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한국 야구의 실력은 정말 과대평가되었던 걸까?
한국이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첫 두 경기를 모두 패하는 역대 최악의 성적으로 4년 전의 '타이중 참사'보다 더 심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회 준비와 선수들의 자세에 대한 비판은 물론 한국 야구 수준에 대한 재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대회 이전부터 대표팀의 전력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메이저리그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 포함된 이스라엘과 현역 메이저리거가 다수 포함된 네덜란드에 대한 경계도 있었다. 한국이 최상의 전력으로 나선 것도 아니고 도저히 질 수 없는 팀들에 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충격적인 결과로 여겨지는 것은 그만큼 한국 야구에 대한 기대와 자부심이 컸던 까닭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화두로 떠오른 것은 스트라이크 존이다. 미국과 일본에 비해 지나치게 좁은 스트라이크 존이 한국 타자들이 부진했던 원인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두가지로 풀이된다. 하나는 낯선 스트라이크 존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것, 또 하나는 좁은 스트라이크 존이 최근 KBO리그의 타고투저를 가져왔으며 따라서 기록으로 나타난 한국 타자들의 타격 능력에는 '거품'이 있다는 것이다. 국내 리그의 타고투저 현상이 스트라이크 존 때문만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또 다른 분석도 있다. 최근 좋은 투수들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타자의 타격 기술은 투수의 피칭 기술에 대응해 발전한다. 따라서 좋은 투수가 없으면 타자의 타격 기술 발전도 정체된다. 좁은 스트라이크 존이라는 유리한 환경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스트라이크 존이 좁고 타자들의 타격이 뛰어나면 생존을 위해 투수들의 피칭 기술 발전이 뒤따른다.
그러나 이번 대회 한국 타선의 부진을 국내 리그 타자들의 문제와 연결짓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한국과 일본은 자국 메이저리거의 대거 불참을 걱정했다. 그런데 빠진 선수들이 대부분 한국은 야수, 일본은 투수였다. 그만큼 최근 한국 타자들의 미국 진출이 활발했다. 한국은 16개월 전 열린 프리미어 12에서 우승했다. WBC와 출전국의 선수 구성이 다를 수는 있지만 한국 타자들은 능력을 발휘했고 성과를 거뒀다.
스트라이크 존과 리그 투수의 수준 같은 환경이 타자들의 타격 기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은 단시간 내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모두에게 같은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다. 대표팀 같은 특정한 집단의 능력을 따지는 데는 적합한 요인이 아니다.
WBC 같은 단기전에서 타자들이 부진했던 데는 대표팀 선수 구성, 훈련을 통한 페이스 조절과 컨디션 유지, 실전에서의 경기 운영 등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WBC는 메이저리그가 야구의 세계화를 내걸고 만든 대회다. 메이저리그라는 상품이 통용되는 시장을 넓히는 글로벌 마케팅의 일환이지 축구처럼 많은 나라에서 야구가 성행하기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야구는 베이징 대회 이후 올림픽에서 퇴출됐다가 일본이 도쿄 대회를 유치하면서 다시 올림픽 종목이 됐다. 프리미어 12도 그래서 만들어졌다. 축구의 월드컵이나 올림픽과는 성격과 차원이 다르다. 그런 국제대회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둬야 할까?
KBO리그도 메이저리그처럼 팬들에게 프로야구라는 상품을 판다. 그리고 그 상품의 질은 선수들의 경기력이 결정한다. 팬들에게 좀 더 높은 수준의 야구를 보여주는 것은 그들의 의무이자 사명이다. WBC는 하나의 쇼케이스다. 1라운드 탈락이라는 결과와 그에 따른 혹평은 상품의 질을 개선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쇼케이스의 실패를 상품 자체의 실패로 볼 필요는 없다.
다음번 WBC나 3년 뒤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에 큰 의미를 둔다면 강한 대표팀을 가져야 한다. 대표선수를 잘 뽑고, 상대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하고, 훈련 등 준비도 잘 해야 겠지만 국내 리그의 질을 높이는 것이 강한 대표팀을 갖는 근본적이고 유일한 길이다. 이번 WBC에서 쏟아져 나온 온갖 반성과 분석들은 대표팀을 비판하고 대표팀 대책을 마련하는데가 아니라 좋은 리그를 만드는데 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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