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의 역사] 최고의 피칭은 손이 아니라 머리에서 나온다(하)

오렐 허샤이저./ 게티이미지코리아 제공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좋은 타자는 참을 줄 안다. 끈질기게 투수의 실투를 기다린다. 허샤이저 같은 완벽주의자도 물론 실수를 한다. 투수라면 누구나 그렇지만 허샤이저 역시 타자가 칠 수 있는 공을 던지는 것이 실투였다. 다만 그는 '타자가 칠 수 있는 공'에 대한 기준이 좀 더 엄격했다.

그는 낙차가 큰 좋은 커브를 갖고 있었다. 원 볼, 투 스트라이크에서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커브로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해 삼진을 잡았다. 타자가 치기 어려운 커브였지만 그에게는 실투였다. 왜? 그에게는 좀 더 치기 어려운 곳을 공략할 수 있는 공 3개의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치기 어려운 곳에 던지면서 볼카운트가 불리해지지 않으려면 제구력이 중요하다. 컨트롤이 뛰어난 투수들은 스트라이크존에도 영향을 미친다. 허샤이저는 "스트라이크존의 한 부분에 계속해서 정확히 던질 수 있다면 그 부분은 조금씩 커진다. 왜냐하면 그곳에 정확히 던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에 심판이 의심을 하면서도 잡아 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크존의 모든 부분에 그럴 수 있다면 스트라이크존 자체가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꾸준히 탈삼진 랭킹 상위에 올랐지만 스스로를 탈삼진 투수로 여기지 않았다.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69년 스티브 칼턴은 한 경기 19탈삼진의 내셔널리그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그 경기에서 패전 투수가 됐다. 152개의 공을 던졌는데 2점 홈런을 두 방 맞았다. 드와이트 구든은 10개 이상의 삼진을 잡은 경기의 수가 1984년 15개에서 이듬해 11개, 그 다음 해 5개로 줄더니 1988년에는 1개가 됐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힘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현명해진 것이다.

주자가 1루에 있는 상황은 모든 투수들에게 부담스럽다. 허샤이저와 줄곧 호흡을 맞췄던 포수 마이크 시오시아에 따르면 무사 1루에서 상대팀 감독이 번트를 선호하는 유형일 때 허샤이저의 대응 방식은 좀 독특했다고 한다. 이런 경우라면 대부분 번트를 대기 힘들도록 높은 패스트볼을 던진다. 그런데 허샤이저는 브레이킹볼을 던지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번트를 대는 타자도 역시 타자다. 따라서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은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다"라는 간단한 논리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스트라이크존에 넣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논리다.

때로는 발빠른 주자가 1루에 있을 때 가장 좋은 대처 방법은 주자에 대해 잊어버리는 것일 수도 있다. 주자에 신경을 쓰다가 집중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허샤이저는 주자가 도루할 위험성 때문에 볼 배합을 바꾸지 않았다. 대신 투구 동작을 줄이고 릴리스를 빨리 해 포수가 송구할 시간을 벌어줬다. 주자의 도루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투수로서 타자와의 승부가 우선이라는 생각이었다.

허샤이저는 이닝 이터였다. 완투를 했을 때의 투구수가 110~115개로 적었기 때문에 많은 이닝을 소화할 수 있었다. 투구수가 적었던 것은 초구 승부로 타자를 범타로 처리하는 기술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허샤이저는 "두 가지 이론이 있다. 하나는 타자가 어떤 공이 온다고 생각하도록 해놓고 다른 공을 던지는 것이다. 또 하나는 타자가 어떤 공을 기다리고 있으면 그 공을 던지는 것이다. 단, 타자가 원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칠 수 없는 곳에 던져야 한다.나의 경우는 후자다."라고 말했다.

즉, 타자가 초구를 좋아하고 높은 패스트볼에 강하다면 초구에 패스트볼을 약간 더 높은 곳에 던진다는 것이다. 투수와 타자의 대결은 치열한 심리전이다. 허샤이저의 생각은 이렇다. "타자가 초구에 들어오는 패스트볼을 잘 치는데 나도 그 사실을 알고 그도 내가 안다는 것을 안다. 그는 내가 초구에 커브를 던질 것이라고 생각할텐데 왜냐하면 그가 패스트볼을 잘 친다는 것을 내가 안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다른 공을 생각하고 있을 때 그가 좋아하는 공을 약간 다른 곳에 던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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