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최정식 선임기자] 한국 야구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앞두고 혼란에 빠져 있다.
김인식 WBC 대표팀 감독은 4일 코칭스태프 회의를 열고 출전 엔트리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내린 결론은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은 내야수 강정호(피츠버그)와 무릎이 좋지 않은 포수 강민호(롯데)를 제외하고 김하성(넥센)과 김태군(NC)을 넣는다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투수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의 발탁에 대해서는 결론을 유보했다.
김 감독은 "대표팀이 이전에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번 대회는 특히 힘들다"고 말했다. 대표팀의 주력을 이룰 선수들이 잇따라 부상으로 빠지며 전력에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에 대해 고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 조성되고 있는 '패닉'에 가까운 위기감은 다소 지나치다는 느낌을 준다. 대표팀 전력 약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 기용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오승환을 놓고는 찬반 여론이 맞서며 갈등까지 빚어지는 분위기다.
한국 야구는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정상에 오른 이후 빛나는 성적을 거둬왔다.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 올림픽과 WBC 등 세계 대회에서는 '3위 이상'이 기대 수준이 됐다. 이제까지 이 기준에서 벗어난 것은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동메달)과 2013년 WBC(1라운드 탈락) 뿐이다.
2013년 대만에서 열린 WBC 1라운드에서 한국은 첫 경기에서 네덜란드에게 발목을 잡히는 바람에 이후 호주와 대만을 연파하고도 탈락했다. 이 '타이중 참사'때도 에이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김광현과 봉중근이 부상으로 빠지는 등 '최상의 전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이때 가장 눈부신 피칭을 보여준 투수가 지금 김 감독이 '꼭 필요하다'고 끊임 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오승환이다.
프로 리그가 있는 스포츠에서 대표팀의 전력을 강하게 만드는 길은 하나다. 리그가 강해지는 것이다. 2015년 WBSC 프리미어12에서 한국의 우승은 전력의 큰 누수가 없어 주력 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칠 수 있었고, 운도 따랐지만 KBO리그가 그만큼 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등 다른 출전국들도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의 대표팀 소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부상 선수가 있으며, 출전을 못하겠다는 선수도 나오고 있다. 리그가 강하면 대체 선수의 수준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유례 없는 전력 약화 때문에 기대했던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격차를 인정하고 리그의 발전과 수준 향상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4년 전 타이중에서 오승환이 잘 던졌지만 한국은 1라운드 탈락을 피하지 못했다. 네덜란드전 선발이었던 윤석민이 5회를 버티지 못했지만 2실점으로 막았다. 투수가 못했다기보다는 야수들의 수비와 타격 난조가 문제였다. 류현진 등이 빠지면서 장원준과 송승준에 대해 불안감을 가졌지만 이들은 제 몫을 했다. 누가 있어서 위기를 넘기고 누가 없어서 경기를 망치는 것은 아닌 것이다. 특정 선수의 공백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력 분석과 효율적인 선수 구성 등의 준비가 부족했던 면이 있다. 지금 대표팀은 누가 있고 누가 없는가를 따지느라 정작 중요한 준비를 할 여유를 잃어가고 있다.
김인식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으로 실패한 적이 없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 두 차례 WBC에서 3위와 준우승, 그리고 프리미어12 우승까지.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감과 류중일 감독이 타이중에서 실패한 전철을 밟아서는 절대 안된다는 강박감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성공이 '최상의 전력' 덕분만은 아니듯 류 감독의 실패도 '사상 최약체'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빨리 정리하지 못한다면 이번 WBC 대표팀이 정말 사상 최약체가 돼버릴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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