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의 역사] 김영덕과 슬라이더

[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김영덕과 슬라이더

한국 야구에 슬라이더를 처음 선보인 인물은 김영덕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1963년 일본프로야구 난카이 호크스에서 퇴단한 뒤 한국 실업야구에 스카우트됐다.

풀시즌제가 실시된 1964년 평균자책점 0.32를 기록하며 최우수 투수로 선정된 것을 비롯해 1965년 최다승 투수, 1967년 방어율 최우수투수, 1968년 최다승투수에 오르는 등 발군의 활약을 펼쳤다. 첫해 기록한 한 시즌 평균자책점 0.32는 실업야구 사상 최고 기록이다. 1964년에는 퍼펙트게임, 1968년에는 노히트노런 기록을 세우며 명성을 날렸다. 일본 프로야구 통산 기록이 7승에 그쳤지만 당시 일본 야구와의 수준 차가 컸던 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다양한 변화구와 뛰어난 제구력으로 타자들을 상대했는데 특히 슬라이더의 위력이 대단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슬라이더를 던진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역시 재일동포 출신으로 자신보다 먼저 한국 무대에서 활동한 신용균이 처음 던졌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왜 그가 최초의 슬라이더 투수로 알려졌을까? 당시 실업야구에서 활약한 재일동포 투수였던 김성근 전 한화 감독은 "그의 강한 슬라이더는 타자들이 도저히 못 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라고 말했다. 슬라이더라는 공을 의식하게 할 만큼의 위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본격 슬라이더를 최초로 던진 투수로 봐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신용균 이전에도 직구를 던지다가 나온 '자연 슬라이더'는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의식적으로 슬라이더성 구질의 공을 던진 투수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실업리그 경기에서 기업은행의 에이스였던 최관수가 '강속구와 슬라이더 컨트롤이 기막히게 좋았다'는 표현도 기록에 남아 있다.

일본에서 슬라이더를 처음 던진 한국계 투수 후지모토 히데오(이팔룡)는 그 공을 스스로 개발했다. 필요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1960년대의 한국 야구는 새로운 구종이 절실한 상황은 아니었다. 강속구와 커브에 제구력이 좋으면 충분했던 것이다. 왼손 투수였던 김성근 감독은 직구와 커브, 슈트(투심 패스트볼)를 던졌다. 그는 "그때는 타자들이 왼손 투수의 커브를 쉽게 공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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