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열의 정진기(政診器)] 난파선에 길까지 잃은 미래통합당

  • 정치 | 2020-05-04 05:00
미래통합당이 지난달 28일 전국위원회를 열고 '김종인 비대위원장 임명안'을 가결했지만 상임전국위 무산으로 당헌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더 큰 혼란에 빠졌다. 사진은 지난 3월 30일 당시 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왼쪽)과 황교안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남윤호 기자
미래통합당이 지난달 28일 전국위원회를 열고 '김종인 비대위원장 임명안'을 가결했지만 상임전국위 무산으로 당헌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더 큰 혼란에 빠졌다. 사진은 지난 3월 30일 당시 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왼쪽)과 황교안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남윤호 기자

바쁠수록 돌아가 당선자들이 치열한 토론으로 '미래' 정해야

[더팩트ㅣ국회=허주열 기자] 4·15 총선에서 참패한 미래통합당이 패배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난파선의 선장이었던 황교안 전 대표는 하선했고, 통합당호를 함께 운영했던 다른 지도부는 무리하게 새 선장을 세우려다 더 큰 혼란을 야기했다.

'김종인 비대위' 카드가 혼란을 부채질한 모양새다. 21대 총선에서 낙선한 심재철 당 대표 권한대행을 중심으로 한 지도부는 당내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지 못했음에도 이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 결과 통합당 전국위원회에서 가결된 김종인 비대위원장 임명안을 당사자가 수락하지 않는 황당한 상황에 직면했다.

예고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심 권한대행은 지난달 28일 '당선자 총회→상임전국위→전국위'를 순차적으로 열고 총회에서 김종인 비대위로 당선자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은 뒤 상임전국위서 '차기 전당대회는 8월 31일까지 개최한다'는 당헌을 삭제해 비대위 임기를 무제한으로 바꾼 뒤 전국위에서 김 비대위원장 임명안을 의결할 계획이었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미래통합당 제1차 상임전국위원회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이새롬 기자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미래통합당 제1차 상임전국위원회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이새롬 기자

하지만 총회에선 김종인 비대위에 대한 찬반양론이 거세게 부딪쳐 결론을 내지 못했고, 상임전국위는 정족수 미달(정원 45명 중 17명 참석)로 열리지도 못했다. 1·2단계가 꼬인 상황에서 3단계 전국위는 찬반 대립 속 표결(323명 중 177명 찬성)로 김 비대위원장 임명안을 가결했다. 임기가 4개월로 제한된 비대위가 출범할 단초가 마련된 것이다.

김 내정자의 최근 발언에 비춰보면 임기 제한이 걸린 비대위원장은 그가 수락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가능했다. 이와 관련 심 권한대행은 전국위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조건이 바뀐 만큼) 김 내정자가 수락을 안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란 질문에 "수락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기대는 이뤄지지 않았다. 심 권한대행과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28일 밤 김 내정자의 자택까지 찾아가 "상황을 만들어볼 때까지 조금 기다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별다른 답을 듣지 못했다. 제1야당의 미래에 대한 중대한 결정을 하면서 새로운 선장으로 모시려는 이와 바뀐 조건에 대해 사전 조율 없이 전국위를 강행해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도 심 권한대행 측은 자신들의 무리수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다. 상임전국위를 재소집해 다시 한번 '8월 말까지 전당대회를 개최한다'는 당헌 조항을 삭제하려 시도하겠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제1차 전국위원회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 임명안'이 가결됐다. 하지만 앞서 열릴 예정이었던 상임전국위가 정족수 미달로 개최되지 않으면서 김 내정자가 원하는 임기 무제한 비대위가 아닌 4개월짜리 관리형 비대위가 출범할 단초가 마련되면서 당사자가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새롬 기자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제1차 전국위원회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 임명안'이 가결됐다. 하지만 앞서 열릴 예정이었던 상임전국위가 정족수 미달로 개최되지 않으면서 김 내정자가 원하는 임기 무제한 비대위가 아닌 4개월짜리 관리형 비대위가 출범할 단초가 마련되면서 당사자가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새롬 기자

이 가운데 총선 참패에 황 전 대표와 함께 공동 책임이 있고, 21대 총선에서 낙선까지 해 한 달 뒤에는 통합당호에서 내려야 하는 이들이 새로운 선장을 꼭 선임하고 떠나겠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내부에서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김 내정자가 입장을 바꿔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더라도 내부 반발로 제대로 된 혁신을 이루기 어렵다. 통합당이 2년 뒤 열리는 대선에서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당을 해체하고, 다시 만드는 수준의 전면적 혁신을 이뤄야 한다.

통합당의 재건은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갈 길이 멀다고 성급하게 새로운 인물을 앞세워 새 길로 가려다가는 또다시 길을 잃고 헤매게 될 수 있다. 대안이라 생각해 선택한 일이 또 다른 실책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통합당을 재건할 책임자를 뽑는 일은 21대 국회에서 활동할 당선자들이 모여 몇날 며칠이 걸리더라도 치열한 토론을 거쳐 과반 이상이 동의하는 하나의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야 한다. 상임전국위 무산으로 현 지도부의 리더십은 완전히 붕괴됐고, 이들이 무언가를 더 하려다가는 내부 혼란만 더 커질 뿐이다.

통합당이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야당, 국민에게 사랑받는 야당, 때로는 여당에 협력하고 정부여당이 잘못된 길로 가려 할 때 올바른 대안을 제시하는 건전한 야당으로 재탄생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빨리 가려다 잘못된 길로 가는 우를 또다시 범한다면 통합당에 더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제1차 전국위원회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 임명안'이 가결됐다. 하지만 앞서 열릴 예정이었던 상임전국위가 정족수 미달로 개최되지 않으면서 김 내정자가 원하는 임기 무제한 비대위가 아닌 4개월짜리 관리형 비대위가 출범할 단초가 마련되면서 당사자가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새롬 기자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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