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용 인턴기자] '2008년 1월 3일 조금만 더 버텨주길 오늘만 지나면 괜찮아지길 바랐던 내 소중한 한 사람이 하늘로 떠났을 때 흐르는 눈물은….' (리쌍 '챔피언' 中에서)
'영원한 챔피언'이 우리의 곁을 떠난 지 벌써 6년이 흘렀다. 그의 미소를 다시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아름다운 결정'에 새 생명을 얻은 이들은 우리 곁에 살아 있다.
고 최요삼은 성탄의 기쁨으로 들떠 있는 지난 2007년 12월 25일 WBO 인터콘티넨탈 플라이급 1차 방어전에서 도전자 헤리 아몰에게 3-0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고 경기 직후 실신했다. 많은 이들이 최요삼의 쾌유를 바랐지만 '링 위의 오뚝이'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큰 선물을 주고 갔다. 각막, 신장, 간, 심장 등을 9명에게 기증했다. '챔피언'의 기증에 국내 장기기증자의 수는 크게 늘었다. 2002년 36명, 2006년 141명에서 2008년 200명을 돌파했고 2011년 300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5월 아무런 대가 없이 신장 기증을 해 화제가 된 신진선, 김영옥 부부도 6명의 생명을 살리고 떠난 '챔피언'의 사연을 들으며 생명나눔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고 최요삼은 굴곡진 '복싱 인생'을 살았다. 그는 친한 형이 신인왕전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스무 살에 복싱에 입문했다. 복싱을 위해 태어났다고 할 만큼 뛰어난 기량으로 1995년 동급 한국챔피언, 1996년 동양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데뷔 3년 만에 한국복싱의 간판스타가 된 그는 1999년 사만 소루자투롱을 꺾고, 세계복싱평의회(WBC) 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 벨트를 허리에 둘렀다. 2002년 챔피언 방어전 4차전에서 호르헤 아르세에게 져 은퇴의 갈림길에 섰다. 꿈에 그리던 '챔피언'이 됐지만 3년간 치른 방어전이 4차례에 그칠 만큼 매서운 현실을 마주했기에 다시 도전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오뚝이'처럼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다. 결국 2007년 9월 5년 만에 세계복싱기구(WBO) 인터콘티넨탈 플라이급 타이틀을 되찾았다. 집념과 투혼의 승리였다. 기쁨도 잠시, 2007년 크리스마스에 치른 1차 방어전을 마지막으로 다시 링에 오를 수 없었다.
그가 떠난 지 어느덧 6년이 흘렀다. '한국의 마지막 세계챔피언'은 많은 이의 기억 속에 살아있다. 지난해 1월에는 '고 최요삼 5주기 추모제'가 안성에서 열렸고 매년 '최요삼 추모 복싱대회'가 펼쳐지고 있다. 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패서디나에서 열린 '로즈 퍼레이드'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기증해 타인의 생명을 살린 장기 기증자 81명의 초상화를 내건 가운데 '도네이트 라이프(Donate Life) 꽃차에는 고 최요삼의 얼굴이 자리를 지켰다.
고 최요삼의 스파링 상대로 그와 많은 시간을 보낸 손정오는 "최요삼 선배는 한국 복싱계에서 유일한 세계 챔피언이었다. 모두 요삼 선배를 바라봤고, 그는 후배들의 우상이었다"라는 말로 그를 회상힌다. 리쌍은 '챔피언'이라는 노래로 최요삼을 추억했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는 최요삼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떠났지만 우리는 그를 잊지 않았다.
'그대가 떠난 하늘 위에 평화와 사랑만이 지금 이 세상 속에 당신의 미소가 모두의 밝은 빛이 되길….' (리쌍 '챔피언' 中에서)
sporgo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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