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한 점 없는 5일 오후, 잠실구장엔 어린이날을 맞아 가족 단위의 관객이 2만 6000여 석을 가득 메웠습니다.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어린이날 대결'은 매표 시작 34분 만에 모든 표가 매진됐고, 지난 2008년 이후 8년 연속 매진 사례를 기록할 만큼 뜨거운 반응을 끌어냈습니다. 어린이 팬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부모의 손을 잡고 야구장을 찾아 평소 좋아하는 선수들의 이름을 크게 외쳤습니다. 부모들 역시 아이 못지않게 '서울 라이벌'의 한판 대결에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팬들의 열렬한 환호에 최고의 경기력으로 보답해야 하는 LG와 두산 사령탑은 고민이 적지 않습니다. 타순에 힘을 실어줘야 할 외국인 타자의 부재 때문입니다. 이날 현재 두산의 외국인 타자 자리는 공석입니다. 전날 부상과 부진을 거듭한 잭 루츠를 웨이버 공시했습니다. 잦은 허리 통증 호소로 1군과 2군을 오가더니 결국, KBO 리그 개막 한 달을 갓 넘기고 쓸쓸히 짐을 싸게 됐습니다. 반면 LG는 아직 단 한 차례도 외국인 타자와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거금을 들여 '메이저리거' 잭 한나한을 영입했으나 종아리 부상으로 아직 정식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태형 감독은 이날 LG와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시즌 4차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루츠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며 손을 저었습니다. 물론 농담 섞인 말이었으나 그동안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최근 2군에 내려갈 때 어느정도 마음을 굳혔다. 본인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에 나섰다'고 말하는데 나와 면담에선 '1루, 3루 수비는 문제가 없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고 말했었다"고 서운한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그러면서 루츠의 약한 정신력을 꼬집었습니다. 김 감독은 "경기에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자꾸 허리 통증을 이야기했다. 병원에선 큰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본인이 아프다고 하니 답답할 따름이었다"며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한 취재기자가 "두산은 외국인 타자 없이도 좋은 성적을 거둔다. 외국인 선수가 꼭 필요하나"라는 말에 김 감독은 발끈하며 "무슨 소리냐. 외국인 타자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달 29일 kt wiz전을 앞두고 "외국인 타자가 있어야 타선에 무게감이 생긴다. 다행히 팀 성적이 좋아 루츠의 공백이 부각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고 말한 김 감독이었습니다.
이어 김 감독은 새로운 합류할 외국인 타자에 대해선 "내·외야 포지션에 상관없이 알아보고 있다. 어떤 선수가 오든 모든 준비를 해놨다. 선수 기량 못지않게 정신력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루빨리 정상급 외국인 타자의 합류를 바라는 김 감독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두산과 같이 외국인 타자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LG 사령탑 양상문 감독은 '교체'에 대해선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직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양 감독은 두산전을 앞두고 '외국인 타자 교체'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써보지도 못했다"며 "두산은 써보기라도 했다. 결과가 좋지 않으니 칼을 빼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LG는 터지지 않은 타선 때문에 고민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외국인 타자의 빈자리를 더욱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 감독은 한나한에게 끝까지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한나한을 영입할 때 좋은 평가가 있었다. 커리어나 실력도 눈으로 확인했다"며 "큰 기대를 가지고 한나한을 데리고 왔다. 게임 뛰는 것을 일단 봐야 한다. 다음 주에 퓨처스리그(2군)에 투입하고 1군 엔트리에 올릴 생각이다"고 밝혔습니다.
LG는 지난해 12월, 한나한과 총액 100만 달러(약 11억 원)에 영입했습니다. 한나한은 메이저리그 통산 614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3푼1리 29홈런 175타점을 기록한 베테랑 3루수입니다. 특히, 2011년 클리블랜드 시절부터 2013년까지 추신수(32·텍사스 레인저스)와 한솥밥을 먹으며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출발부터 삐걱거렸습니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종아리 통증을 호소하며 정상적인 훈련을 하지 못했고, KBO 리그 개막 후에도 2군에 머물러 몸만들기에만 주력했습니다. 한나한은 지난 1일 연세대와 연습경기에 처음으로 실전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경기 성적은 2타수 무안타 1볼넷.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지만, 경기 감각을 익혔다는 것에 의미가 있었습니다.
5월 5일 어린이 날.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의 얼굴엔 화창한 날씨만큼 환한 웃음꽃이 피었지만 두산-LG 사령탑은 마냥 웃을 수 없었습니다. 같은 듯 다른 고민이었으나, '외국인 타자'의 부재의 아쉬움은 한결같았습니다.
한편, 이날 '어린이날 매치'에선 장단 13안타를 몰아친 두산이 10-3으로 LG를 제압하고 2연패에서 탈출했습니다.
[더팩트ㅣ잠실구장 = 이성노 기자 sungro51@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