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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주열의 '靑.春일기'] '언론중재법' 지지한 文대통령의 '내로남불'

  • 정치 | 2021-08-23 00:00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을 단독으로 강행하는 가운데 '국회의 일'이라고 침묵하던 청와대는 해당 법인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직후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을 단독으로 강행하는 가운데 '국회의 일'이라고 침묵하던 청와대는 해당 법인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직후 "잘못된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구제가 충분하지 않아 피해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입법적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민주당을 사실상 지지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과거 언론 자유에 대한 발언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지난 19일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국민청원 도입 4주년을 맞아 국민청원에 직접 답변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청와대 취재기자의 주관적 생각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언론자유' 강조하더니 '자유 침해' 우려 언론중재법에 동조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에 침묵하던 청와대가 지난 19일 뒤늦게 입을 열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국내외 지적에 "국회에서 논의하고 의결하는 사안"이라며 거리를 뒀던 청와대는 민주당이 관련 상임위원회에서 단독으로 의결한 직후 핵심 관계자 서면 답변을 통해 "잘못된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구제가 충분하지 않아 피해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입법적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사실상 민주당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기자들과 대화 중 나온 발언이 아니라 서면으로 답변한 것인 만큼 대통령의 의중까지 반영된 청와대의 정리된 입장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과거 발언과 비교하면 상당히 당혹스러운 내용입니다. 문 대통령은 불과 이틀 전인 지난 17일 한국기자협회 창립 57주년 축하 메시지에서 "언론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라며 "진실을 외면하지 않은 기자들의 용기와 열망이 뿌리가 되어 오늘날 한국언론은 세계언론자유지수 아시아 1위라는 값진 성과를 일구어냈다"고 호평했습니다.

이어 "언론이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한 언론자유는 누구도 흔들 수 없다"라며 "정부는 여러분이 전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언론자유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언제가 함께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 말을 한 지 불과 이틀 만에 언론계 모두가 들고 일어나 사회 비판 기능에 재갈을 물린다고 하는 법안에 지지를 하다니요. 결국 언론에 귀 기울이겠다는 발언은 공염불에 그치고만 셈입니다.

한국신문협회·한국언론학회 등 국내 언론계를 대표하는 모든 언론단체들과 세계신문협회·국제언론인협회 등 해외 언론단체들이 모두 "언론에 재갈을 물린 위헌적 입법 폭거를 규탄한다"며 지금이라도 개정안 강행 처리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지만, 문재인 정권 인사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4년 11월 25일 외신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4년 11월 25일 외신기자클럽 토론회에서 "공인과 공적 관심사에 대한 비판, 감시는 대단히 폭넓게 허용돼야 한다"며 "비판과 감시에 명예훼손으로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는 결코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우리 당이 집권하면 그런 점을 확실히 보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뉴시스

시간을 돌려보면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었던 지난 2014년 11월 25일 외신기자클럽 토론회 참석해 당시 검찰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의혹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신문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것과 관련해 "보도 내용이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보도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서 명예훼손으로 검찰이 수사하고 기소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이라며 "언론 자유에 대한 법리나 판례나 세계적인 기준과 맞지 않아서 국제적으로는 조금 창피한 일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공인과 공적 관심사에 대한 비판, 감시는 대단히 폭넓게 허용돼야 한다"면서 "비판과 감시에 명예훼손으로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는 결코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우리 당이 집권하면 그런 점을 확실히 보장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아울러 "언론의 잘못된 보도나 마음에 들지 않는 논조에 정치권력이 직접 개입해 좌지우지하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대선 전 공약집에선 언론 개혁에 대해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하겠다"며 언론 독립성 보장을 위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공약을 지키지 않고, 대선 전에는 언급도 하지 않았던 징벌적 개념의 언론중재법 개정 추진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집권 전과 후가 달라진 태도에 야권에선 "법원 판결이 선고돼도 가짜뉴스라고 우기는 조국 씨를 지키기 위한 법이자, 정권 말 각종 권력형 비리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라며 강력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를 예고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사의 허위·조작 보도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과 언론 보도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기사의 열람차단을 청구할 수 있는 열람차단청구권 신설 등을 골자로 합니다.

민주당은 "가짜뉴스로부터 국민 피해를 최소화하고 최대한 구제한다는 법 취지를 지키는 범위에서 야당 의견을 충분히 경청했고, 언론단체 요청도 최대한 반영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야당과 언론의 요청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상식적인 언론과 기자들은 당연히 허위·조작 보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언론단체가 이 법 개정을 반대하는 이유는 가짜뉴스를 막기보다는 정당한 보도를 위축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인 허위·조작 보도는 허위 사실을 보도한 경우나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경우를 말하는데, 그 개념이 불분명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는 것도 매우 어렵고, 객관적인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것도 난해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국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가운데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하고 있는 모습. /이선화 기자
지난 19일 국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가운데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하고 있는 모습. /이선화 기자

모호한 개념에 '2005년 삼성 X파일 보도', '2007년 대선 BBK와 다스 보도', '2014년 정윤회 문건 보도', '2016년 최서원 국정농단 보도' 등 보도 당시에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정치·경제권력에 대한 보도는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부패한 권력자들의 막강한 인맥과 자본력을 앞세운 고소 위험을 무릅쓰고 해당 보도를 한다면 그 언론사와 기자는 몇 년간 검·경의 수사를 받고, 재판정에 불려 다니다가, 끝내 무거운 손해배상의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가짜뉴스로부터 국민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민주당의 주장도 사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언론중재위원회 2019년도 언론 관련 판결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언론에 손해 배상 소송을 청구한 이들은 고위공직자·공적 인물, 혹은 기업·단체가 전체 236건 중 162건(약 69%)으로 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매일, 매년 쏟아지는 기사들의 수를 고려하면 언론사들이 일반 국민에 대한 허위·조작 보도를 하는 경우 자체가 매우 드문 셈입니다.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은 지난 4·7 재보선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민주당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라고 인정할 정도로 문재인 정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단어가 됐습니다.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 시도도 어찌 보면 늘 그래왔던 정당이 이미지대로 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강행했을 때 앞으로 우리 사회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자'라는 심정으로 다시 한번 숙고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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