 만점에 656점을 얻었다. 투표는 지난달 6~9일에 실시됐기 때문에 양현종이 맹활약한 한국시리즈는 득표와 관계가 없었다.
눈길을 끈 것은 SK 내야수 최정과의 차이다. 홈런과 장타율 1위인 최정은 다승 공동 1위인 양현종과 함께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그런데 투표에서 294점을 얻는데 그쳤다. 득표수가 아니라 1~5위표에 차등을 둔 점수제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양현종의 격차가 너무 컸다.
양현종이 압도적인 MVP가 될 수 있었던 데는 1995년 이상훈 이후 국내선수로는 처음으로 선발 20승을 기록한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최정이 세운 2년 연속 40홈런 이상은 더 희귀한 기록이다. 올시즌 이전까지 한 시즌 선발 20승 이상을 거둔 투수는 일곱 명(여덟 번)이 있었지만 2년 연속 40홈런은 이승엽, 심정수, 박병호, 에릭 테임즈 넷뿐이었다. 최정의 46개는 역대 3루수 최다 홈런이기도 하다.
역대 선발 20승 투수 가운데 MVP에 오른 선수는 2007년 다니엘 리오스와 지난해 더스틴 니퍼트(이상 두산)뿐이다. 이들은 20승만으로 MVP가 되지는 않았다. 둘 모두 다승, 평균자책점, 승률 타이틀을 차지한 3관왕이었다. 올해 투수 부문 다관왕은 양현종과 함께 다승 1위에 오르면서 승률 타이틀까지 차지한 팀 동료 헥터 노에시뿐이다.
2002년 이승엽(삼성) 이후 타자쪽의 MVP는 모두 3관왕 이상이었다. 최정이 타점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면 올해 MVP의 주인공은 바뀌었을 수도 있다. 타고투저의 시대에 타자에 대한 기대 수준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또 하나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역시 팀 성적이다. 정규시즌 1위 KIA의 에이스에게 5위 SK의 간판타자보다 더 무게가 실린 것이다.
한국에도 2014년 투수에게 시상하는 최동원상이 제정됐다. 그러나 최동원상은 전통이나 시상 주최와 방법에서 사이 영 상과 차이가 있다. 메이저리그와 달리 투수들만의 상이 있으니 MVP에서는 타자를 우선해야 하는 환경은 아니다. 팀 성적 프리미엄은 어떨까? 2010년 이대호 이후 정규시즌 1위팀의 선수가 MVP가 된 것은 지난해 니퍼트와 올해 양현종뿐이다. 즉, 1위를 했다고 그 팀의 선수를 뽑지는 않고 있다는 뜻이다. 올해 KIA의 페넌트레이스 우승은 여러 면에서 극적이었고 그 때문에 투표인단의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수치로 정해지는 부문별 개인 타이틀과 달리 어떤 것이 '올시즌 최고의 활약'인지 어떤 선수가 '최고의 선수'인지 정의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따라서 각자의 생각에 따라 투표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소수 의견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 점은 MVP 투표나 대통령 선거나 다를 바 없다. 숫자가 아닌 느낌으로 결정한다는 것이야말로 MVP 선정의 묘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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