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ACT

검색
정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별세…남북 비밀회담 성사시키기도

[박형남기자]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31일 별세했다. 경희대학교 동서신의학병원에 따르면 이 전 부장은 뇌종양과 노환 등으로 병세가 악화돼 11시45분경 숨졌다. 이 전 부장은 지난 5월 병원에 입원해 170여 일 동안 치료를 받아왔다.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권력 2인자’로 급부상

이 전 부장은 은밀한 정치공작을 펼친 인물로 손꼽힌다. 1948년 육군 정보국 차장을 지냈으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런 그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공보실장을 맡으면서다. 특히 1963년 박정희 의장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 ‘권력 2인자’로 급부상했고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은밀한 활동을 많이 해왔다.

암울한 시기도 있었다. 1969년 3선 개헌 직후, 이 전 부장은 주일대사로 내보내졌다. 그러나 이 전 부장의 복귀는 시간문제였다. 박 대통령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던 탓이다. 실제 이 전 부장은 1년만인 1970년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돼 권부 핵심으로 복귀했다. 더욱이 박 대통령은 이 전 부장에게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선거 총지휘권을 맡겼을 정도로 ‘정권 2인자’로서의 입지를 구축했다.

대북 밀사 ‘평양 방문’…김일성 전 주석 만나기도

특히 이 전 부장은 중앙정보부장 재임시절 박 대통령에 의해 1972년 5월에 대북 밀사로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전 주석을 만나는데 큰 역할을 했고, 사상 초유의 남북 비밀회담이 열리기도 했다. 당시 밀담은 남북한 당사자가 강대국에 대한 공동 경계심을 확인하고 남북간 합의를 도출해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루고자 강조한 대화가 오갔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이로 인해 7·4 남북 공동성명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전 부장은 1972년 10월 유신 체제를 확립하고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주도하는 등 역사의 고비 고비 마다 `악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박정희 암살 된 후 정계 떠나 ‘칩거생활’

또 1973년 12월 1일 이 전 부장은 3년간 지킨 중앙정보부장의 자리에서 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이 “박정희의 후계자는 이후락이다”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킨 소위 윤필용 사건에 의해 해임 당했다. 이후 이 전 부장은 정계에서 물러났다. 1979년 중앙권력 무대에 섰다가 박 대통령의 암살되자, 정계를 떠나 경기 하남에서 도자기를 구으며 칩거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사진제공=서울신문>

[더팩트 정치팀 ptoday@tf.co.kr] 폴리피플들의 즐거운 정치뉴스 'P-TODAY'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이메일: jebo@tf.co.kr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인기기사
회사소개 로그인 PC화면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