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취재기] 고개 숙인 '베이징 영웅', 힘을 내요 '고제트'

어색한 1루수! 두산 고영민(오른쪽)이 9일 넥센전에서 올해 첫 선발을 생애 첫 1루수로 나서 1-0 승리를 맛봤다. 고영민이 지난해 4월 8일 SK전에서 역전승을 거두고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잠실= 최진석 기자
어색한 1루수! 두산 고영민(오른쪽)이 9일 넥센전에서 올해 첫 선발을 생애 첫 1루수로 나서 1-0 승리를 맛봤다. 고영민이 지난해 4월 8일 SK전에서 역전승을 거두고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잠실= 최진석 기자


고영민, 당신은 한국 야구의 영웅입니다!

9일 잠실구장. 두산 베어스 외국인 투수 유네스키 마야(33)가 2015 KBO리그 첫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며 잠실벌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국내 프로야구 통산 12번째이자 외국인 선수로선 두 번째 대기록이라 모두가 감동에 젖었습니다. 하지만 필자의 시선은 고영민(31·이상 두산 베어스)에게 향했습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 극심한 부진에 빠진 고영민은 이날 시즌 첫 선발 출장했으나 헛스윙 삼진을 두 번이나 당하며 자존심을 구겼습니다. 마야와 다르게 고영민에겐 더없이 아쉬운 날이었습니다.

고영민은 9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넥센과 시즌 3차전에서 7번·1루수로 선발 출장해 3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부진했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나선 1루수 수비에선 비교적 무난한 활약을 펼쳤으나 타석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모처럼 찾아온 기회에서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마야의 노히트노런 최대 고비였던 9회초 수비에선 아웃카운트를 잡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다가 타자주자 서건창과 부딪혀 그라운드에 나뒹굴어 보는 이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경기 전 두산 선발 라인업 1루 포지션에 낯선 이름이 올라왔습니다. 바로 '베이징 영웅' 고영민의 1루수 출장이었습니다. 과거 2루수로 명성을 떨치며 올림픽 금메달의 영광을 누린 그였지만, 1루는 어색한 자리였습니다. 지난해 부진 탈출을 꿈꾸며 외야수까지 겸업했으나 1루 미트는 프로 데뷔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김태형(47) 두산 감독은 올해 1루를 책임졌던 김재환(26)이 최근 타격에서 부진하자 휴식을 부여하고 '베테랑' 고영민에게 첫 번째 베이스를 맡겼습니다.

경기 전 고영민은 새로운 포지션 훈련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선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묵묵히 수비와 공격 훈련하며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모든 연습을 마친 고영민의 모습은 조금 쓸쓸해 보였습니다. 고영민은 전날 대타 3점 홈런을 터뜨리며 취재진으로 둘러싸인 민병헌 옆을 지나쳤습니다. 그를 붙잡고 말을 건네는 기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2008년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고영민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힘내세요 고제트! 고영민이 생애 처음으로 1루수로 출전해 3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부진했다.
힘내세요 고제트! 고영민이 생애 처음으로 1루수로 출전해 3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부진했다.

절치부심한 고영민이었지만, 만족할만한 성과는 얻지 못했습니다. 출발부터 삐걱거렸습니다. 2회 1사 1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고영민은 상대 선발 앤디 밴 헤켄에게 속수무책 당하며 3구 삼진으로 물러났습니다. 좀처럼 타이밍을 잡지 못했습니다. 직구엔 반응 속도가 늦었고, 변화구가 들어오면 허공에 배트를 휘둘렀습니다. 두 번째 타석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1-0으로 앞선 4회 1사 3루 절호의 기회에서 또다시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습니다. 마지막 타석 역시 3구 만에 중견수 뜬공에 그쳤습니다. 쓸쓸히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고영민의 뒷모습은 더없이 작아 보였습니다.

한때 두산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2루수 고영민이었습니다. 폭넓은 수비로 '고제트(고영민+가제트)'란 별명까지 얻으며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주전 경쟁에서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대표팀과 멀어진 것은 물론 팀 2루 역시 '후배' 오재원에게 자리를 내준지 오랩니다. 지난해엔 외야수까지 병행하며 부활을 노렸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필자는 군 복무 시절에 경험한 2008년 여름을 잊지 못합니다. 행정반에서 베이징 올림픽 야구를 몰래 시청했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당시 고영민은 공수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한국 야구 역사상 올림픽 첫 금메달에 힘을 보탰습니다. 이후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서서히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베이징에서 보여준 고영민의 맹활약을 기억하는 팬들도 적지 않습니다.

고영민 선수, 당신은 한국 야구의 영웅입니다!

"힘을내요 고제트"

[더팩트ㅣ잠실구장 = 이성노 기자 sungro51@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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