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트레이드' 13일 후, 박세웅 kt전 선발 등판
"거기는 왜 가?"
편집국장과 점심을 먹는 자리입니다. 저녁 스케줄을 묻는 질문에 수원구장을 간다고 하니 대뜸 왜 가는지를 묻습니다. 왜? 왜? 왜? 기자의 모든 일에는 왜가 따라붙습니다. 그래서 얘기했습니다. 그가 보고싶다고.
15일 저녁 6시 30분엔 수원을 비롯해 대구, 서울, 대전에선 어김없이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페넌트레이스가 팬들을 맞이했습니다. 광주는 우천으로 취소됐습니다. 수도권에서 두 경기가 열린 가운데 기자는 롯데 자이언츠와 kt wiz의 시즌 3차전이 열린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하위권 팀들 간의 대결이었지만, '충격의 트레이드'를 경험한 박세웅(19·롯데 자이언츠)이 친정 팀을 상대로 첫 등판 경기였기에 팬들은 물론 야구 기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기 때문이지요. 네 맞습니다. 그가 바로 박세웅입니다.
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는 낮 기온과 다르게 해가 떨어지자 조금은 쌀쌀한 기운이 돌았습니다.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엔 '구름관중'은 아니지만 9147명 팬들의 응원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이날 홈 팬들의 관심 가운데 하나는 상대 선발 박세웅입니다. 트레이드 이후 첫 수원 방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자 역시 올해 초 신년 인터뷰로 인연을 맺었던 박세웅의 '친정 방문'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kt 위즈 파크 취재 기자석은 일찍부터 북적거렸습니다. 두 팀의 대형 트레이드 이후 첫 맞대결이고 박세웅이 선발로 예고되면서 빅매치 못지않은 취재 열기를 자랑했습니다. 경기 전 진행된 두 팀 감독의 사전 인터뷰 때에도 박세웅에 대한 질문이 우선순위였습니다. 조범현 kt 감독은 "왜 하필 박세웅이 선발이냐"며 묘한 웃음을 지었고, 이종운 롯데 감독은 "하다 보니 박세웅이 나서게 됐다"고 받아쳤습니다.
kt 응원석에는 많진 않지만, 박세웅의 이름이 박힌 유니폼을 입은 팬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박세웅 팬을 자처한 유명한(29·수원시) 씨는 "기분이 묘하다. 박세웅을 응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잘 던지면 kt가 패하고 그렇다고 못 던지는 것도 싫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동안 곰곰이 생각한 유 씨는 "박세웅이 호투하면서 승리는 kt가 했으면 좋겠다. 박세웅은 6이닝 5탈삼진 3실점으로 퀄리티 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하고 승부는 kt가 4-3으로 이겼으면 좋겠다"며 이상 시나리오를 밝혔습니다.
이윽고 롯데의 검정 유니폼을 입은 박세웅이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마운드는 익숙했으나 유니폼은 낯설었습니다. 박세웅은 불과 며칠 전까지 한솥밥을 먹었던 동료들을 상대했습니다. 누구보다 상대를 잘 알기에 프로 데뷔 첫 승도 노려볼만 했지만, 결과는 아쉬웠습니다. 박세웅은 3회를 버티지 못했습니다. 2.1이닝 7피안타 2볼넷 2탈삼진 5실점(4자책점)을 기록하고 홍성민에게 마운드를 물려줬습니다. 올해 선발로 등판한 경기에서 가장 적은 이닝을 소화했습니다. 전 소속팀을 상대로 '잘 던져야겠다'라는 생각이 부담으로 작용한 듯 보였습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 공이 가운데로 몰리면서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기대했던 첫 승은 '다음'으로 미루게 됐습니다.
박세웅은 지난 2013년 kt에 1차 지명을 받고 프로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지난해 퓨처스리그 북부리그 최다승(9승), 최다 탈삼진(123개), 최다 이닝(118이닝)을 기록하며 kt의 차세대 '에이스'로 발돋움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일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박세웅은 kt와 롯데가 단행한 4대5 트레이드 명단에 포함돼 수원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13일 만에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다시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 마운드에 섰습니다. 조금은 어색했지만, 수원 팬들은 박세웅의 등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1년 남짓, 짧은 기간의 동행이었으나 kt 팬들에겐 박세웅은 단순 스쳐가는 인연은 아니었나 봅니다.
기자와 박세웅의 작은 인연은 올해 1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신년 인터뷰를 기획하고 있었고 기자는 지난해 퓨처스리그 마운드를 평정한 박세웅을 선택했습니다. 박세웅은 '새내기 딱지'를 떼지 못하고 다소 경직된 표정으로 취재진을 맞았지만, 야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땐 베테랑 못지않은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인터뷰에 이어 진행된 '제구력 미션'에 성공하고 환히 웃던 얼굴도 선명히 기억납니다. 프로 야구 선수와 첫 1대1 인터뷰였기 때문에 박세웅이란 세 글자는 기자에겐 쉽게 잊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박세웅의 선전을 바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군과 2군은 엄연히 달랐습니다. 박세웅은 4월에 선발 등판해 5경기에서 4패 평균자책점 6.86이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퀄리티 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는 단 한 번도 없었고, 5이닝이 최다 이닝 소화였습니다. 팀 역시 연패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분위기 반전이 필요했던 조범현 kt 감독은 롯데와 트레이드를 단행했고, 그 중심엔 박세웅이 있었습니다. 과거 기자와 인터뷰에서 자신을 선택해준 kt에 무한 애정을 보였던 박세웅에겐 다소 충격적인 소식이었을 겁니다. 트레이드 소식을 들은 뒤 기자는 박세웅 선수에게 격려의 문자를 한 통 보냈습니다. 답장은 오지 않았으나 실망하진 않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선수 입장에서 트레이드로 팀을 떠나면 힘이 빠진다. 특히 주전급 선수라면 더욱 그렇다"는 김태형 두산 감독의 말처럼 선수들에게 트레이드는 반가운 일은 분명 아닙니다.
분명 기대했던 결과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지만 만 19세 투수에겐 또 하나의 귀중한 경험이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직 미완의 대기에 그치고 있지만, 박세웅의 실력에 의문을 표시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현재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줄 것이 많은 선수입니다. 지난 신년 인터뷰에서 "상대하고 싶은 타자와 결정구는?"라는 기자의 질문에 "박병호를 상대로 몸쪽 직구로 삼진을 잡고 싶다"고 당당히 밝힌 박세웅이었습니다. 머지않아 한국 최고 4번 타자와 멋진 승부를 펼칠 날을 기대해봅니다.
◆ [영상] 박세웅 이색 도전! '커쇼를 이겨라'(https://youtu.be/idMM0WFSxKQ)
[더팩트ㅣ케이티 위즈 파크 = 이성노 기자 sungro51@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