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 김태형 감독이 뽑은 '전반기 MVP!'
올해 김태형(47) 감독 체제로 새롭게 출발한 두산 베어스는 지난해 부진을 씻고 줄곧 상위권을 유지하며 2년 만에 한국 시리즈 진출을 목표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외국인 선수들이 기대만큼 활약을 못 해주고 있지만, 국내 선수들은 몸을 아끼지 않은 두산 특유의 허슬 플레이를 펼치며 '신임 사령탑' 김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고 있지요. 모든 선수가 구슬땀을 흘리며 팀 오름세에 이바지하고 있는 가운데 '내야의 사령탑' 유격수를 책임지고 있는 김재호(30)의 맹활약이 유독 눈에 띕니다.
김 감독은 지난 14일 잠실구장 kt전을 앞두고 가진 사전 인터뷰에서 전반기 MVP를 꼽아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주저 없이 김재호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김재호가 잘해줬다. 양의지와 오재원도 잘해줬으나 본인 체력에 비해 가장 잘해준 것은 (김)재호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어 "유격수 자리에서 정말 잘해줬다. 체력 관리를 해줘야 하는데 아직 마음의 여유가 없어 (김)재호를 빼기 힘들었다"고 고마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나타냈습니다.
그렇습니다. 김재호는 프로 데뷔 12년 만에 최고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올 해는 생애 첫 올스타에 뽑히는 경사를 누렸습니다. 75경기를 치른 가운데 타율 3할3푼8리 1홈런 39득점 31타점 맹타를 휘두르고 있습니다. 팀에서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 가운데 가장 높은 타율이자 10개 구단 9번 타자들과 비교해도 가장 빼어난 성적입니다. '공포의 9번 타자'인 셈입니다.
섭씨 33.4도에 육박하는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린 15일 잠실구장.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절로 나는 무더운 날씨였습니다. 두 팀 선수들은 어김없이 땡볕 아래서 수비-타격 훈련에 매진하고 있네요. 훈련을 마친 선수들은 냉장고의 음료수와 선풍기를 찾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해 보입니다.
이날 김 감독의 사전 인터뷰가 끝나고 두산 홍보팀은 전반기를 빛낸 김재호의 인터뷰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감독도 누리지 못한 특혜가 주어집니다. 김 감독이 선풍기만 돌아가는 더그아웃에서 취재진을 맞이했다면 김재호는 에어컨이 '빵빵'한 구내식당에서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말끔하게 샤워를 한 김재호는 여느 때보다 '뽀송뽀송'한 얼굴로 취재진 앞에 섰습니다. 그동안 더그아웃을 오가며 여러 감독과 선수를 마주했으나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김재호와 함께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뜻밖에 작은 얼굴과 하얀 얼굴에 한 번 놀랐습니다. 그리고 전날 김 감독이 선정한 '전반기 MVP'를 주제로 인터뷰가 시작됐습니다.
김재호의 얼굴엔 오랜만에 느끼는 뜨거운 관심에 연신 행복한 미소가 번집니다. "감독님께서 기대보다 잘해서 저를 잘 봐주신 것 같다. 기존 선수들이 잘하고 있으나 모두 꾸준히 좋은 성적을 냈던 선수들이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못하다. 아무래도 타격에서 성적이 아주 좋았다"고 지난 전반기를 평가했습니다.
김재호는 팀이 치른 79경기 가운데 결장은 단 4번이었습니다. 제아무리 '강철 체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7개월간의 대장정을 치르는 야구 선수들에게 달콤한 휴식은 '필수'입니다. 김재호는 "물론 쉬고 싶은 때도 있으나 그럴 수 없다. 감독님도 팀이 이기기 위해 선수 교체를 하신다. 힘들긴 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어 "올스타 휴식기에 계획은 있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의미 있는 말을 내놓습니다. 김재호는 "따로 계획은 없다. 사람이란 게 목표를 세워놓고 그 목표를 이루면 힘이 빠진다. 그래서 따로 휴가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긴장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하루만 쉬면 충분하다. 그 이상 휴식을 취하며 몸이 늘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취미는 2년 뒤에나 만들어야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직 야구에 더욱더 매진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김재호는 올 시즌 생애 최고 성적을 내고 있는 원인으로 '마음가짐'을 꼽았습니다. 그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작년까지는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지 못했다. 사람은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다"며 "매 순간 '잘하고 있다'라고 자기 암시를 한다. 그러다 보니 경기장에서 좋은 플레이가 나오고 밤에 잘도 오기 때문에 다음날 가벼운 몸 상태로 경기에 나서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긍정 에너지가 경기력으로 이어졌군요.
더불어 '이기심 아닌 이기심'이 좋은 작용을 했다고 합니다. 김재호는 "올해는 '저만 잘하면 된다'라는 마음으로 경기장에 나간다. 두산 주전 선수들은 모두 리그 정상급 기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만 잘하면 팀 성적도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팀이 무너져도 '내 것만 하자'라는 생각을 스스로 계속 주입한다"고 합니다.
김재호의 "저에게 높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짧고 굵었던 약 20분간의 인터뷰가 마무리됐습니다. 김재호와 만남을 마치고 기자의 머리를 스치는 문구가 있네요.
'얼굴도 마음도 미남이시네요'
한편, 이날 김재호는 유격수 9번 타자로 선발 출장해 2타수 1안타 1볼넷 1타점 1득점으로 변함없는 활약을 펼치며 팀 11-0 대승에 힘을 보탰습니다.
[더팩트ㅣ이성노 기자 sungro51@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