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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영의 정사신] '계몽군주' 같은 평가나 할 때가 아니다

  • 정치 | 2020-09-29 05:0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5일 우리 국민이 북한 해상에서 피격된 데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5일 우리 국민이 북한 해상에서 피격된 데 대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전한 것을 두고 여야의 입장이 갈리고 있다. /임세준 기자

일부 여권 인사의 김정은 평가 국민 분노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죄송합니다."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미안합니다." 얼굴을 가리고 포승줄에 묶여 수사기관을 향해 들어가는 범죄자들이 마이크에 대고 하는 말들이다. 가해자들의 이런 발언이 나온다는 건 그만큼 범죄의 정도가 중하다거나, 사회적 이슈일 때다.

가해자의 이 한마디면 피해자나 피해 가족은 '사과했으니 됐다'고 받아들일까. 대부분은 '뻔뻔하다'며 더 강력한 처벌을 요구할 때가 많다. 심지어 출소 소식에는 다시 분노를 드러내기도 한다.

지난 22일 북한에 의해 피살된 우리 공무원과 관련해 최근 벌어지는 여권의 태도나 여권 정치인의 발언은 심히 유감이다. 청와대는 지난 25일 북한에서 보내온 통지문을 공개했다. 북한은 통지문에서 "우리 측은 북남사이 관계에 분명 재미없는 작용 할 일이 우리 측 수역에서 발생한 데 대해 귀측에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의 불미스런 일이 발생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특별히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 국민들께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해온 것에 대해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인다"며 "북한의 최고지도자로서 곧바로 직접 사과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도 김 위원장의 사과 메시지에 기류가 바뀌었다. 이낙연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김 위원장 메시지가 전달되기 전인 24일 "북한군의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만행"이라고 비판했다. 대북규탄결의문 채택까지 꺼냈다.

그러나 김 위원장 사과 메시지에 민주당은 "이례적" "신속하게" 등이라고 평가하며 한 발 빼는 모습이다. 결국 28일로 예정했던 대북규탄결의문 채택도 무산됐다. 민주당은 긴급현안질의를 해야 한다고 요구한 국민의힘 때문이라고 이유를 들었다.

문제는 또 있다. 6개월 만에 유튜브에 복귀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지난 25일 발언이다. 그는 노무현재단 공식 유튜브채널에서 생중계된 10·4 남북공동선언 13주년 기념행사 토론회에서 "이 사람(김 위원장)이 정말 계몽군주이고, 어떤 변화의 철학과 비전을 가진 사람이 맞는데 입지가 갖는 어려움 때문에 템포 조절을 하는 거냐, 아니냐(하는 질문을 받는데), 제 느낌엔 계몽군주 같다"고 평가했다. 유 이사장 발언은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최근 북한이 우리 국민을 총격 살해한 데 따른 김 위원장의 사과 메시지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최근 북한이 우리 국민을 총격 살해한 데 따른 김 위원장의 사과 메시지에 "계몽군주 같다"고 평가해 논란을 빚고 있다. /남윤호 기자

이번 사건의 본질은 북한이 우리 국민을 해상에서 총기로 사살하고 시체를 유기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코로나19 방역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해명을 한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민간인을 사살하지 않는다. 듣도 보도 못한 방역이다.

심지어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북한은 피살 후 시신을 불태우기까지 했다. 이런 북한 행위에 분노하지 않을 국민은 없다. 피격된 공무원의 월북 여부와 북한의 야만적 행위는 별개의 문제다.

이번 사건으로 2008년 7월 11일 금강산 박왕자 씨 피살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당시다. 이 전 대통령은 사건 당일 국회 연설에서 남북 대화를 제안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태도도 현재 야당인 국민의힘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박 씨 피격 다음 날(12일)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한 데에는 정부의 안전관리 대책이 미흡했기 때문"이라며 "정부는 재발방지대책을 면밀하고 신속하게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세균 당시 민주당 대표는 같은 달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청와대의 위기관리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남북 간 대화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크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12년 전과 이번 사건을 대하는 민주당의 태도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인 것 같다. 집권 여당 민주당은 국민 분노에 공감하며 북한의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해야 한다. 가해자 김 위원장의 '미안'이라는 메시지 배경을 분석하며 대응책을 내놓아야 할 때다. "이례적"이라며 한 발 빼는 듯한 태도나 '계몽군주' 같은 평가나 할 때가 아니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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