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타자 김현수? ML 주전 가능성 높이는 '지름길'
[더팩트ㅣ이성노 기자] 볼티모어 오리올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한 김현수(28)를 두고 '리드오프(1번 타자)'로 기용될 것이라는 현지 전망이 나왔다. 프로 데뷔 이후 줄곧 중심 타선에 배치된 김현수로선 다소 생소한 타순이다. 높은 출루율이 후한 평가를 받았다고 하지만 김현수의 다소 느린 발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ESPN', 'US투데이' 등 미국 매체들은 일제히 김현수의 1번 타순 배치를 전망했다. 'ESPN'은 지난해 볼티모어 1번 타자를 맡은 매니 마차도(23)가 올해 타율 3할 이상, 홈런-타점 1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하면서 '볼티모어가(출루율이 높은) 김현수를 영입했기 때문에 마차도는 3번 타순으로 풀타임을 소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US투데이' 역시 '지난 시즌 KBO 리그에서 출루율 4할3푼8리를 기록한 김현수가 볼티모어의 1번 타자 좌익수를 맡을 것이다. 팀의 단점으로 꼽히는 '왼손 타자'와 '출루율'을 보완해줄 것이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볼티모어 주전 1번 타자는 타율 2할8푼6리 35홈런 86타점 출루율 3할5푼9리의 성적을 낸 마차도였다. 수준급 출루율을 보였으나 리드오프에 두기엔 장타력이 못내 아쉽다. 프로 통산 4할대(4할 6리)의 높은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는 김현수의 가세가 반가운 이유다. 김현수가 출루하고 마차도가 적시타를 때리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하지만 김현수는 내야진을 흔들어주는 빠른 발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지난 10년 동안 높은 출루율에도 중심 타선에 배치된 이유이기도 하다.
김현수의 리드오프 배치는 과연 실현 가능한 이야기일까. 그리고 낯선 무대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담이 되진 않을까. 기대보다 걱정이 앞서는 시나리오에 송재우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은 '가능하다'는 의견을 비쳤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송 위원은 13일 <더팩트>와 전화 인터뷰에서 "느린 발은 문제 되지 않는다"며 말문을 열었다. "발도 빠르고 출루율도 높은 선수를 1번에 두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모든 걸 다 갖춘 1번 타자는 많지 않다. 발 빠르고 출루율이 낮은 선수보다 출루율이 높은 타자를 1번에 배치하는 것일 일반적이다"며 김현수의 1번 타자 배치에 힘을 실어줬다.
제아무리 빠른 발을 가졌다 할지라도 출루율이 낮으면 중심 타선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효용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단적인 예로 메이저리그에서 최근 2년 연속 도루왕에 오른 '대도' 빌리 해밀턴(25·신시내티 레즈)을 꼽을 수 있다. 마이너리그에서 한 시즌 100도루 이상을 두 번이나 기록하며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리그 정상급 1번 타자로 분류되진 않는다. 3할을 넘기지 못하는 통산 출루율(2할8푼7리)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해밀턴은 지난 2013년 추신수(20도루, 출루율 4할2푼3리)에 가려 제대로 된 기회조차 잡지 못한 경험이 있다.
반대로 발은 빠르진 않지만 높은 출루율로 붙박이 1번 타자로 활약한 선수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바로 2014년까지 볼티모어 리드오프를 책임진 닉 마카키스(32·애틀랜타 브레이브스)다. 지난 2006년 프로에 데뷔해 중심 타선에서 활약하다 2010년부터 1번 타순을 맡으며 이름을 떨쳤다. 10년 통산 도루는 63개로 연평균 6.3개에 불과하지만, 매년 3할5푼 이상의 출루율을 작성하며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프로 통산 4할 6리의 고 출루율을 기록한 김현수의 1번 타자 이야기도 마카키스의 선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과거 '명가'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에서 붙박이 1번 타자로 활약했던 웨이드 보그스(57·은퇴) 역시 마찬가지다. 웨이드가 메이저리그 18년 동안 기록한 도루는 24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빼어난 선구안을 바탕으로 통산 4할 1푼5리의 높은 출루율을 기록하며 '빅 리그'를 대표하는 1번 타자로 명성을 떨쳤다.
송 위원은 김현수의 1번 타자 배치가 주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김현수는 아직 미국에서 검증받은 선수가 아니다. 확실한 주전이 아닌 상황에서 자신의 장점을 잘 살린다면 생각보다 순조롭게 팀에 적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현수의 콘택트 능력은 정상급이다. 볼을 안타로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다. 하지만 반대로 나쁜 공에도 배트를 휘두를 때도 있다. 자신의 실력을 검증받아야 하는 김현수가 1번 타순에 배치된다면 더욱 까다롭게 공을 볼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출루율은 올라가고 팀에 만족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청운의 꿈을 안고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김현수. 지난 10년 동안 KBO 리그를 대표하는 중심 타자로 활약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평가는 아직 '반신반의'다. 생각지도 못했던 1번 타순. 언뜻 어색한 자리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주전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