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의 역사] 스플리터는 포크볼의 다른 이름인가(상)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스플릿핑거 패스트볼

1986년 10월13일 월요일 저녁.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이 열릴 예정인 뉴욕 셰이스타디움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클럽하우스에서 대기하고 있던 홈팀 뉴욕 메츠의 선수들은 비가 멎어 경기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메츠는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상대로 4차전까지 2승2패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메츠가 이날 내리는 비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사정이 있었다. 메츠의 두 차례 패배 때 상대 투수는 휴스턴의 에이스 마이크 스콧이었다. 휴스턴은 1차전에서 에이스 드와이트 구든을 선발로 내고도 스콧에게 0-1 완봉패를 당했다. 2차전에서 상대 선발 놀런 라이언을 두들겨 5-1로 이겼고 3차전도 접전 끝에 6-5로 역전승, 시리즈를 앞서갔다. 그런데 4차전에서 3일을 쉬고 다시 나온 스콧은 메츠 타선을 3안타 1실점으로 묶으며 완투승을 따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스콧의 놀라운 피칭을 믿기 어려웠던 메츠는 4차전이 끝난 뒤 경기에 사용된 공들을 모아 부정투구의 증거를 찾으려 했다. 스콧이 스커프볼을 던졌다고 생각한 것이다. 메츠는 흠집이 난 공들을 심판에게 증거로 전달했고 내셔널리그에도 조사를 요청했다. 심판들은 공의 흠집이 펜스 등에 부딪혀 생긴 것이며 스콧의 부정투구가 없었음을 보증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내셔널리그 사무국은 심판들의 증언을 근거로 스콧은 규칙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메츠로서는 스콧과의 3번째 만남을 피해야만 했다. 그런데 비 때문에 5차전이 하루 미뤄진다면 7차전까지 갈 경우 또 스콧이 나오게 되는 상황이었다. 메츠의 희망과는 달리 결국 이날 경기는 비로 순연됐다. 그러나 메츠는 5,6차전을 모두 연장까지 간 끝에 내리 이겨 스콧과 다시 만나지 않을 수 있었고 챔피언에 오를 수 있었다.

메츠가 이겼지만 시리즈 MVP의 영예는 스콧에게 돌아갔다. 그는 2경기에 등판해 2승을 거두면서 18이닝 동안 8안타와 1점만을 내줬다. 볼넷은 단 한 개였고 삼진은 19개를 빼앗았다. 메츠 타선을 무력하게 만든 스콧의 힘, 그것은 스플릿핑거 패스트볼이었다.

스플릿핑거 패스트볼은 '1980년대의 공'이다. 흔히 줄여서 스플리터라고 부르는데 20세기 초부터 있었던 포크볼의 변형 또는 개량이다.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을 넓게 벌려 그 사이에 공을 끼우고 던지는데 패스트볼처럼 날아가다가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갑자기 날카롭게 떨어진다. 팔의 스윙 스피드나 동작이 패스트볼과 똑같으면서도 구속을 줄일 수 있다. 포크볼이 공을 두 손가락 사이에 깊게 끼우는데 비해 스플리터는 공이 좀 더 손바닥 안쪽으로 들어간다. 일반적으로 포크볼의 그립이 더 넓고 깊기 때문에 더 큰 각도로 떨어지며 구속은 스플리터보다 느리다.

스플리터를 흔히 섹스와 같다고 한다. 좋을 때는 정말 기막히지만 안 좋을 때라도 그럭저럭 괜찮다는 것이다. 제대로 던지면 빠르게 가라앉으면서 스트라이크존 밖으로 벗어난다. 타자는 헛스윙을 하거나 평범한 땅볼을 치게 된다. 생각만큼 가라앉지 않더라도 구속이 줄기 때문에 최소한 쓸만한 체인지업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가장 완벽하게 구사됐을 때는 스핏볼과 거의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데 이 때문에 종종 부정투구로 의심받는 경우가 있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던가. 스플리터가 포크볼에 그럴듯한 이름을 붙인데 불과하다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그러나 포크볼이 한동안 투수들에게 외면받았던 것에 비해 스플리터는 이 공을 익힌 적지 않은 투수들이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투구라고 할 수 있다.

스플리터를 대중화한 인물은 로저 크레이그다. 투수 출신인 그는 나이 어린 투수들이 아직 단련되지 않은 팔과 어깨를 다치는 일 없이 던질 수 있는 변화구를 개발하려고 했다. 그러자면 손목 스냅을 이용해 공에 회전을 걸지 않아야 했다. 커브를 비롯한 대부분의 구종은 원하는 공의 회전을 얻기 위해 팔과 손목을 부자연스럽게 돌리는 동작이 필요하다. 크레이그는 포크볼을 던지는 투수의 그립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공을 찾았으며 몇 년간의 실험 끝에 스플리터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걸쳐 통산 300세이브를 올리며 활약한 구원투수 브루스 수터는 자신이 시카고 컵스의 투수 코치 프레드 마틴에게 스플리터를 배워 크레이그에게 던지는 방법을 알려줬다고 주장했다. 수터는 마이너리그 시절 팔꿈치를 다쳐 커브를 던지는데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1973년 스프링 트레이닝 때 마틴이 수터의 비정상적으로 긴 손가락을 보고 커브 대신 포크볼을 던질 것을 권했다는 것이다. 손이 크고 손목이 유연한 수터는 포크볼을 세게 던질 수 있었고 공의 빠른 회전 때문에 타자들이 패스트볼과 혼동하게 만들었다. 또 하나 좋은 것은 왼손 타자든 오른손 타자든 상관없이 통한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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